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호 영화비평:<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2017), 타인의 가난과 불행을 관람하는 것에 대하여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2017)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사람들이 모여서 불타고 있는 집을 구경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위치한 디즈니월드 건너편에 주거 빈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텔촌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불타고 있는 집은 모텔촌 근처에 있는 빈 집이다. 디즈니월드를 배경으로 삼았다고 해서 이 영화가 동화 속 이야기와 관련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배경인 모텔촌은 한때 디즈니월드를 찾은 관광객들로 붐비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주 단위로 투숙하는‘숨은 홈리스(Hidden Homeless)’들의 터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6살 아이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도 이들 중 하나로, 지금 불타는 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중이다. 무니와 핼리뿐 아니라 모텔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에 서서 맥주를 들고 “다 태워버려!”라고 외치며 불구경을 하고 있다. 바로 이어서 등장하는 장면도 모텔촌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어 주차장에서 싸우는 무리를 구경하는 모습이다. 두 장면은 모텔촌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주기 위한 의미로 작동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따로 떼어서 언급한 이유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난과 불행한 이들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www.imdb.com

 

 

 

 

 

 

 

 

 

 

가난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방식

 

우선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박지훈 평론가는 6살 난 무니와 친구들을 영화 전면에 내세운 점을 장점으로 언급한다(<씨네21> 1146호). 세상의 무게에 짓눌린 어른들과는 달리 무니와 친구들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세상은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터이다. 집 없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투숙비를 내며 살아가는 모텔이지만 무니와 친구들에게는 숨바꼭질하기 좋은 곳이다. 박지훈 평론가는 영화가 채택한 무니와 친구들의 관점 때문에 관객은‘어른들의 사정’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사태를 낭만화하지 않고 리얼리즘을 견지하는 흔치않은 경지”라고 평가한 황진미 평론가의 주장이 있다(<엔터 미디어> 3월 16일자 기사). 그는 이 영화가 자세한 묘사나 구구절절한 설명이 배제된 ‘절제된 연출’을 가지고 있어 아이들의 눈을 통해 그들이 바라본 세상을 화면에 담아냈다고 평가한다. 두 평론가가 펼친 주장의 핵심을 거칠게나마 요약하자면,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의 무게를 담담하게 담아낸, 비참한 현실에서도 다른 현실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작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용한 ‘담담하게’혹은‘절제된 연출’이라는 수식어 에는 리얼리즘에 관한 전제가 숨어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다르덴 형제를 연상케 하는 동반자적 시점을 취한 촬영 기법과 감독이 3년 가까이 숨은 홈리스들의 삶을 관찰한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사회문제를 고발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조명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이 리얼리즘적 양식과 대단한 영화적 가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학에서 리얼리즘은 미장센과 편집 같은 구성적인 요소를 최소화하여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영화에 담아냈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반면 형식주의(구성주의, 조형주의)는 미장센, 편집, 음향효과 같은 영화적 요소의 변형과 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보통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영화는 리얼리즘의 양식을 취하기 마련이며, 이 영화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목적에 어울리는 양식을 적절히 사용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해당 영화의 양식이 소재를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직조하는 논리의 일관성을 살려보는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돌이켜 보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무니와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젠시(발레리아 코토)는 디즈니월드 옆 주거 빈민들이 살고 있는 모텔촌의 아이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듯이 보여준다. 카메라가 포착한 무니와 친구들의 모습은 열악한 환경이나 비루한 현실에 짓눌린 어두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환경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불행을 내세워 디즈니월드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동전을 얻어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이 6살 난 아이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학교와 같은 사회적 제도의 바깥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염려는 헛된 상상일 뿐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런 변명 대신 사회적 제도와 어른들의 부재를 강조함으로써 아이들의 행위를 정확한 좌표 위에 위치 시킨다.

