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호 특강취재: 푸른역사아카데미, <로쟈와 일본 근대문학 읽기>] 나쓰메 소세키와 만나는 일본 근대문학

▲ 강사 로쟈가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푸른역사아카데미는 3월 5일부터 4월 23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에 <로쟈와 일본 근대문학 읽기>라는 제목으로 총 8차례 특강을 진행한다. 본 특강은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 작가들을 살펴보며, 모리 오가이(森鸥外),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등 강의마다 다른 작가의 저서를 통해 일본 문학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기획됐다. 강사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이현우 문화비평가이며, 3월 19일 진행된 세 번째 강의에서는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갱부』를 다루었다.

 

일본 근대문학의 배경탐구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시대부터 현재까지를 근대 또는 근현대로 구분한다. 여기서 다시 메이지(明治)와 다이쇼(大正)시대를 근대로, 쇼와(昭和)와 헤이세이(平成)시대를 현대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메이지 정부는 오랜 쇄국정책에 따른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서둘러 서구 문명을 받아들였다. 신분제도 폐지와 개정된 학제 도입, 양력 사용 등 새로운 체재를 확립하며 부국강병책을 꾀했고, 청·일, 러·일전쟁을 거치며 국력도 강해졌지만 급속한 발전에 따른 모순도 나타났다. 신시대 수립을 목표로 했던 메이지의 근대화는 새로운 문학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에도 말기 이후 희작(戲作)문학, 전통시가(詩歌), 가부키(歌舞伎)의 흐름을 잇는 작품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문명개화를 추진하는 풍조는 서양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번역문학을 활발하게 했다. 뒤이어 민권운동과 정치소설이라는 새로운 서양 문학 이념이 소개되며 가까스로 근대문학의 움직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와 야마다 비묘(山田美妙)의 언문일치운동도 근대문학발전에 큰 힘이 됐으며, 모리 오가이(森鸥外)의 창작과 번역으로 인해 문학 계몽운동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세기 말 유럽에서 발생한 근대과학 정신과 결부된 자연주의 운동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1910년대 현실의 어두운 면을 묘사한 자아의 고백은 일본 독자가 개인의 해방을 지향하도록 자연주의 문학운동을 도왔으며, 시문학도 영향을 받아 근대시를 기반으로 구어 자유시가 완성되었다.

 

