[202호 인터뷰] 자연과 사람이 함께 기대어 가다 –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서울대 농대, 동대학원 산림자원학과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후, 94년 산림청 임업연구원 수목원과에서 임업연구사로 공직을 시작했다. 99년 국립수목원이 개원되는 데 기틀을 마련한 식물분류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자, 국립수목원 초기 연구직 공무원으로는 첫 번째 여성수목원장이다. 연이은 도시 개발과 물질로부터 지친 우리사회는 이제 자연을 통해 치유받고 휴식하는 사회로 향해 간다. 이에 지난 8월, 녹음이 짙게 드리워진 광릉숲을 찾아가 이유미 국립수목원장과 함께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바람직한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1호 여성202-1 수목원장이되기까지

Q. 수목원장님께서는 국립수목원 창립멤버이기도 하시고, 오랫동안 연구사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산림청 최초 여성 수목원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셨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감회는 참 남다르죠. ‘거머쥐었다’는 표현은 약간 부적절해요. 왜냐하면 사실 저는 수목원장이 되겠다고 한 번도 노력해 본 적이 없거든요. 수목원장이라는 직은 자리의 이름이면서 연구자이기 때문에 평생 자기 연구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런 사람에게 이 자리는 중요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정식으로는 이곳이 저의 첫 직장이었고, 아마도 마지막 직장이 되리라 생각해요. 평생 이곳에서 저의 꿈을 꾸었고 제 삶의 전체가 여기 국립수목원에 녹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 인생에 있어서 국립수목원은 참 의미 있는 공간인데, 이곳의 장을 맡게 되었다는 것은 참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주어진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대학시절 산림자원학(임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산림자원학을 전공하던 시절, 원장님은 어떤 학생이셨는지 또 전공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산림자원학을 전공하게 된 거창한 계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진 않아요. 어릴 적엔 막연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건축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남들처럼 꿈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어요. 그러다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할 땐 왠지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기 싫었고요. 당시 모교에서 국립공원을 만드는데 임학은 스케일이 큰 자연을 설계하고, 디자인한다는 것이 멋졌고, 시집갈 때 농도 짜준다는 데 혹해 전공을 하게 됐어요.(웃음)

지금도 나무학자, 숲학자, 식물학자 중에서도 활동하는 여성 학자가 많이 없는 상황이지만 대학원 시절엔 특히나 여학생이 없었어요. 그만큼 학과 내에서 저는 참 희귀한 존재였고 그런 저에게 지도교수님은 “꽃박사가 되라”고 하셨죠. 그 말이 어쩌면 비학술적일 수 있지만 꽃을 연구하는 것도 식물의 핵심 분야였기 때문에 계속 연구했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방방곡곡 오지를 누비며 희귀식물에 관한 연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연구를 하면서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잊지 못할 순간이야 너무 많고 버전도 여러 가지가 있죠.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일이라 늘 고생스러워요. 그렇지만 희귀식물 연구를 하면서 여태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식물들을 만나고 수집하는 일, 또 그러한 식물을 수목원에 정착시켜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서 하는 모든 일들은 보람 혹은 감동이라는 말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찬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대학원생 때 연구 차 백두산에 간 적이 있어요. 그 당시 백두산이란 곳은 지금처럼 가기 쉬운 곳은 아니었어요. 사실 대학원에서 몇 년 동안 공부하면서도 국내 북부지방에 분포하는 식물들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식물도감 외엔 만날 방법이 없었거든요.그렇게 그림으로만 만났던 식물들을 어렵게 도착한 백두산 천지에서 정말 거짓말처럼 하나하나 다 확인할 수 있었죠. 바닥을 밟을 수 없을 만큼 지천에 깔린 고산화들을 바라보며 내려오다 우연히 조선족 화가 부부를 만나 그들이 그린 세밀화를 나눠 받은 일도 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벅찬 순간이죠.

 

