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사설]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MeToo 물결이 거세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이 우리나라로 확산되기까지의 시간은 약 백 여일 채 걸리지 않았다. 서지현 검사의 큰 용기로 시작된 이 불똥 같은 릴레이가 어느새 문화예술계로 번져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SNS에선 피해자들의 증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이 사태를 모면하기에 급급한 가해자들은 사회적 파장의 강도에 따라 침묵, 부인, 형식적인 사과로 일관하고 있다. 아름다운 요소로 대중들에게 행복과 힐링을 전하던 문화예술계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는 시점이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의 썩은 폐부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우리는 외면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갑’의 횡포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이러한 악습은 관습으로 보기 좋게 포장되어 여러‘을’을 괴롭혔다. 이는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각종 업계에는 수많은 피해자가 고통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가해자 역시 본인의 악질이 만인에게 알려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부, 명예, 권력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는 이기적인 두려움 말이다.
교수의 손에 미래를 거는 우리들의 이야기와도 같다. 대학 내 위계적인 조직문화는 ‘학계는 절대왕정’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교수와 대학원생의 권력관계에 있어 한없이 나약해지는 게 대학원생이기 때문이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대학원생의 신분은 교수와의 긴밀한 관계를 더욱더 간절하게 만든다. 이를 악용하여 대학원생을 본인의 비서쯤으로 여기는 교수들의 행태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에 대학원생의 인권보장은 그림의 떡이다.
급기야 미투(Me Too) 운동은 학계까지 퍼졌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들의 용기에 우리는 위드유(With you)로 보답해야 한다.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내려앉은 권력형 갑질, 권력형 성폭력을 철폐하기 위해 범사회적 차원에서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식의 솜방망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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