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과학학술: 생체시계] 생체시계의 작동 원리와 의학적 가치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명체는 24시간을 주기로 하는 리듬을 갖고 있다. 이 24시간 주기 리듬을 ‘서캐디언 리듬(Circadian rythem)’ 또는 ‘생체리듬’이라고 한다. 이 생체리듬은 ‘생체시계’에 의해 조절되는데,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최근 미국의 과학자 3명이 태양주기에 따른 생체시계와 몸의 변화를 조절하는 유전자 작동원리를 규명해 2017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에 본보에서는 생체시계의 원리와 의학적 가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그림1) 사람의 생리 현상은 하루 주기의 리듬에 맞춰 적응되어 있다. 그림은 각각의 생리적 기능이 최대 혹은 최저를 보이는 시간대를 표시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하루를 주기로 자전을 거듭하고, 이에 따라 밤낮의 변화라는 예측 가능한 환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진화학적인 관점에서 주기적인 환경의 변화를 예측해 능동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생명체는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생명체보다 선택적 이점(Selective advantage)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단세포인 박테리아에서 고등동물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주기적인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교한 시간장치인 생체시계(Biological clock)를 갖도록 진화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하루 주기 리듬의 예로는 식물에서 기공의 개폐나 광합성의 리듬, 동물에서 체온이나 수면-각성의 리듬을 들수 있다. 사람의 경우에도 수면-활동패턴, 섭식, 호르몬 분비, 체온의 변화, 물질대사를 비롯한 수많은 생리-생화학적 생명현상이 하루를 주기로 한 리듬을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1). 이러한 리듬은 외부로부터 오는 시간에 대한 정보가 배제된 일정한 환경조건에서도 대략(circa) 하루(diem)의 주기를 갖는 진정한 의미의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임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루 주기의 리듬이 생명체 내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제어되는 것 인지는 20세기 말에 들어서야 명확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2017년도의 노벨생리의학상은 초파리를 모델 생명체로 하여 생체시계의 분자적 작동 기전을 밝혀내는 데 크게 공헌한 세 명의 과학자(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배시와 마이클 영)에게 공동으로 수여됐다. 이 글에서는 생체시계의 발견 과정과 핵심 개념, 생체시계의 분자적 작동 원리와 그 의학적 함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생체시계의 발견

일주기 리듬에 대해 최초의 과학적 실험을 한 사람은 18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천문학자 장 자르크 도르투 드 메랑(Jean Jacques d’Ortous de Mairan, 1678-1771)이었는데,그의 실험 대상은 창가에 키우던 어떤 식물이었다. 미모사류에 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식물은 낮에는 태양을 향해 잎을 벌리고 밤이 되면 잎이 닫히며 늘어지는 수면운동(Sleep movement)을 보였다. 드 메랑은 이 화분을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캐비닛 안에 넣고 며칠에 걸쳐 잎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흥미롭게도 이 식물의 잎은 밤낮을 전혀 구별할 수없는 캄캄한 캐비닛 안에서도 수면운동을 지속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가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생물학적 의미는 후대의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는데, 하루를 주기로 하는 생명의 리듬이 외부 자극에 의한 수동적인 반응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생명체의 몸 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며, 생명체의 몸속에 하루 주기의 시계가 존재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드 메랑 이후 드물게 수행되던 생체시계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20세기 중반부터 활동한 세 명의 선구자들에 의해서였는데, 독일의 마르크스-플랑크연구소에서 행동생리학을 연구하며 인간의 일주기 리듬을 연구한 위르겐 아쇼프(Jurgen Aschoff), 일주기 리듬을 어떻게 의학적으로 응용할 것인지를 고민한 동유럽 출신의 미국 과학자 프란츠 할베르그(Franz Halberg), 초파리의 일주기 리듬을 관찰하며 생체시계 연구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한 영국의 과학자 콜린 피텐드라이(Colin Pittendrigh)가 그들이다. 이들의 선도적인 연구를 통해 생체시계가 가진 세 가지 근본적인 속성과 핵심적인 개념들이 정립되었는데, 우선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생체시계의 핵심 개념

드 메랑의 관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주기 리듬은 밤인지 낮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정한 환경조건(예: 캄캄한 동굴 속)에서도 대략 하루의 주기를 가지고 반복된다. 정밀한 실험을 통해 관찰해보면 어둠이 지속되는 조건(Dark-Dark cycle)에서 특정 생명체가 보여주는 리듬의 주기는 24시간에 매우 가깝지만 정확하게 24시간은 아닌데, 이 주기를 자유가동주기(Free-Running Period, FRP)라고 한다. 일정한 FRP가 있다는 것은 생명체 내부에 외부의 환경 리듬과는 무관하게 24시간에 가까운 리듬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하고, 이는 생체시계가 갖는 첫 번째 속성이다.

