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영화비평:<더 포스트 The Post>(2017) 스필버그, 정치적 자유주의, 여성 리더십의 문제

 한국 영화에서 믿고 보는 배우가 송강호라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믿고 보는 감독 중 하나는 스티븐 스필버그다. 1970~80년대 그는 블록버스터의 효시라 불리는 <죠스 Jaws>(1975), 동시대 액션 어드벤처의 전설이 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으로“영화는 심오한 예술이기 이전에 오락이며, 재미있는 영화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모든 감독이 흥행을 추구함과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명성과 명예를 함께 누리고 싶어 하듯이 스필버그도 오락적인 영화를 만듦과 동시에 소위 ‘작품성 있는’ 영화를 간간이 연출했다. <컬러 퍼플 The Color Purple>(1985), <태양의 제국 Empire of the Sun>(1987)등이 그러한 영화였다. 어쩌면 오락성과는 거리가 먼 무거운 영화들 때문에 혹자들은 그가 아카데미상을 타고 싶어 안달이 난 감독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런 평가가 맞는 것이라면 1994년 아카데미 작품, 감독, 각색, 촬영 등 주요 7개 부문을 수상한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1993)는 그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는 영화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1998) 이후 스필버그의 영화는 이제 아카데미를 겨냥한 영화를 따로 만들 필요(만약 그랬던 것이 맞다면)가 없을 정도로 재미와 감동, 오락과 메시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A.I.>(2001),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2002), <우주 전쟁 War of the Worlds>(2005), <뮌헨 Munich>(2005)은 그의 완숙한 연출력이 돋보인 영화들이다.  한때 스필버그도‘한물갔구나’생각했던 때가 있다. 2010년대 초반이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2011)은 거장에 어울리지 않는 소품 같았고, <워 호스 War Horse>(2011)는 억지 감동을 쥐어짜는 것처럼 보였으며, <링컨 Lincoln>(2012)은 장대하지만 지루했다. 그런 와중에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2015)가 보여준 우아함은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 시리즈나 <본 Bourne> 시리즈 등 템포 빠른 첩보액션이 결여하고 있는 고전미마저 느끼게 했다. <더 포스트 The Post>(2017)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이다.

ⓒ 필자 제공

 