이러한 작동방식은 이 영화가 자랑하는 롱쇼트를 통해 진행된다. 모텔촌은 맞은편 디즈니월드와 닮고 싶었는지 ‘매직 캐슬’과 ‘퓨쳐 랜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모텔들의 외관은 파스텔톤의 색을 가지고 있는데 영화는 자주 그것을 풀쇼트로 강조한다. 때문에 관객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테마파크 바로 옆에 주거하는 빈민들의 삶이라는 양면성을 경험하게 된다. 디즈니월드에서 가장 가깝지만 그곳으로부터 가장 먼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양면성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사가 디즈니월드를 건설하기 위해 플로리다 주 올랜도 지역의 부지를 매입한 사업의 가칭인 동시에 플로리다 주의 주거 빈민을 위한 복지 정책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대조되는 구도가 영화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표적인 장면을 살펴보자. 무니는 공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앞장서서 스쿠티와 젠시를 어디론가 이끈다. 이때 화면은 건물의 파사드를 강조한 쇼트로 이들의 모습을 주변 건물과 함께 포착해서 보여준다. 그런 다음 등장한 것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디즈니월드를 찾은 관광객에게 거짓말로 동전을 얻는 모습이다. 이 장면의 전개는 무니와 친구들의 모습을 포착한 롱쇼트가 주를 이루는데, 이때 아이들의 모습은 건물과 대비되어 작게 보인다. 양면성 혹은 대비가 중심이 된 미장센은 소외된 곳을 조명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가난한 아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열악한 환경을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시각적 소비의 정황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 가면 더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뚜렷한 직업 없이 무니를 키우던 핼리는 사정이 여의치 않자 성매매에 손을 대고 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웃이 핼리를 아동국에 신고하자 경찰이 출동한다. 위탁가정에 가야 한다는 경찰과 아동국 직원의 설명을 듣자 무니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핼리는 지금까지 내가 잘 키웠는데 당신들은 잠시도 못 지켰다며 욕설을 내뱉기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욕설하는 핼리의 입을 클로즈업으로 끼워 넣는다. 다음 장면은 젠시에게 울면서 작별인사를 하는 무니의 모습이다. 젠시는 “앞으로 우리는 못 볼지도 몰라”라고 울먹이는 무니의 손을 잡고 디즈니월드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처음으로 배경음악을 사용한다. 젠시와 무니가 인파를 헤치며 뛰어가는 모습을 뒤쫓았던 영화는 그들이 디즈니월드의 상징인 신데렐라 성에 다다르자 갑작스럽게 막을 내린다. 막을 내렸다는 표현보다는 서사 이후에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보인다. 핼리가 아동국 직원에게 욕설하는 입을 클로즈업 한 것처럼, 이 영화는 무니와 친구들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지만, 정작 무니와 젠시의 운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신데렐라 성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대상을 잃고 방황하는 카메라일 뿐이다.

 

타인의 불행을 관람하기

 

영화가 파스텔톤의 풍경과 아이들의 모습, 비온 뒤의 무지개, 모텔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과시적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물이 처한 열악한 환경은 이러한 풍경과 대비되어 관객들을 시혜적 감정으로 유도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영화는 갑작스럽게 멈춰서 버린다. 이러한 지점을 생각해 볼 때 모텔 관리자로 등장하는 바비(윌리엄 데포)의 모습은 이 영화의 대리자처럼 보인다. 그는 투숙자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위험해 보이는 어른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며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시설을 관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숙박비를 받아 내며, 숨은 홈리스들을 부끄러워하는 사장에게 꼼짝 못하는 관리자일 뿐이다. 영화는 그의 존재 그 자체를 서사에 세웠다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가 수상한 인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했듯이 말이다. 사실 수상하다는 판단도 뚜렷한 근거가 없이 바비 스스로 내린 결론일 뿐이다. 그는 바비를 위해서 수상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영화가 다루는 소외된 이들도 같은 처지이다. 석양이 물든 하늘과 파스텔톤의 색채를 강조한 와이드 앵글은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화면을 제공하지만, 그것은 영화 속 등장인물을 끊임없이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감정을 위해 영화 속 이들을 불행한 상태로 만들고 있다.

 

 

백 태 현 / 동국대학교 국제학생센터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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