생체시계가 갖는 두 번째 속성은 온도 보상(Temperature Compensation)이다. 초파리나 개구리처럼 일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없는 생명체는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체온이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몸속에 존재하는 생체시계는 대략24시간의 주기를 유지해야 한다. 겨울엔 느리게 가고, 여름엔 빨리 간다면 시계로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기전이 체온계가 아닌 생체시계이기 위해서는 주변 온도가 크게 변해도 FRP를 거의 24시간으로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체시계의 세 번째 속성은 위상 재조정(Phase Resetting)이다. 몸속 생체시계의 FRP는 24시간보다 조금 짧거나 길지만 24시간의 자전 주기를 갖는 지구 환경의 변화에 그 생명의 리듬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FRP가 23.5시간인 생쥐는 매일매일 30분씩 빨라지는 시계를 가진 셈인데, 야행성인 생쥐가 매일매일 30분씩 일찍 일어나 활동을 시작한다면 열흘만 지나도 대낮에 활동하고 있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 생쥐의 생체시계는 하루 중의 특정 시점에 매일매일 자신의 생체시계를 30분씩 늦추어 영점조정을 다시 하는 어떤 기전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빛에 노출되는 것인데, 빛의 주기에 맞추어 생체시계가 리듬의 주기를 맞추는 현상을 광동조화(Photoentrainment)라 한다.

 

 

일주기 유전자의 발견

생체시계가 가진 속성들은 잘 밝혀졌지만1970년대까지 생체시계의 작동 기전은 미궁에 빠져 있었다. 실험용 흰쥐를 이용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시상하부 내의 시신경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을 파괴하면 일주기 행동의 리듬이 사라짐을 알게되었다. 이렇게 일주기 리듬이 사라진 동물에 흰쥐 태아에서 얻은 정상적인 SCN을 이식하면 일주기 행동의 리듬이 되살아난다는 실험을 통해서 뇌 속의 어떤 신경회로가 생체시계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모어 벤저(Seymour Benzer) 교수 실험실의 대학원생이던 로널드 코노프카(Ronald Konopka)는 초파리 유전자에서 돌연변이를 유발한 후 하루 주기의 행동리듬이 파괴된 초파리를 찾는 연구에 착수한다. 코노프카는 초파리 수컷에 유전자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화학물질을 먹이고 암컷과 교배한 다음 태어난 자손들에서 하루 주기의 행동리듬에 이상이 나타나는지 꾸준히 관찰했다. 놀랍게도 초파리의 활동 리듬(activity rhythm)과 우화 리듬(eclosion rhythm)의 주기가 하루보다 훨씬 길어지거나 짧아진 혈통뿐만 아니라 리듬이 아예 사라진 혈통까지 분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때 돌연변이가 일어난 유전자를 ‘피리어드(period)’라 명명하고, 1971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하였다. 이 연구의 결과는 하루 주기의 행동 리듬이 유전자에 의해 제어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피리어드 유전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루 주기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이 지점에서 2017년도 노벨의학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 때 맞춰 발달한 분자유전학과 유전공학 연구 기법이 그 밑바탕이 되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1984년 초파리의 첫 번째 시계 유전자인 피리어드 유전자가 클로닝 되어 그 기능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피리어드 유전자의 일주기적 발현 조절에 관여하는 타임리스(timeless)나 더블타임(doubletime) 유전자를 비롯한 다양한 유전자가 동정 되었다.

초파리의 시계 유전자와 그 작동 기전이 규명되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부터는 포유동물의 시계 유전자들 역시 차례로 밝혀지고, 포유동물에게서의 연구 성과가 초파리 연구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일주기 리듬의 분자적 기전 연구는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는 포유동물의 생체시계를 중심으로 생체시계의 작동 원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 (그림2) 포유동물 일주기 진자의 작동 원리.

 

포유동물 생체시계의 작동 원리

1990년대부터 Clock 유전자를 필두로 Bmal1, Per1, Per2, Cry1, Cry2, Rev-erbα를 비롯한 포유동물의 다양한 일주기 유전자(Circadian Genes)가 동정되면서 포유동물 생체시계의 작동 원리가 규명되기 시작했다. 이 유전자로부터 발현되는 여러 단백질들(CLOCK, BMAL1, PER1 등)이 세포 내 분자시계의 중요 부품을 이루어 하루 주기의 유전자 발현의리듬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하루 주기의 생리-생화학적인 생명의 리듬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인데, 그 대략적인 작동 원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그림2).