고뇌에 찬 여성 리더의 결단을 본다는 것

 1960년대 중후반, 미 국방부 직원으로서 베트남 참전 경험이 있는 댄은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국방부 기밀문서‘펜타곤 페이퍼’를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그리고 당시 대통령 닉슨까지 공화당, 민주당 정부 할 것 없이 전쟁에서 미국이 이길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파병 등 전쟁지속 정책을 취해왔다는 사실이 담겨있다.  남베트남 원조, 소련에 맞선 반공 정책 등 명분은 많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전쟁에 지는 정부가 되는 것이‘쪽팔려’서다.  반전여론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에 이것은 메가톤급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건이다.  이 문건의 일부를 입수한 뉴욕 타임스가 먼저 터트린다. 여기에 분노한 닉슨 정부는 뉴욕 타임스가 국가안보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명목으로 소송하고 후속 기사를 내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린다. 그러나 이 영화는 뉴욕 타임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제목이 ‘더 포스트’인 것은 이것이‘더 타임스’(뉴욕 타임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의 이야기라는 것을 가리킨다.
정의와 언론자유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에서 <더 포스트>는 <굿 나잇 앤 굿 럭 Good Night, and Good Luck>(2005)이나 <스포트라이트 Spotlight>(2015)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초점은 다르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맥카시즘 시기, 광적인 반공 열풍에 결연히 맞섰던 방송인 에드워드 R. 머로 한 사람에 전적으로 맞춰져 있다. 이에 반해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신부들의 수 십 년간에 걸친 소아 성추행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신문기
자들의 팀워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더 포스트>는 이 중간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 인물을 부각시키는 캐릭터 영화도 아니고 팀플레이를 전면에 내거는 앙상블 영화도 아니다. 그보다는 철저하게 두 인물을 따라간다. 뉴욕 타임스의 뒤꽁무니만 쫓는 것에 넌더리를 내고 한 건 크게 터트리고 싶어 하는 편집장 벤 브래들리와 남성 중심의 언론계에서 당시만 해도 중소 지역지였던 워싱턴 포스트를 명실상부한 전국지로 만들고 싶어 하는 여성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이 그들이다. 각각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립이 접신의 경지에 이른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가 한층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이 둘이 펜타곤 페이퍼 전문을 입수하여 공개하기까지의 과정을 순수한 정의와 언론자유만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벤은 무엇보다 뉴욕타임스를 이기고 싶어 한다. 그는 뉴욕 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를 접하고 자신의 부하 기자들에게 “여기는 신문을 읽을 줄만 알고 쓸 줄 아는 사람은 없나?”라고 다그친다.  또한 신참 기자를 뉴욕 타임스에 보내어 정탐하는 일까지 시킨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인의 사명감이 순수한 정의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만약 벤 브래들리라는 남성 언론인만을 원 톱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이 영화는 또 하나의 남성 영웅 서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아내 토니가 남편 내조 외에 별다른 역할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대신, 영화는 캐서린 그레이엄을 벤과 균등한 비중으로 다룬다.
오히려 그녀가 더 복합적인 고뇌와 결단을 가진 주인공이다. 아버지가 사주였던 워싱턴 포스트는 사위인 자신의 남편에게 승계되었고, 남편은 좋은 언론인이었지만 자살했다(영화에서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우울증을 앓았고 결혼생활은 불행했다고 한다). 이 일로 그녀가 사주가 되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오너처럼 여겨졌다. 남성 이사들은 캐서린을 사교계의 인사 정도로 여길 뿐, 진정한 언론인으로도 안정적인 소유주로도 생각지 않는다. 영화 곳곳에는 이런 요소들이 즐비하다. 온통 남성들만 있는 이사회에서 언급할 코멘트를 잔뜩 써서 준비해 가지만 정작 해야 할 때 말을 꺼내지 못하며,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라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 후에도 한 남성 이사는 당신이 벤의 야심에 놀아나고 있다고 깎아 내린다. 보도금지, 소송 등 닉슨 정부의 탄압에 더해 투자자들의 투자 철회도 걱정이다. 가족 경영에 불과했던 신문을 겨우 주식 상장했는데 말이다. 또한 펜타곤 페이퍼의 최종 책임자인 맥나마라는 케네디, 존슨 정부의 국방장관으로서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다.
물론 그녀는 자수성가한 여성이 아니라‘금수저’다. 그러나 가진 게 더 많은 사람일수록 잃는 것이 더 두려운 법이다. 그래서 주식상장을 하고 남성들로만 가득 찬 회의장에 연설을 하러 가는 장면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계단에서 기다리는 여성들(설명되지 않지만 여비서들로 보인다)의 장면이나, 닉슨 정부의 소송에서 승소하고 계단을 내려올 때 그녀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들인 점(이에 반해 뉴욕 타임스 측은 남성 기자들로 둘러싸여 있다)은 여성의 강한 결단력과 리더십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된 연출로 보인다.

스필버그와 이스트우드, 할리우드 정치학의 두 균형추

 스티븐 스필버그는 종종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비교된다. 둘의 공통점은 휴머니즘이다. 모호하지만 이 말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두 사람 모두 개인이 국가에 앞선다고 믿는다.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스필버그가 제작한 <아버지의 깃발 Flags of Our Fathers>(2006),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2006)는 전쟁의 비인간화를 고발하는 두 사람의 합심이 만든 수작이다. 그러나 둘의 휴머니즘은 좀 결이 다르다. 이스트우드의 휴머니즘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경쟁에서 밀린 약자들을 힘 있고 의로운 개인들이 보호해야 한다는 따뜻한 보수주의에 입각해 있다(<그랜 토리노 Gran Torino>(2008)를 보라). 반면, 스필버그는 국가가 개인 위에 군림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거부하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에 가깝다(<더 포스트> 역시 그런 영화다). 둘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의 골수 지지자들이고, 할리우드 정치학의 두 균형추이다.

* 약간의 스포일러 및 팁: 영화의 에필로그는 워싱턴 포스트와 닉슨의 악연이 어떤 식으로 종말을 고하게 될지를 암시하는 그 유명한 사건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그런 점에서 40여 년 전에 제작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1976)이 <더 포스트>의 속편 격이라 할 수 있다.

정 영 권 /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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