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테마서평: 위화의 눈으로 본 현대중국의 모습] 위화를 읽다, 중국을 읽다

[1] 『허삼관 매혈기』(위화 저·최용만 역, 푸른숲, 2007)
[2] 『인생』(위화 저·백원담 역, 푸른숲, 2007)
[3]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위화 저·김태성 역, 문학동네, 2012)

 

 

 

 

 

 

 

 

 

 

위화(余華)는 중국의 당대 문학 중에서 한국에 가장 널리 읽혀 온 작가라 할 수 있다. 분단 이후 오랜 냉전의 시간 동안 격절되어 왔던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한국의 독자에게 위화의 존재는 각별함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중국 현대작가’ 집계(2014년의 교보문고 발표)에서는 루쉰(魯迅)이나 모옌(莫言)을 제치고 1위부터 3위까지 위화의 작품『허삼관 매혈기』 ( 『인생』, 『제7일』)이 차지했다. 위화의 소설은 중국과의 국교 수립(1992년) 이후, 그간의 단절이 가져온 양국의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아 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위화인가? 한·중 문화적 교류의 촉매로서 왜 다른 작가가 아니라 위화의 문학이 적임자였는가를 생각해보는 일은 소중하다.

위화를 읽는 이유

 1960년 항저우에서 태어난 위화는 유년 시절에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개혁·개방의 격동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1983년 단편소설『첫 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선 뒤에 그는 쑤퉁(蘇童), 꺼페이(格非), 마위안(馬遠)과 함께 1980년대를 대표하는 후선봉파의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교조적 경직성을 답습했던 지난 시기의 문화적 경향성을 쇄신하는 것, 그것이 신시기의 문학에 주어진 시대의 과업이었다. 후선봉파는 리얼리즘의 비판 정신과 모더니즘의 실험적인 창작 방법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려는 의기로써 그 암중모색의 길을 더듬었다. 위화의 초기 소설은 그렇게 도저한 실험성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종막을 고하는 1990년대에 이르러 그의 소설은 급격한 단절이라 할 만한변모를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의 위화는 민중의 질박한 삶을 담백한 서정과 유장한 서사의 변증으로 풀어내는 하나의 경지를 열었다. 그의 변신은 곧 시대적 전환의 한 양상을체현한 것이며, 전환기의 역사적 감각에 예민한 작가적 역량이 바로 위화 소설의강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변모를 통해 갱신된 이후의 소설들이 한국의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 냈다. 위화 문학의 진정한 의의는 냉전의 해소와 그에 따른 세계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동참함으로써, 중국 특색의 감수성을 보편적인 서정성으로 이끌어낸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내셔널 히스토리와 가족사

거듭 밝히지만 위화의 소설은 신중국 건설의 혁명적 역정(歷程), 그 거대 서사의 미시적 상흔을 보편적인 휴머니즘으로 막힘없이 그려냄으로써 공감을 얻었다. 그래서 국공내전이나 문화대혁명과 같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에 무지한 독자들에게도, 그의 소설은 위화감 없이 보편적인 역사적 수난의 한 양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보편성이란 역사의 구체성에 대한 일종의 추상화의 결과로 여겨질 수 있으며, 그 추상화는 곧 독자들이 역사의 난해한 곡절을 피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통속화의 내러티브로 전개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위화는 중국이 힘겹게 지나온 역사의 아포리아에 천착하기보다, 그 역사를 인물들이 살아 내야만 하는 험난한 질곡의 현장으로 서사화 하는 것이다. 특히『허삼관 매혈기』, 『인생』,『형제』, 『제7일』과 같은 소설을 가로지르는 핵심 테마는 역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 내는 가족의 이야기로 모아진다. 이 소설들에서 가족사는 국가의 역사에 앞서는 원초적인 생명의 분투기로 드러난다. 중국의 근현대사는 생존을 위한 분투가 이루어지는 가족사의 올올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 국가사의 바탕 위에서 가족의 역사는 힘겹지만 끈질기게 흐른다.
저 소설들에서 가족이란 단지 피의 결사가 아니다. 그것은 피의 동질성보다 같이 먹고살아 가는 입들의 결사, 곧 식구(食口)라는 차원에서 더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먹고 사는 것의 문제로 엮여진 삶이란 무엇보다 생존의 감각에 예민한 삶인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 근현대사는 그 생존을 부지하기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다. 위화는 그 시간을 견뎌 끝내 살아 내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천착을 통해 국가와 가족을 넘어 인간이라는 보편에 이른다. 『허삼관 매혈기』의 그 매혈의 역사가 바로 물보다 진한 가족의 질긴 연대를 지속하는 생존의 분투기였다. 물배를 채워 피를 희석하는 허삼관의 분투는 마침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일락을 식구로 끌어안는 장엄한 서사로 펼쳐졌다. 이처럼 그의 소설에서 가족은 어떤 수난 속에서도 지켜 내야 할 휴머니즘의 핵심이다. 바로 ‘가족’이라는 키워드야말로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위화 소설의 보편적 지반인 것이다.