임업연구자의 역할과 자세

Q. 광릉숲은 2010년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는데 이것이 수목원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요. 광릉숲은 보전된 역사만 해도 560년 정도 되고요. 그만큼 이곳의 역사, 문화, 보전적 중요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기도 해요. 많은 사람들이 보전지역이라 하면 먼저‘보전’에 집중하게 되는데, 사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 물권 보전지역은 ‘ Man and the Biosphere(MAB)’로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잘사는 것이 유네스코 MAB의 주요 가치예요. 예전에는 절대적 보전지역이 의미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보전지역은 오히려 보전이 어렵기도 합니다. 정말 자연을 잘 보전하려면 사람이 자연에 기대어 자연에게 혜택도 받고, 그러한 사람들이 다시 자연을 보전하고 가꾸는 것이 중요하죠. 결국 여기 광릉숲도 사람과 자연이 지속가능한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인근 지역 주민들과는 완충지역의 보전-개발 갈등을 조정하기도 하고, 이 지역 전체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을 구축하는데 고민하고 매진하는 중이죠. 또 이것이 후대에게 광릉숲을더 아름답게 물려줄 수 있는 준비와 시작을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Q. 임업연구사라는 직업이 다소 생소합니다. ‘임업연구사’라는 직업은 무엇인지 하는 일과 전망 등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임업연구사는 국가기관의 소속인 연구직 공무원이에요. 크게는 우리나라 산림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직업입니다. 임업 분야가 과거에는 단순히 목재를 생산하고 숲을 가꾸는 일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사회가 굉장히 다변화했기 때문에 임업연구사도 시대에 접목해서 임업에 관련된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됐어요. 여기 국립수목원에 계시는 연구사들도 임학, 조경학, 생물학, 지리학, 교육학 등 전공도 매우 다양해 오히려 타 학과 출신 직원이 더 많아요. 한번에 많은 인원을 채용하지는 않지만 사실 수요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관련 학과 전공자들이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국내 생태계 또한 점차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 고유종이 멸종된다거나 반대로 외래종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오는데요. 오랫동안 식물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들은 꽤 오래 전부터 이야기가 되고 있던 문제예요. 한 때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를 두고 자연의 변화에 대해 너무 선동적인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있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최근의 기후변화는 일정한 패턴이 아니라 정말 예측이 어려울정도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어서 굉장히 심각하고 또 시급한 것이죠. 국립수목원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식물분포 조사를 통해 기후변화 취약종 300종을 선정해 종류별로 식물 분포도를 분석·예측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각 도립수목원과 협업하여 장기 모니터링도 하고요. 그 결과 최근에는 기상데이터를 이용해 구상나무 자생지를 새로 발견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Q. 이러한 환경 변화에 연구자들이 앞으로 취해야 할 자세와 역할엔 무엇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임업연구자들은 숲을 배경으로 하는 임무에 마음을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구자는 전문성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서 거듭나는 일이 자신도 발전하고 국가적으로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신 그냥 전문성이 아닌 의식 있는 전문가가 돼야겠죠. 요즘 약간 아쉬운 것이 뭐냐면 젊은 친구들이 공무원을 하려고 줄을 서고 오랜시간을 들인다고 해요. 하지만 수목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정작 제대로 훈련된 전문가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아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정해진 길은 따라가면 바로 무엇이 되는 길이고, 비교적 쉽고 안전하게 다다르겠죠. 하지만 정말 자신이 의지를 갖고 한 분야에 몰두하고, 투자하고, 남들이 가지 않을 길로 개척해 나간다면 과정이 어렵다 해도 결과는 펼쳐진 세상이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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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더불어 가는 삶

Q.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점점 캠핑족, 등산족이 늘어나는 현상도 그렇고, 도시텃밭이나 정원을 가꾸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자연이나 생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데에는 어디에 이유가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자연을 찾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에요. 회색, 도시, 산업, 물질문화 속에서 이제는 휴식이 필요하고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 점점 더 필요해졌죠. 그것에 대한 해답이 바로 자연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숲이잖아요. 우리나라처럼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바로 산을 탈 수 있는 국가는 세계 어딜 가도 찾기 힘들죠. 그만큼 우리나라는 산림이라는 풍요로운 소재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더 효율적으로, 더 가까이 국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좋은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 역시 수목원이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반면에 최근 한 사진작가가 220년산 금강송을 무단 벌목한 것이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산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개인적 이익만을 위해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바람직한 태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자연을 대해서는 안 되겠죠. 대표적인 문화가 희귀 난초를 기르는 문화예요. 자연은 내가 소유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같이 있고 오랫동안 공유해야 아름다운 것이거든요. 자연은 자연대로 놔두고, 키우고 싶은 식물은 시장에서 사서 키우는 것이 맞아요. 그래야 자연도 보전되고 식물산업도 성장해요. 숲에 있는 이름 모를 식물들도 다 존재 가치가 있고 그 안의 구성원이에요. 그들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미래를 연결 짓는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죠. 그러한 맥락에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과 사랑해서 소유화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생물의 다양성만큼 접근하는 방법 또한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정해 놓은 한 가지 가치로 자연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을 폭넓게 갖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연구에 매진 중인 대학원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들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추면 좋겠어요. 사실 눈앞의 작은 것들에 매달려서 조금 멀리 있는 큰 틀을 못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요즘 세대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연구자들은 보통 자기 연구에 갇혀서 몰두하다가 실제로 어떤 기관에 들어가면 자신이 꿈꾸던 것이 현실과 달라 실망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우리가 ‘연구를 도대체 왜 하는것인가’라고 자문했을 때, 그 답은 아무래도 ‘세상을 이롭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연은 단순히 휴식을 넘어서 내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있어 충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폭넓게 자연을 보는 눈을 갖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냥 보지 말고 맘을 툭 놓고 자연을 바라본다면 어쩔 때는 맑고, 생명력 있게 반짝거릴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학생들이 이러한 것을 느끼기까지는 많이 바쁜 현실에 치여 살겠지만 한 템포만 쉬어가면서 그것들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요.

 

대담·정리 :김내영 | myjq180@khu.ac.kr / 사진 : 이진수 |  geoleejs@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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