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호 테마서평: 4월의 제주] 4·3, 70년의 기억, 기억의 힘

[1]『제주4·3을묻는너에게』(허영선저, 서해문집, 2014)

[2]『해녀들』(허영선저, 문학동네, 2017)

[3]『순이삼촌』(현기영저, 창비, 2015)

 

 

트라우마의 섬, 제주도

제주섬은 기억의 땅이다. 4·3의 협곡에서 오랜 세월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사는 섬, 동 시대의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땅이다. 물론 그 기억의 조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섬 전체가 ‘거대한 감옥’같은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기억은 함께 전이된다. 역사적 상흔의 기억처럼 질긴 것은 없기에. 그리고 그 기억은 늙지 않는다.

4·3은 이제 70년의 능선을 넘는다. 사람들은 동백꽃 배지로 4·3을 기억하고 공감한다. 70년 전에 온전히 피어 보지도 못하고 떠난 사람들 이 제주섬엔 10명 중 한 명꼴이었다. 달리다 보 면 하얀 눈 속에서 동백이 애처로운 눈초리로 피어있기도 했고, 눈 덮인 산야에 통으로 뚝뚝 나동그라져 멀리에서는 선혈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그 꽃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제주공항 활주로의 거대한 구덩이 속에 수많은 주검 이 암매장됐으며, 제주의 아름다운 절경의 배후에는 통곡마저 삼켜야 했던 비명들이 묻혀 있다. 찬란함과 비애의 두 얼굴을 가진 모순된 땅 제주도. 그럼에도 사람들은 섬 전체에 스멀거리는 트라우마의 안개를 눈치채지 못한다.

 

4·3, 공동체를 무너뜨린 현대사 비극

4·3은 세계 냉전 체제 속에서 변방의 섬 제주도를 거대하게 덮친,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 중 하나다. 해방 후에 일어났으나 미군은 4·3을 철저히 방조하고 묵인하고 지시하였으며, 이후 어떠한 해결의 노력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4·3은 대대로 내려오던 제주섬 공동체를 철저히 파괴했으며, 인명과 재산의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고, 정신까지 황폐 하게 했다. 4·3시기 민간인 학살은 현대사에서 유례없는 규모였다. 그러나 50여년 동안 4·3은 금기어로 침묵 당했다. 역대 군사정권의 시각은 4·3을 공산 폭동이자 반란으로 규정했다. 온갖 탄압 속에서 왜곡된 4·3의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가 지속되었고 제주사람들 스스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저항하고, 획득했다.

1948년 10월 17일 제주지역 토벌 사령관 9연대장 송요찬의 “해안선 5킬로 이상 지역은 적성 지역으로 간주하고 통행증 없이 출입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사살 하겠다”라는 포고령은 강경 진압을 예고했다.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약 4개월 동안의 초토화 작전 시기 중산간 마을 주민들의 희생은 참혹했다. 한겨울, 산이 무섭고, 산 아래도 무서웠던 사람들은 마을 소개령에 따라 해안으로 도피했으나 그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 아래 두려움에 떨던 청년들은 이리저리 피신하다가 일본으로 떠나기도 했다. 남자들이 없는 집은 도피자 가족이라 해서 남은 가족이 끌려가 희생되는 ‘대살代殺)’의 국면도 펼쳐졌다. 가족의 학살 앞에서 눈물마저 흘릴 수 없었던 세월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1,00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됐고, 불법 군사재판으로 2,500여 명이 전국 각지에서 수형 생활을 해야 했다.

4·3진상조사보고서는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 한 사건이다”라고 정의했다. 지금도 4·3에는 이름이 없다. ‘백비(白碑)’는 ‘정명(定名)’이 새겨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제주4·3평화기념관의 조각상 <비설>                                                                                          ⓒ필자 제공

 

