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특강취재: 푸코사상의 파노라마, <자기배려, 실존의 미학과 파레시아>] 전통을 거부하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본 사상가 ‘푸코’

▲강연을 펼치고 있는 심세광 박사

 

대안연구공동체는 <푸코사상의 파노라마> 시리즈의 마지막 세션인‘자기배려, 실존의 미학과 파레시아’강의를 개최했다. 강의는 2월 14일부터 4월 4일까지 총 8회에 걸쳐 매주 수요일에 진행된다. 시간은 오후 7시 30분부터 10시까지이며, 오랫동안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저서를 번역해온 심세광 박사가 강의를 맡았다. 첫 강의인 2월 14일에는『담론과 진실-파레시아』의 발간 기념 특강이 진행되었고, 본격적인 푸코사상에 대한 내용은 두 번째 강의부터 시작되었다. 본보에서는 지난 2월 21일에 진행된 두 번째 강의 ‘자기인식과 자기배려’의 내용을 다룬다. 이 날 강연자는 푸코의 후기주의 사상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기 전에 앞으로 다룰 내용을 전체적으로 소개하였다.

푸코의 후기주의 사상의 흐름

푸코는 1966년 역사에 대해 언급한『말과 사물』을 출판한 이후 좌파로부터 반인간주의자라는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푸코가 관심을 가진 것은 역사로부터 축적되어온 지식이었으며,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지식의 불연속성이었을 뿐 실제로 반인간주의적 사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푸코는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역사에 대한 접근 방법을 이론적으로 정리하여 1969년에『지식의 고고학』을 출판하였다. 이후로 푸코의 관심 대상이 지식형성의 역사에서 담론과 권력으로 옮겨갔으며, 연구방법이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지식의 고고학』을 푸코가 후기주의 사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간주한다.
1970년 푸코는 젊은 나이에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의 교수로 임명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푸코가 교수 취임식에서 한 연설은 1971년에『담론의 질서』로 발간되는데, 여기서 푸코는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사람들 앞에서 말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고 하여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프랑스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푸코가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이 의문스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푸코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언어(무언가를 발설한다는 것)는 그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 그 언어들을 둘러싼 외부적인 힘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힘과 힘의 관계, 즉 권력이 언어를 통해서 발생하며, 이러한 권력의 존재는 은폐되어 왔다고 말한다.
은폐되어 온 권력은 사실 실생활에서 많이 드러나고 있다. 사람들이 어떠한 사안에 대하여 말할 능력과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여러 담론에 대하여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시대에서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나 그러했다.
담론을 통제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수단은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이다. 특히 성이나 정치와 관련된 말을 하는 것은 민감하게 통제되어 금기시된다. 또 다른 담론을 통제하는 대표적인 수단은 담론을 발설한 저자를 밝히게 하는 것이다. 중세에서는 과학적 담론이 검열의 대상이었다. 당대에 발견된 과학적 지식과 과학적 법칙에는 모두 저자 이름을 달게 하였다. 새로 생겨난 담론에 대하여 문제가 생기거나 맘에 들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다. 대표적으로 갈릴레오가 주장한 새로운 과학적 우주관은 기독교적이지 않으며, 기존 담론과 다르다고 통제를 받았다. 반면 중세시대의 문학은 이름 없이 구전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새로운 과학적 우주관은 기독교적이지 않으며, 기존 담론과 다르다고 통제를 받았다. 반면 중세시대의 문학은 이름 없이 구전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사회적 담론의 흐름이 바뀌게 되었고, 통제대상 또한 바뀌게 되었다. 과학적인 지식에 관해서는 크게 저자를 밝히지 않아도 일반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졌으나, 문학이 새로운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를 통해서 푸코는‘언어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라 투쟁, 저항, 패배, 승리가 점철되는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담론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누구일까? 푸코는 이러한 역할을대학이 행했다고 하였다. 대학은 어떠한 담론에 대하여 원서가 무엇이고, 원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야 하는 것을 중요한 규율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담론을 차별화하고 층화시킨다. 또한, 보존되어서 사람들이 항상 원천으로 삼아야 하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한다. 대학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담론에 가치를 매기고 힘을 부여한다. 이렇게 힘을 부여받은 담론은 현재 지배계층의 사상과 부합하는 담론일 가능성이 크다.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나, 어떠한 것이 진리인지 참과 거짓을 구별해내는 그
자체로 피 튀기는 권력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의 욕망은 권력욕이라 할 수 있으며, 담론은 획득과 욕망의 대상이 된다.

