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호 문화비평: 미투 운동과 반지성주의] 필요불가결한 순간들 #미투 운동과 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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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당위와 이론의 운명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여긴다. 페미니스트 비평가 벨 훅스(Bell hooks)가 말하듯, 페미니즘은 모든 종류의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을 지칭한다. 페미니즘의 결은 다양하고, 이념적 가치관과 시각 차이에 따라 페미니즘의 갈래도여럿이지만, 그 어떤 페미니즘도 결국은 성적 차이에 기반을 둔 차별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목소리를 같이 한다. 철저히 가부장적인 가치와 질서가 표준적‘인간’의 가치와 질서였던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여성의 목소리와 시각은 배제됐다. 오직 페미니즘적 운동과 이론이삶과 지식의 영역에서 젠더적 차이라는 프리즘을 제시하며, 남성(지배자) 중심적인 가치와질서의 불완전성과 모순과 폭력성을 지적한 이후에야 비로소 인간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성차별 반대에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필요치 않다. 우리 시대에 제대로 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는 없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진지하게 이어나가야만 한다.하지만 페미니즘의 당위가 페미니즘에 대한 모든 비판을 거부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는 복잡하고 모순적이어서 모든 이론과 이데올로기는 결코 인간과 사회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이론은 다른 이론을 필요로 하고, 서로 교차하며, 서로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교정해나간다. 거기에 실패한 이론은 도태된다. 이러한 이론의 운명에서 페미니즘도 벗어날 수 없다. 페미니스트적 시각 하나로 인간과 사회와 국가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인간 삶의 깊은 결들을 명쾌하게판단하는 일 역시 말할 나위가 없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은 다른 모든 이론과 마찬가지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에 열려 있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을 때 하나의 도그마(dogma)로전락한다.

논란에 열린 페미니즘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래 2018년 현재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열풍이강하게 불고 있는 한국에서는,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목소리가 여간해서는 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페미니즘이‘완벽’해서는 아닐 터이다. 예컨대, 미국의 페미니즘은 그 오래되고 치열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내부 논쟁이 벌어져 왔고, 벌어지고 있다. 페미니스트이자 여성인 비평가와 이론가들이 솔직하게 페미니즘의 어떤 경향을 비판하고, 그비판은 합리적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는 편이다.가장 최근에는 노스웨스턴대학의 좌파 페미니스트 로라 키프니스(Laura Kipnis)가『원하지 않는 진전』(2017)이라는 책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이 책에서 키프니스는남성 가해자(교수)가 여성 피해자(학생)에게 가한 성폭력 사건들과 판결들을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이 사건들이 미리 정해진 서사에 따라 판단됨으로써 판결에 있어 절대적으로 여성 쪽의 진술만 받아들여진다고 비판한다.‘성의 문제에서 남자는 언제나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포식자이고 여자는 언제나 순진무구하게 덫에 걸린 먹잇감’이라는 오래된 서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서사 속에서 여자는 피해자와 희생자의 역할 속에 갇히고, 성관계는 오로지 위험한 것으로 재현되며, 남자의 힘은 심문 되는 대신 이미 주어진 것이 된다. 키프니스는 이를‘멜로드라마에 포획된 페미니즘’이라 이름 붙인다. <가디언>,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의 언론이 키프니스의 인터뷰와 글을 실었고, 그녀의 주장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어떤 경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키프니스가 한국에서 이런 책을 썼다면? 주요 출판사에서 출판조차 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2017년 봄부터 한국의 한 대표적 영화잡지의 칼럼을 고정으로 쓰게 되었는데, 『82년생 김지영』(2016)을 비판하는 원고를 썼다가 원고 자체가 실리지 않는‘수모’를 겪었다. 1년이 지난 2018년 4월에는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옹호하며 젠더비평의 과잉을 비판하는 원고를 썼다가 담당 기자로부터 원색적인 조롱을 듣고(그 기자는 내 원고를 통해‘성폭력가해자의논리를이해하게됐다’고 말했다) 원고를 수정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칼럼이 실리자마자‘개편으로 인해 필자를 교체하게 되었다’는통보를 받으며 필자 자리에서‘잘렸다’. 내가 1년간 그 잡지에 썼던 12편 남짓한 칼럼 중 한국 페미니즘의 어떤 경향을 비판했던 오직 두 편의 글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 두 편의글을 다른 주제로 썼거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대신 무조건 찬양하는 글을 썼다면, 양상은달라졌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지인인 어떤 문학평론가는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몇몇 페이스북 친구들로부터 친구 삭제를 당했고, 그가 가르치던 한 학생은 수업에서『햄릿』을 읽겠다고 하자‘여성 혐오 텍스트를 배우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수강취소를 했다고 한다. 어떤 페미니스트 비평가는‘최근의 페미니즘에 문제가 많다’고 내게 말하면서도, 그걸 직접 원고로 쓸 수는 없다고 고백했다. 내 수업을 듣는 일부 여학생들은 <나의 아저씨> 얘기를 꺼내자, 아저씨와 아가씨의 연애는 역겹다고 말했다. 내가‘드라마를 봤느냐’고 묻자,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와 아가씨의 흔한‘연애’서사가 아니다.내가 겪은 이 사소한 일들은‘개인적인 것’일까, 아니면‘정치적인 것’일까? 나는 페미니즘을 둘러싼 이 개인적인 일들이 현재 한국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부르는이들의 한 형국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여긴다. 그 징후의 이름은‘반지성주의’다. 이 반지성주의는 현재 두 가지 차원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는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한 부정이고, 다른하나는 비판에 대한 거부이다. 객관성, 즉 편견과 왜곡에서 자유로운 판단이라는 규범을 남성적 이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떤 사건에 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가령 #미투 운동의 어떤 사례들은 객관적인 법적 판단으로 넘어가기도 전에‘법 자체가남성’이라는 말로 부정되며, 피해 주장자의 말은 곧바로‘진리’가 되어 가해 지목자의 사회적 생명을 끊는다. 어떤 사례들에 대한 남성 지식인의 코멘트는‘Mansplain’으로 치환되어 조롱당한다. 최근 경향을 성찰한 서동진 비평가의 페이스북 게시글은 집중포화를 맞아결국 그의 입장 철회와 사과로 이어졌다. ‘비판은 가능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는데, 기실 페미니즘 자체가 비판이라는 지적 행위가 없었다면 아예 가능하지가 않았다는 점은 무시된다. 그 어떤 비판에도‘적절한 시점’은 없으며, 그 시점을 따지는 순간 가치는 정략이 된다. 객관성에 대한 부정과 비판에 대해 거부라는 이 반지성주의는 어쩌면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정체성 정치’자체의 한계이기도 하다.