CLOCK과 BMAL1 단백질은 이형이합체(Heterodimer)를 이루어 작용하는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s)이다. CLOCK/BMAL1 이형이합체는 PerCry와 같은 또다른 일주기 유전자의 E-box(표적 유전자의 조절 부위에 존재하는 CACGTG 또는 이와 유사한 염기 서열)에 결합하여 전사를 촉진한다. 이에 따라 PER와 CRY 단백질의 발현이 증가하고 세포질 내에 PER/CRY의 다중합복합체(multimeric complex)가 누적된다. 세포질 내에 축적된 PER/CRY의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다중합복합체가 핵으로 이동하여 CLOCK/BMAL1이 표적 유전자에 작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음성 피드백 고리(Negative Feedback Loop)를 형성하므로 자신의 발현을 억제한다. 즉, PER나 CRY 단백질의 발현은 하루를 주기로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리듬을 보인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음성 피드백 고리가 Bmal1 유전자의 발현 수준에서 나타난다. CLOCK/BMAL1 이형이합체는 E-box를 통해 고아 핵수용체(Orphan Nuclear Receptor)인REV-ERBα를 발현시키는데, 이렇게 누적된 REV-ERBα는Bmal1 유전자의 조절 부위에 존재하는 RORE(ROR Response Element)에 결합하여 양성 전사인자인 ROR의 작용을 방해하므로 Bmal1 유전자 발현의 강력한 억제자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BMAL1 단백질의 발현 또한 하루 주기로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리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보조적인피드백 고리가 존재하는 동시에 PER이나 CRY 단백질의 세포질 내 누적 속도를 조절하는 여러 인자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일주기 유전자의 발현 리듬은 외부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도 24시간에 가까운 발현 주기를 유지하게 된다.

이제까지 설명한 내용은 세포 내 생체시계의 분자적 작동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체가 나타내는 생리-생화학적인 생명의 리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 해답은 생체시계의 주요 부품들이 전사인자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분자시계의 작동은 세포 내에서 CLOCK/BMAL1을 비롯한 다양한 전사인자의 활성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에 따라 전사인자의 표적이 되는 다양한 유전자들(Clock-Controlled Genes, CCG)은 하루 중의 특정 시간대에 그 발현이 최고 수준에 달하는 리듬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 표적유전자가 알코올 분해효소라면 하루 중의 특정 시간대(사람의 경우 저녁 8시경)에 알코올 분해 속도가 가장 빠를 것이며,그 표적 유전자가 코르티솔 합성의 중요 조절자라면 특정 시간대(사람의 경우 해 뜰 무렵)에 코르티솔의 합성과 분비가 최고에 달할 것이다. 즉, 생체시계의 작동은 내인성의 24시간주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생리-생화학적인 생명 현상의 리듬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 (그림3) 교대근무(shift-worker)와 연관된 질환들.

 

생체시계의 의학적 함의

생체시계는 하루를 주기로 전사 활성을 조절하여 우리 몸의 다양한 조직과 기관에서 다양한 표적 유전자가 하루 시간대 중 적절한 시간에 발현되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이를 통해 생체시계는 수면과 활동의 리듬, 섭식의 리듬, 체온과 혈압의 리듬, 호르몬의 분비 리듬을 비롯한 다양한 생리-생화학적 생명 현상이 하루 중의 적절한 시간대에 알맞게 수행되거나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체시계가 고장이 나거나 정상적인 작동이 지속해서 방해를 받으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20세기 말 포유동물의 생체시계 유전자들이 밝혀지자 21세기 초부터 연구자들은 일주기 유전자를 녹아웃(Knockout)하여 없애거나 시계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정상적인 일주기 리듬을 보이지 않는 생쥐를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연구의 결과로 생체시계가 잘못되었을 때 나타나는 다양한 병리적 현상들이 밝혀졌다. 대표적으로 불임, 대사장애, 수면장애, 행동이나 기억의 장애, 면역 기능의 저하, 노화의 가속화 등을 들수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역학 조사의 결과에서도 생체시계의 지속적인 교란이 유발하는 다양한 병리적 현상을 관찰할 수있었다. 우리 몸의 정상적인 수면-활동 패턴에 거슬러서 야간근무나 교대근무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야간근무나 교대근무의 근속 연수가 길면길수록 암, 비만, 2형 당뇨, 고혈압, 심혈관 질환, 불임, 유산과 저체중아의 출산, 노화의 가속, 다양한 정신질환의 발병 등이유의하게 증가함을 알게 된 것이다(그림3). 생체시계의 교란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교대 근무자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인공조명의 발달과 더불어 도래한 ‘밤을 잊은’ 현대사회는 빛 공해(Light Pollution)가 인간의 사회뿐만 아니라 대도시 주변의 생태계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까지도 우려하게 만든다.

따라서 앞으로의 생체시계에 대한 연구는 생체시계의 작동원리를 보다 정교하게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체시계의 교란이 각종 질병으로 이어지는 분자적 기전을 규명하고, 생체시계의 교란에 따른 각종 병리적 현상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생체시계에친 화적인 조명 환경을 구축하고, 생체시계에 대한 지식을 다양하게 의학적으로 응용하는 것 또한 모색해 볼 수 있겠다. 이미 시간 치료법(Chronotherapy)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앞으로 시계 유전자의 생리적 작용 기전이 명확하게 규명되면 새로운 분자 표적을 활용하여 수면장애, 불면증 등 생체시계 교란에 따른 장애의 치료제 개발에도 구체적인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세형 /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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