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호 문화비평: 시간의 고향] 미디어가 재현하는‘추억’이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

지난 3월 31일, 13년의 대장정을 마친 MBC <무한도전>은 2월 설연휴 특집으로 <토토가3- H.O.T.>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즌3를 선보였다. 이 기획은 왜 <무한도전>이 그렇게 오랫동안 예능프로그램으로서 인기를 끌었는지를 다시 한번 수긍하게 했다. 해체한 지 17년이 된 아이돌 그룹 H.O.T. 멤버들이 재결합해 공연하는 기획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MBC <무한도전>은 <토토가>라는 기획으로 1990년대 가수들, 젝스키스 특집공연, 그리고 H.O.T. 특집공연 등 세 번의 시즌을 선보이면서 1990년대 대중음악 스타들의 공연을 성사시켰다.

1990년대 청춘이었던 대중의 추억소환에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도 빠질 수 없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1997년, 1994년, 1988년 당시의 대중문화와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현실감있게 재현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스포츠, 대중음악 등의 팬덤 문화의 형성과정과 일상생활을 밀도있게 보여주며 드라마 속 재현되는 과거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크게 공감했다. 그 외에 JTBC의 예능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던 가수들이 무대에 서고 있다. 이렇듯 최근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는 방송프로그램은 19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대중들의 문화를 중요한 소재로 선택하고 있다.

 

▲MBC<무한도전> <토토가3 – H.O.T.>에서 17년 만에 재결합한 H.O.T.  ⓒimbc.com

 

가장 풍요로웠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대중들

한국 사회에서 1990년대는‘풍요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군사독재정부가 아닌 민주정부의 등장, 해외여행의 자유화,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 시장 형성, 대중문화 팬덤 형성 등 한국사회의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시기이다. 따라서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세대의 취업이 어려워진 지금, 풍요롭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모든 세대의 공통적 특징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문화가 주를 이루었던 몇 년 전과 달리, 최근에는 아케이드 게임이 전시되어 있는 카페도 적지 않으며, 디지털 음원이 아닌 LP로 음악을 듣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도 이를 방증한다.

사실 이러한 추세는 국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최근 미디어콘텐츠 플랫폼인 넷플릭스(Netflix)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역시 미국 사회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1980년대를 주요 소재나 배경으로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1980년대는 냉전체제의 완화, 구소련의 붕괴, 미국 경제의 황금기라는 특징을 지닌다. 당시 대중문화콘텐츠도 폭발적이었는데, <이티 E.T>(1982), <환상특급 Twilight Zone: The Movie>(1983), <터미네이터 Termintor>(1984), <빽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1985)와 같이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영화가 제작된 시기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작한 상상력이 풍부한 영화가 선보였던 시기도 1980년대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2016~ )를 시즌3까지 제작하고 있는데, 이 드라마 역시 1980년대의 황금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선택해 보여주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도 자신들이 가장 풍요로웠던 1980년대를 선택한 콘텐츠에 큰 관심을 보이는 특징은 국내의 대중문화에서 1990년대를 회상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 것과 묘하게 겹쳐진다.

 

한국의 대중문화, 소비자의 추억에 응답하다

지난 2월 방송된 <토토가>에서는 H.O.T. 특집공연 신청자 수가 예상을 훨씬 넘어서자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변경했다. 여전히 자신의 우상을 향해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당일 초대권을 받지 못한 200여 명의 팬들은 공연장 밖에서 H.O.T.를 응원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토토가> 시즌2의 주인공이었던 젝스키스는 이 무대를 계기로 재결합해 현재까지도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도 세대별 문화향유의 경험은 다르지만, 과거 음악에 대한 공감은 세대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치열하게 활동했던 과거의 스타들이 현재는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지금의 인기가수들이 과거의 노래를 재구성해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가족이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았다. 아마도 <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에는 제작진들도 그 시절에 10대와 20대를 보냈던 세대라는 점, 그리고 세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 등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제작 과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추억할 수 없는 청년세대들

풍요로웠던 1990년대 대중문화를 추억하는 콘텐츠 제작의 시작은 어쩌면 <건축학개론>(2012)의 흥행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1994년 발표된 노래 <기억의 습작>이 영화 속에서 흘러나올 때 많은 관객은 1990년대를 떠올렸을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첫 방송이었던 <응답하라 1997> 역시 2012년에 방송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추억의 향유에만 몰입하고, 당시의 대중문화산업이 지니고 있었던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는 왜 과거의 문화를 마주하는 것에서 행복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것인지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다. <슈가맨>에서 만난 많은 가수들은 제작사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신의 꿈을 중도에 포기했다고 답했다. 그리곤 후배 가수들에게‘정산이 중요하다, 꼭 챙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행자의“왜 무대에서 사라지신 겁니까”라는 질문에 가수들은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곤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1990년대는 풍요로운 시절이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확산은 대중으로 하여금 긍정적인 미래와 행복한 삶을 기대하게 했다. 1990년대 후반 국내에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었고, 미디어 관련 기업의 급성장으로 세계적 기업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국가경쟁력을 쟁취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문화산업과 관련된 국가의 적극적인 홍보와 정책도 큰 몫을 했다.

1990년대는 집단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을 논의하기보다 개인 중심의 생활과 문화 욕구가 더 중요하게 평가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정치적 영역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문화생산과 물질적 소비가 큰 관심사였다. 이러한 세대를 일컬어‘신세대’라고 명명했고, 이후 사회변화에 적응하는 세대들의 정치적, 문화 소비 성향이 다양해지면서 X세대, Y세대, Z세대 등으로 점차 세분화되었다. 이 모든 표현은 문화 소비 방식, 미디어 소비, 가족구성원의 변화, 사회의 정치적 상황 등 기존의 베이비붐 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소비의 주체가 아닌‘경제적인 인간되기’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온전한 주체는 경제적 독립이 가능한 인간이어야 하며, 이것이 가능하게 하려면‘경제적 활동을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 경기불황과 소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적자생존의 사회구조에서 삼포세대 혹은 N포세대로 불리는 청년세대가 미래의‘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우리가 1990년대의 문화에 열광하는 것은 지금의 어려운 경제적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응답하라>시리즈 속 20대들은 경제적 어려움도 이웃공동체의 도움으로 이겨내고, 하숙집문화라는 공동체 생활 속에서 개인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다. <토토가>에서 보여주는 1990년대 10대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학교에 등교하기보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긴 줄을 늘어서 있는 자료화면 속 10대들은 팬덤 문화의 온전한 주체로 스스로를 규정할 만큼 활동적이고 주체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세대들은 대중문화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가. 프로슈머(prosumer)라는 생비자(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논의되고 있을까. 과거를 추억하는 프로그램 속 스타들에게 환호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종 임 /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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