금기의 언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낸『순이삼촌』

오랫동안 4·3은 교과서에서도 반란 폭도 등으로 왜곡되었다. 눈물을 흘려서도 주검을 함부로 매장하지도 못했다. 하여, 죽은 자에 대한 애도조차 허하지 않았다. 야만의 시대에 대해 진상 을 요구하며 정치권으로 소리를 냈으나 그것은 묻히기 일쑤였다. 독재정권은 제주 사람들을 “속솜하라(조용히해라)”하게 만들었다. 1978년 이었다. 4·3이후 30년 만에 작가 현기영은 소설 로 ‘순이삼촌’을 불러내 대학살의 4·3을 정면으로 ‘발설’했다. 제주에서 ‘삼촌’은 가까운 이웃 과의 사이에서도 보편적으로 쓰는 호칭이다. 『순이삼촌』은 제주시 해안가의 아름다운 마을 북촌리의 대학살과 이후 극도의 고통과 상처를 드러낸다. 1949년 섣달, 이틀에 걸쳐 450여 명 이 집단 학살당한 마을. 이 마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순이 삼촌’의 상처는 4·3트라우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몰래『순이삼촌』을 읽고 이러한 비극이 제주도 누구나의 가족사에도 해 당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굳게 다문 고향 삼촌들의 입을 겨우, 은밀히 열게 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하며 끝내 ‘4·3’을 세상 밖으로 내보냈던 작가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소설은 곧 판매 금지되었으며, 4·3이란 이 기호는 다시 쉬쉬하며 지하에서 움직였다. 누구도 이 섬의 고통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현대사에서 제주 4·3을 수십 년간 인지하지 못했다. 4·3의 무수한 희생이 묻히고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이유다. 4·3은 제주도민 스스로 이야기해야 했다.

1987년 6월 항쟁은 비로소 4·3의 얼어붙은 입을 열게 한 신호탄이 됐다. 민주화 이후 밀려온 과거청산의 물결 속에서 4·3도 비로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1989년 비로소 비밀처럼 감춰뒀던 작은 목소리들 이 툭툭 터져 나왔다. 조금씩 수집되고 구술된 목소리들이 구슬로 꿰어지면서 4·3의 진실은 햇볕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산 자들이 가진 생생한 기억은 4·3의 공적 역사를 이어갈 힘이 되었다.

언론통제와 해상통제 등으로 제주도의 진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시대를 살아냈으나, 생존자들은 살아남아 증언했다. 기억의 힘은 강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숨겨진 자료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오고,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으로 사 과한 것은 사건이 발발한 지 시간이 한참 지난 2003년이었다. 한국 현대사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연코 4·3을 건너뛸 수 없다. 4·3을 따라간다는 것은 이 시대, 국가란 무엇이고, 진실과 정의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색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연관이 있는지, 보편적인 가치는 무엇인지, 4·3은 이시대 우리의 삶과는 어떤 맥락이 통하는 것인지를 다양한 시선으로 질문하게 만든다. 과거사를 바로잡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다.

 

기억의힘-『 제주·3을묻는너에게』,『 해녀들』

4·3은 아동과 여성, 노약자 등 소수자에 대한 인권 유린과 고통의 규모를 압도적으로 표출한다. 전쟁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에 담긴 역사적 진실은 오래 묻혀 있었다. 아동기에 당했던 고통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아직도 내면의 고통을 감추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직접 체험한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으며, 생존자들은 정신적 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는 그러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고통과 희망의 전언이다. “해서 제주도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땅, 결코 묻어버릴 수 없는 기억의 땅이다. 뼛골마저 사그라지던 굶주림 속에서도 오로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살 수 있 다)’며 살아온 사람들의 땅이다”(『제주 4·3을 묻는 너에게』中)

『해녀들』은 일제강점기부터 4·3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목숨 걸고 물의 생을 살아야 했던 제주 여성들의 서사와 서정이 버무려진 목소리들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다큐멘터리의 삶이 한 편 한 편에 녹여지고 있다. “남자들이 모두 핏빛 바다로 떠난 그 날 이후 북촌 여자들은 물질하지 못하면/ 섬을 떠나야 했다…”『( 해녀들』-「 북촌 해녀사」中) 또한 열세 살에 아버지 대신 성담을 쌓는 노역에 동원돼야 했던 소녀·해녀는 아버지 대신 나갔다가 돌무더기에 등이 깔리는 바람에 후유장해의 삶을 살고 있다.

4·3이후 70년, 질긴 기억을 안고 끝내 생애의 마지막 주기를 살아내는 4·3세대들에게 올해는 어느 해보다 북받치는 애도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일출과 일몰처럼 4·3이 일상에 깔려있는 제주도의 찬란한 봄은 기억하라,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허 영 선 / 제주4·3연구소소장·시인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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