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인터뷰:정형근,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정직한 법조인의 소망이 세상에 닿기를

본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정형근 교수의 삶은 어떤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 백절불굴(百折不屈),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한계에 갇혀있기보단 항상 깨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현재 법조계의 윤리 선생님이란 호칭과 함께 로스쿨 필수과목 법조윤리의 전문가가 되었고, 국내 최초로 변호사 주석서를 펴내며 변호사법 최고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근래 법조계의 크고 작은 일들이 사회적 논쟁인 요즘, 법조인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베풀 때가 가장 보람차다는 그를 통해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그러나 꼭 들어야만 하는 법 이야기를 들어봤다.

 

 

 

 

 

 

 

 

 

 

 

 

 

 

 

법조인이 되기까지, 도전으로 가득했던 삶

Q. 어린 시절 생계가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사법시험에 도전하셨는데, 이때 법조인의 꿈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처음 법조인을 꿈꿨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사법시험에 붙으면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사법시험을 알았다는 사실이 제 인생에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못 갔으면 자연스럽게 취직을 생각해야 했는데, 사법시험이 마음에 와닿은 후 ‘내가 고등학교는 못 갔지만 독학으로 꼭 합격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거든요. 집이 어렵다 보니 고등학교 진학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검정고시에 합격한 다음 사법시험에 도전하
려 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스무 살 무렵 경제적 안정을 위해 먼저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당시 중졸 학력으로 도전할 수 있는 것이 검찰 공무원이었습니다. 시험 과목이 전부 법률 과목이라 좋았고, 공무원을 준비하는 순간에도 법조인의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Q. 공무원 시험부터 사법시험까지 수많은 도전으로 이루어낸 합격 일화가 궁금합니다.

서울에 올라와 독서실에서 9급 공무원을 준비할 땐 좌절하지 말자는 다짐을 굳게 하고자 손가락을 물어뜯어 ‘필승’이란 혈서도 썼습니다. 각오문도 적었죠. “오늘의 이 일보가 내일의 백보가 될지니 내 이제 심기일전 필승의 신념을 사생의 맹서로 삼아 촌음을 아끼리라” 그리고 세 번 만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7급을 거쳐 사법시험을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한편으론 힘든 공부를 그만두고 편하게 살고 싶었거든요. 그간 못 봤던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모임이 없는 날은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런 날들이 많아지니 권태롭고 허무하더군요. 결국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7급에 낙방한 뒤 마음이 초조해져 검찰 공무원 사직을 생각했어요. 그렇게 예전에 머물렀던 절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생각할 무렵 제 인생 최고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됩니다. 퇴근할 때 석간신문이 앞으로 떨어졌는데,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법대 졸업자로 바꾼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기사를 접한 계기로 곧바로 대학진학을 결정해 고시학원에 다녔습니다. 검정고시는 반년 만에 합격했지만 대학은 재수를 했어요. 그리고 입학한 뒤 8년이란 수험생활 끝에 1992년도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멀지만 가까운 세상 속 법 이야기

Q.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김영란법’ 제정에도 직접 참여하셨는데요, 교내에 적용된후 어떻게 체감하고 계시나요?

이 법으로 인해 학교에 적용된 것은 크게 두 가지에요. 부정한 청탁을 하지 말 것과 돈을 받지 않는 것, 이를테면 예전엔 학생들에게 학점을 줄 때 성적을 올려달라는 이메일이 왔었어요. 이게 결국 부정청탁이거든요. 또한 원생들은 논문심사 전후 감사의 선물을 해야 하고, 식사를 대접해야하는 것들이 관행처럼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처벌 대상으로 바뀐 거죠. 만약 교원이 이러한 청탁을 들어주거나 학생들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형사처벌과 징계를 받게 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돼요.
이런 점에서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이 없어지고, 연구 분위기가 아주 긍정적으로 조성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커피 한잔도 못 주니까 올바른 교육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어요. 하지만 이젠 법대로 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이런 변화와
함께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겠죠. 새 문화가 정착하고 청렴한 세상, 부패 없는 세상이 곧 올 거라 생각합니다.

Q. 최근 검찰 내 성추행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인권을 위한 법률제정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같은 법조인으로서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서지현 검사에 이어 임은정 검사도 검찰 내부통신망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털어놨어요. 물론 이런 일들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검찰 안에서만큼은 특별히 달라요. 다른 곳은 고통받는 일이 생기면 법대로 처리하는 과정 중 드러나게 되는데, 검찰은 경찰이 수사할 수 없어 같은 조직원이 수사를 맡아요. 이들은 법률을 다루는 전문가 집단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법대로 처리하지 않고 은닉하는 것이 가능해지죠. 결국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서지현 검사를 비롯해 여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보단, 공수처 즉 고위공직자수사처와 같은 기관을 도입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잘못하면 벌을 받고, 잘하면 상을 받는 사회로 가기 위해선 검찰의 특권이 없어져야 해요. 그래야 조직이 깨끗해지면서 이런 사건이 다시 발생해도 잘 대처할 수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인사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서울로 발령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기에 공수처 도입에 대해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Q. 법조인이 되기 위해 필수자격시험이었던 사법시험이 지난해를 끝으로 폐지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시험 존치에 대한 말이 많은 상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일부에선 로스쿨을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예비시험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어요. 실제로 일본에는 이미 예비시험이 있습니다. 긴 시간과 학비가 필요한 로스쿨과 달리 예비시험은 합격만 하면 되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응시하고 있죠. 그런데 중요한 건 합격생들 대부분이 최상위대학 학생이라는 것입니다. 상위권이 아닌 나머지는 응시기회만 있을 뿐, 일종의 희망 고문인 거죠. 현재 폐지된 사법시험 또한 응시자의 3%만 붙는 시험이었습니다. 응시기회에 비해 합격률은 너무나도 낮았죠. 이런 측면에서 저는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것만이 희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나라에도 이를 받아들여 예비시험을 둔다면, 응시자격을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사람으로 제한했을 땐 괜찮다고 봐요. (故)노무현 전대통령께서도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하신 분이니까요. 법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 직종임에는 틀림없죠. 보다 더 좋은 인재양성을 위해 로스쿨이란 제도가 도입됐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정권이 바뀌며 개헌에 대한 논의도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개헌이 정말 필요하다 생각하시나요?