‘무조건’정당한 운동은 없다

페미니즘, 더 구체적으로 #미투 운동은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젠더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추동하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적 힘이다. 이 운동은 정당하다. 하지만 이 운동이‘무조건’정당한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운동과 마찬가지로, #미투 운동에도 역시 그 전개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들, 모순들, 균열들, 파열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그것이‘섹슈얼리티’와‘권력’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훨씬 더 섬세한 접근과분석이 필요하다. 왜? 섹슈얼리티는 권력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욕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욕망은 쉽고 단순하게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측면들을 갖고 있다. 권력 역시 쉽고단순하지 않다. 푸코를 읽은 우리들은 안다. 권력이라는 것이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게아니라, 상황에 따른 힘의 배치 때문에 이리저리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보면,#미투 운동의 사례들은 서사의 문제로도 읽을 수 있다. 모든 서사가 그렇듯, 거기에는 시점이 있고, 왜곡이 있고, 생략이 있고, 무의식이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오직’남과여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만 있는 게 아니며, 말해지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블랙홀들도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비판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런 블랙홀들, 이런 권력과 욕망의 모순과 복잡성을 함께 읽어내려는 시도이다. 오직 그런 비판들, 기존의 관점과 생각을 벗어나 사유하려는 그런 비판들과 더불어서만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은 우리의 인식에 충격을 줄 수 있고, 그 충격으로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삶에는사람들이생각하는것과다르게생각하고 사람들이보는 것과 다르게 인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문제가, 계속적인 인지나 생각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순간들이 있다”고 푸코는 말한다(『성의 역사 2』(1984)). 오늘날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의 담론이 대면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필요불가결한 순간들”이다.

 

문 강 형 준 / 중앙대학교 영문과 교수, 문화평론가

 

* 본 지면은 청탁 지면으로 본보의 방향성 및 기획 의도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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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잘 읽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네요. 보다 많이 읽혔으면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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