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기획 : 올림픽, 위기 혹은 기회] 다사다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한민국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며, 세계에서 5번째로 ‘4대 국제경기’를 모두 개최한 스포츠 선진국이 되었다.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평창 동계올림픽’은 우리에게 어떤 성과와 문제점을 남겼을까? 본보는 유치부터 다사다난했던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 고찰해 보고, 올림픽 이후의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하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올림픽의 화려한 외면에 가려진 내면은 어땠을까? 올림픽 개최국에게는 ‘올림픽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이는 올림픽을 유치한 나라가 정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 올림픽 유치 국가들이 개최 준비를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다가 잠재적인 갈등과 문제가 터지면서 안팎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2014년 리우 올림픽은 재정 악화와 환경 및 안전 문제 등 으로 곤욕을 치렀다. 7년 전, 3번의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한 ‘평창 동계올림픽’도 올림픽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초유의 국정농단사태로 많은 기업들이 스폰서를 기피해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경기장의 사후관리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었다. 북한 핵위기가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북한의 갑작스러운 참가는 ‘평화올림픽’, ‘평양 올림픽’으로 국론 분열을 야기했다. 만만치 않은 준비과정을 겪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 고찰하고 올림픽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모색해본다.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에서 경기중인 대한민국 국가대표 ⓒ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유치와 준비의 잔혹사
‘평창 동계올림픽’은 눈물과 역경의 합작품이다. 2명의 대통령이 유치에 나섰고, 또 다른 2명의 대통령이 대회 준비를 맡았다. 여러 대통령을 거치다 보니 올림픽 유치 신청에서 개최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1981년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유치가 결정된 후, 개최까지 7년이 걸린 것과 비교해보면 배 이상 소요된 셈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년 체코 프라하 총회, 2007년 과테말라시티 총회의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했지만 2차 결선 투표에서 연거푸 뒤집히며 두 번의 눈물을 삼켰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1년 남아공 더반 총회에서 과반수를 넘는 63표를 획득해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를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유치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4대 국제경기’를 모두 유치한 나라가 되었다. 본격적인 대회 준비는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 시작했는데, 박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조기대선에 의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막바지 대회준비를 떠맡았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올림픽 준비도 여러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다. 국내 개최지 선정 단계에서는 평창과 무주의 과열경쟁이 벌어졌다. 평창은 강원도라는 지리적, 환경적 이점을 내세웠으며, 무주는 지역적으로 낙후된 호남지역 개발을 명분으로 삼아 양보 없는 경쟁을 펼쳤다. 평창이 무주를 누르고 단독 개최지로 결정됐지만 지역 분산 개최로 경제성과 효율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명분론 때문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IOC를 상대로 한 공식 유치전에서 평창은 인구 3만 소도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중앙정부와 관료주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유치 이후에는 경기장 건설과 운영을 둘러싸고 여러 잡음이 생겼다. 조직위원장 교체와 인선, 무리한 경기장 공사와 철도 교통 문제, 자연환경 파괴, 경기장 사후관리 문제 등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국정농단 같은 정치적인 문제까지 더해져 올림픽 스폰서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강릉과 횡계 올림픽플라자, 정선 알파인스키장 등의 건설을 두고 ‘시설 과잉’이라는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됐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지나치게 산림을 파괴하며 경기장을 짓는 것에 대해 “환경을 해치는 악의적인 행위”라고 목소리를 키웠다.

 

국가보다는 개인이 중요한 시대
올림픽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개최국의 경기력과 함께 정치적,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독재정권의 막이 내리고 민주화를 맞은 정치적 환경의 변화와 ‘3저 호황’이라는 경제적 여건이 맞물리면서, ‘종합 4위’라는 성공적인 결실을 맺었다. 30년 만에 치른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국가보다는 개인을 중요시하며 공정한 경쟁과 균등한 기회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변화는 한국의 스포츠 문화가 성숙해졌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아무리 외적인 여건이 갖춰졌더라도, 도덕성·윤리성을 놓친다면 올림픽 개최국이라고 해서 스포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데 대해 선수들이 반발한 것은 이념과 체제를 우선시하는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국가의 일방적인 요구에 희생할 수 없다는 선수들의 행위는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국가의 대의명분과 거대 담론 앞에서 무력했던 시민들이 국정농단 사태 등을 거치며 개인 존재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면서 나타난 변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남북한 선수단 개막식 동시입장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기가 가져온 파고가 워낙컸던 탓으로 감흥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국민들은 북한에 주목하기보다는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주목했다. 그리고 선수들은 성적에 대한 부담보다는 스스로 경기를 즐기면서 대회를 치르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또한, 여러 종목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으로국적을 획득해 출전한 것은 국가 이전에 개인의 목표 달성과 욕구 충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안현수’선수가 ‘빅토르안’이라는 러시아 이름으로 바꾸고 러시아 국적으로 출전했다. 이는 국가보다는 개인을 더 앞세우는 가치관이 자리 잡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전에는 국가가 있기에 국민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국민이 있기에 국가가 있다는 가치관으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올림픽의 바람직한 미래상
올림픽은 단기간에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초거대 사업’이기 때문에, 평화와 인류를 위한 축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 이상적으로 올림픽의 이념을 추구하나, 현실적으로는 경제적 문제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 개최국은 약 20일간의 경기를 치르기 위해 수조 원의 세금을 쏟아붓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올림픽은 신중히 유치해야 하며, 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기존 건물과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노력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경기에 사용된 각종 건물과 시설을 제대로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앞서 열렸던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시설 과잉투자와 사후 시설 활용방안 등을 놓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올림픽 때만 반짝 사용하고, 그 이후에는 시설을 놀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올림픽 때 각광을 받았던 시설물들이 ‘괴물’이 돼버린 경우였다. 한 해 수백억 원이 시설 관리를 위해 소비되나 이를 충원할만한 관리방안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예전의 올림픽과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개·폐회식장을 비롯해 13개 경기장의 사후 시설 관리방안이 대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림픽 플라자, 강릉 아이스하키경기장과 스피드스케이트장, 정선 알파인스키장 등은 아직도 관리 주체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대회 준비 전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 등은 올림픽을 진행하는 것에만 주력하고 사후관리 방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대회 준비부터, 개최까지 많은 고비를 헤쳐왔다.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올림픽이 남긴 성과와 문제점에 대해 깊은 성찰과 분석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된 모습과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가장 주목할 점은 국가가 중심이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 등 주요 국제 대회를 정치적인 명분을 위해 유치하는 것보다는, 인간주의에 근거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40여 년 이상이 지났다. 대한민국은 ‘1988 서울 올림픽’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동·하계올림픽을 치른 세계 8번째 국가로 올라섰다. 더 이상 ‘스포츠 강국’이 아닌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의 선례를 남기는 것과 새로운 인식과변화를 존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김 학 수 / 한국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 본 지면은 청탁 지면으로 본보의 방향성 및 기획 의도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