지금의 헌법이 제정된 1987년도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기업에서 인재 추천을 받기 위해 대학교를 찾아오고, 학생들은 어디든 취직할 수 있었기에 서로 취업기회를 양보하기도 했죠.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빈부격차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국민들의 노력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어요. 때문에 이러한 문제 해소를 고려한 관점에서 개헌을 바라봐야 합니다. 또한, 역사상 가장 오래된 헌법에서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개헌의 필요성은 확실히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헌을 논의하기 위해선 국민들의 열망과 공감대가 필요해요. 하지만 다들 현실이 벅차다 보니 관심을 못가지는 슬픈 상황인 거죠. 그렇다 보니 지금 논의되고 있는 개헌은 정치권력구조에 초점이 맞춰지고, 여당에선 대통령 중임제, 야당에선 내각책임제를 외치며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어요. 아마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원리가 구현된 법제도를 고민할 때, 그때 비로소 국민들의 관심과 열망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법조인과 교수, 그 접점에서 말하다

Q. 법조계와 학술적 연구 두 분야 모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법조인과 교수 중 어느 쪽이 더 본인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원래 성격 자체가 꼼꼼하고 준비성이 철저해요. 교수직에 처음 왔을 땐 강의교재가 없어 직접 책을 집필했는데, 우리나라에선 불모지와 같았던 변호사법 조문을 최초로 해설한 변호사법 주석 책을 펴냈습니다. 이후 변호사법 개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법을 만드는 작업도 하고, 법무부장관상도 받게 됐죠.또한 2014년에는 총 9편의 논문을 썼는데, 무언가 파고드는 제 사고구조가 법과 잘 맞아 연구할 때도 성과로 드러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정의로운 재판을 받고 수사를 받으려면 법조인의 올바른 판결이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나라엔 전관예우가 있습니다. 이런 불공정한 관행은 한국에만 있죠. 그렇기에 더더욱 정의로운 자세를 가르치며, 공정하고 성실한 직무수행을 하는 법조인으로서 교수 모습을 지켜나갈 생각입니다.

Q. 법학전문대학원장으로서 올 한해 계획하신 교직활동이 있으신가요?

로스쿨이 도입되고 10년을 맞이하고 있어요. 그동안 본교법학전문대학원은 탁월한 성과를 내왔고, 저 또한 올해도 엄격한 학사관리를 하며 탁월한 실력과 칭찬받는 인품의 법조인 양성에 힘 쏟고자 합니다. 특히 우리 학교는 다른 로스쿨에 없는 진급시험 제도를 운영 중 이에요. 실력이 없으면 진급을 못하기에 학업에 전념하는 학풍을 조성해 나가려고 합니다. 더불어 학교발전을 위해 영향력 있는 지도층 인사들과 좋은 협력을 맺으며, 국제화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해외교류도 활성화 할 생각입니다.

Q. 오랫동안 한 분야에 정진하고 계신 분으로서, 전공에 대해 깊게 나아가는 원생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대학원 과정은 어두운 터널을 달리는 것과 같이 암담한 시간으로 여겨질 수 있어요. 장래에 대해 불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하루하루 지나가다 보면 내가 꿈꾸던 영역에 분명히 도달할 수 있어요. 특히 지금시대의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글로써 드러내기에, 깊이 연구하는 역량을 학위논문으로 알게 된다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을 가장 확실하게 도약시켜 주는 곳은 대학이에요. 학교에서 흘린 땀과 고뇌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청춘을 투자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성공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대담·정리: 김수애 | suaepic@khu.ac.kr

사 진 : 강안나 | annakang@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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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백절불굴(百折不屈)”
    대선에 이어 또다시 경기도지사에 도전장을 던진 이재명 전 성남시장과 거의 흡사.

    “조족지혈(鳥足之血)”
    정원장님과 이시장님이 뚫고 나온 깜깜한 터널에 비하여 현재 나의 고통과 상황.

    “간난난지오다마니스(艱難汝を玉にす)”
    2014.7.4. 받은 글로서 한동안 잊고 있다가 본 칼럼을 읽고 다시 꺼내들고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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