‘자기 본위’, 자기다움을 찾아 정착했던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도쿄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한문학을 좋아한 그는 11살의 나이에 친구들과 <마사시게론(正成論)>이라는 일본 무장에 대한 논문을 한문으로 써냈을만큼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또한 영어 실력도 우수해 도쿄대학교로 진학 후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893년 26살에 졸업 후 교사로 부임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는 듯했지만,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과 함께 극도의 신경쇠약을 겪게 된다. 이후 친족들의 소개로 귀족원 서기관장의 장녀 교코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33살이 되던 1900년 문부성에 의해 3년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당시 나쓰메 소세키는 유학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청·일전쟁 승리에 따른 배상금을 바탕으로 국비유학이 기획됐고, 일본 문부성은 유학생들에게 최신의 제국주의 이론과 내셔널리즘을 습득해오길 기대했기때문이었다. 로쟈는 신경쇠약으로 인해 나쓰메 소세키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자상함과 매우 멀었지만, 흥미롭게도 가장 최악으로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이때 선택했던 유학 때문이라 설명했다.
혼란스러운 정세와 유학비용에 대해 불안함을 품고 런던에 도착한 나쓰메 소세키는 두 가지의 허울을 마주한다. 첫 번째는 영문학, 두 번째는 퇴화론이란 허울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수업을 들으며 최신의 영문학을 연구하려 했으나, 영문학 작품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지식인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사로잡혀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퇴화의 공포였음을 깨닫는다. 그가 떠나 온 일본에서는 오직 서양을 닮기만 하면 진화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미 제국주의의 정점에 있던 영국은 몰락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했다. 결국 영문학에 위화감을 느끼며 인종차별로 인해 거처도 여러 차례 옮긴 나쓰메 소세키는 학문이란 특별한 지위와 특정한 인종을 위해 변화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두 개의 허울에 대응할 전략을 마련하고자 했다.
첫 번째 전략은 문학에 대해 철저히 파고드는 것이었다. 근대 문학이 어떤 필요로 발달했으며 어떻게 퇴화할 것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1년여 남은 유학 생활 동안 오로지 하숙방 안에서 각종 서적을 읽는 데에만 몰두했다. 이윽고 미쳤다는 소문까지 돌며 자국민들에게 퇴화의 상징이 되어갔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애쓰는 태도를 ‘자기 본위’라고 명칭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작품에서 이 태도를 강조했다. 이로써 생겨난 두 번째 전략은 자기 본위의 길을 모색하는 문학작품을 쓰는 것이었다. 한문학도, 영문학도 아닌 나쓰메 소세키 자신만이 쓸수 있는 문학을 찾고자 했다.
그는 귀국 직후『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하며 자신이 갖고 있던 두 가지의 전략을 고스란히 표출했다. 이 작품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하릴없이 집 안에 있는 주인의 삶을 고양이의 시점에서 바라본다. 작품이 발표된 1905년은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의 언론은 제국주의를 찬미하기 바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세계를 그리며 사회진화론의 승전보에 맞서고자 했다. 이후 도쿄 아사히신문사의 초청으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진화론적 고등교육에 갇힌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38세부터 49세까지 12년 동안 장편소설을 연재했다. 그리고 불과 14년 전, 새로운 화폐가 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은 매일같이 1,000엔 속에 그려진 나쓰메 소세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흐릿한 세계, 『갱부』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 년 전 발표된 나쓰메 소세키의『갱부』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낯선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선 주로 지식인이나 고등유민의 고뇌를 다뤄왔던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우연히 노동의 세계를 경험하는 19세 가출 소년이 등장한다. 두 소녀와의 복잡한 삼각연애에 휘말리며 우울감에 빠지는 주인공 소년은 세상의 규칙을 움직일 수 없다면 자신이 움직여야 함을 자각하고, 5월의 어느 날 밤 부유한 집을 떠나 북쪽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소년은 ‘그저 어두운 곳으로 가고 싶다.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불안을 종결시킬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소년이 원하는 어둠의 곳이란 자신의 몸도 보이지 않는 곳, 즉 죽음의 장소를 일컫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소년에게 어둠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날 기회가 찾아온다. 길에서 누군가가 소년을 불러 세워  “임자, 일할 생각 없나? 어차피 일은 해야 할 것 아닌가”하며 묻는다. 이에 소년은 “일해도 됩니다만”하고 대답한다. 자신을 누군가 불렸다는 사실에 안도한 소년은 들떠있는 영혼이 방황하면서라도 육체에 머무를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야바위꾼 알선업자에게 이끌려 아시오구리 광산으로 떠나며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의 갱부가 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년은 갱부가 되지 못한다. 지옥의 입구와도 같은 구불구불한 갱도를 따라 광산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지만, 그 밑바닥에서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한 사람을 만나 지상으로 올라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5개월 후 광산을 떠난 소년은 다시 도쿄로 돌아가며 작품은 끝을 맺는다.
나쓰메 소세키의『갱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정면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근대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는 주인공을 그려내고 있다. 로쟈는『갱부』안에 근대화에 대한 거부감과 시대의 변화에 망설이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끊임없는 혼란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깔로 실낱같은 희망을 담아낸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앞에선 한문학, 영문학의 구별은 무의미해 보인다. 시간을 허물고 지금도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는 그의 글들을 살펴보면, 시대가 아닌, 문학 안에 시대가 담겨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로쟈의 일본 근대문화 읽기>는 4월 2일, 9일, 16일과 23일에 만나볼 수 있으며 특강을 듣는 모두가 자신의 언어로 근대문학을 탐구하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김수애 | suaepic@khu.ac.kr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