푸코의 근대권력

푸코는 교수 생활을 이어나가며 규범권력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하였고, 1975년『감시와 처벌』을 출판하였다.『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푸코는 전통적인 정치 철학의 진부한 생각을 거부하고, 권력을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보았다. 전통적 정치철학에서 다루는 것은‘주권권력의 거시물리학’이다. 국가와 같은 주권권력이 어떻게 통치해야 할지, 국가의 역할, 법의 기능 등과 같은 내용을 주로 다뤘다. 반면, 푸코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규범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푸코의 근대권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면서도 개인에게 개별적으로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전통적인 정치철학에서의 권력의 행사는 노동자와 지배계급을 나누게 하는 거시적인 사회구조속에서 이뤄졌다. 푸코가 이야기하는 권력은 좀 더 근본적인 하층구조에서부터 작용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규범 아래서 정상인이라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자동적으로 훈육과 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범권력을 몸에 익히게 된다. 또한, 주권권력의 가장 보편적인 통제방법인 법에 따라 통치를 받는 것은 범죄자와 같은 일부에게만 일어나는 간헐적인 것에 반해 푸코의 근대권력은 실생활에 근접해 있으며 항상 작용하고 있다. 현대에도 푸코의 근대권력은 의무교육이나 생활기록부와 같은 여러 기록을 통해 행사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한 번도 권력의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고, 사람들의 주체성 또한 권력의 예속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능동적인 주체성을 추구했던 니체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던 데카르트의 입장에서는 푸코가 말하는 주체성을 수동적이며 질이 낮은 주체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푸코가 이야기하는 권력에 예속된 주체들은 비생산적이지 않다. 푸코가 말하고 있는 권력은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창조적인 것이다. 다만 그러한 생산적인 권력 속에서 사람들의 주체성은 수동적으로 형성되어 간다.

권력 속에서 자유를 외치다

푸코는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해서도 기존과는 다르게 사유했다. 사람들은 한 번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면 자신이 자유의 실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푸코는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은 새로운 권력에 예속되는 것이며, 이는 피할 수 없고 피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푸코가 이야기하는 자유의 실천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이 예속될 권력을 선택하고 바꾸는 일이다. 내가 현재의 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면 나와 같은가치를 추구하는 통치자들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치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비판을 하는 것이 자유의 실천이라고 보았다. 당시에 기존 권력에 대한 비판은 지식인들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푸코는 비판과 저항을 비전문인이라도 예속관계에 있는 누구나 권력관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자신이 자신만의 윤리, 즉 ‘자기배려’가 먼저 이뤄져야만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윤리를 자신이 먼저 지켜야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코는 정치와 윤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권력에 예속되면서도 충분히 적극적인 자유의 실천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해방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윤리에 입각한 비판을 통해 지배 관계를 건전한 권력 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역동적인가.
필자가 처음 푸코를 알게 된 것은『감시와 처벌』에서 나온 판옵티콘(Panopticon)을 통해서였다. 판옵티콘 감옥의 죄수들처럼 사람들이 사회의 규범과 담론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을 하나의 담론으로서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으나, 푸코가 이러한 사유를 하기 전까지 당시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혁신적인 담론이라는 것에 놀랐다.
단순히 푸코의 저서의 내용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푸코가 어떠한 저의를 가지고 이러한 사유를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푸코는 항상 모든 것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는 혁신적인 사상가였다. 강연자는 푸코의 목표는 “판에 박힌 정치철학을 새롭게 사유함으로써 윤리철학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라며 강의를 마쳤다.

 

주예진 | jyj6241@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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