역사 속의 인간과 그 질긴 생명력

가족수난사의 양상을 공유하는『인생』과『허삼관 매혈기』는 중국 근현대사의 격동을 통과해 나가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소설이다. 『인생』에서 푸구이가 살아 온 한 평생은 개인의 인생사이면서 한 가족의 수난사이고, 또 중국의 숨 가쁜 근현대사이기도 하다. 그 세 겹의 시간이 포개어 흐르는 푸구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은『인생』의 원어 제목이 의미하듯 ‘살아가기(活着)’의 곤란함을 견뎌 낸 위대한 생존의 서사이다. 푸구이의 삶은 참담하기 그지없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서술의 어조는 담담하기만 하다. ‘스토리’와 ‘담론’의 이런 아이러니는 이른바 액자식의 구성을 통해 외화와 내화의 어긋남으로 표현된다. 소처럼 늙어버린 푸구이가 회고하는 40여 년의 인생사는 일본이 항복을 하고 난 뒤의 국공내전부터, 인민공사설립,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소용돌이치는 신중국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다. 그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푸구이의 가족들은 대부분 명을 달리한다. 죽음의 과잉이 중국사의 어두운 면모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푸구이의 생존 자체를 극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만연한 죽음과 죽임들 속에서도 살아남는다는, 바로 그 생존의 끈질김이라는 주제를 극명하게 표현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남는다는 것, 그 단순명료한 삶의 이치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노구의 푸구이가 증명한다.

▲ 영화 「허삼관」에서 허삼관이 매혈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간 모습이다. ⓒ movie.naver.com

『허삼관 매혈기』는 그의 소설 중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유독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한국에서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이 소설은, 역시 그 비애의 인생사를 특유의 웃음으로 풀어낸 비범한 아이러니가 인상적이다. 가족은 이 소설에서도 중심적인 모티프이다. 『인생』의 가부장 푸구이와 그 결이 다르긴 하지만, 아버지 허삼관 역시 역사의 장력 안에서 부침을 겪는 가족사의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곧 재가했기 때문에 허삼관은 삼촌의 집에서 자랐다. 그런 결여가 허삼관에게 충만한 가족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 동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매혈로 돈을 번 허삼관은 장안의 미녀 허옥란과 결혼을 한다. 자기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가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허옥란의 부정(不貞)을 매개로 하여 적대적으로 분출된다. 그의 분노는 허옥란을 건드려 일락을 낳게 한 하소용을 향한다. 하소용을 지양해야만 허옥란의 부정이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소용이 죽자 이제 완전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 남은 것은 피로 맺어지지 않은 허옥란의 아들 일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후의 서사에서 그의 일생은 매혈로써핏줄의 고리를 초월한 가족의 완성에 이르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대국이 되기 위한 조건

미국 어느 대학에서의 강연 원고로 쓰인『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유연한 알레고리로 중국의 역사를 담아낸 그의 소설과는 달리 직접적이다. 위화는 문화대혁명 이후 40여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대국굴기(大國屈起)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당대 중국의 모순들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푸구이와 허삼관은 이미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아버지들인가? 중국이 서구의 제국들과는 다른 신흥 대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비참함 속에서 살아남은 저 아비들의 생존분투를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전 성 욱 /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조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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