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호 사설] 소설과 뉴스, 그리고 현실

2016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인휘의 단편집『폐허를 보다』에「공장의 불빛」이라는 소설이 있다. 60이 다 된 공장 노동자가 겪어야 했던 공장주의 악행, 동료의 죽음을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다. 그의 눈 속에 공장의 불빛이 어찌나 을씨년스러운지 책장은 잘 넘어가지 않고, 겨우 읽어낸 페이지 끝에는 “침통한”불빛이 남는다. 소설가 이인휘는 실제로 공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사실을 알고 나면 소설은 소설 이상의 것으로 새삼스레 다가온다.

지난 11월, 이인휘의 소설보다 더 읽어내기 힘든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현장실습을 나간 제주도의 특성화고 고등학생 한 명이 제품 적재기에 끼는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18살 소년에게 지운 연장근로와 야간근무, 안전장치도 숙련된 작업근로자도 없던 작업 환경 등 착취 그자체인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소설의 비극은 위기와 절정을 느낄 수 있지만, 현실의 비극은 절정에서야 눈에 들어온다. ‘제주현장실습고등학생사망사건’ 이후에야 올해에 4명의 고등학생이 현장실습 중에 손가락·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설 속 비극과 뉴스 속 비극은 모두의 비극이 될 수 있을까. 냉동 만두의 포장을 뜯으며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노동자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잘 다듬어진 책상을 보며 쓸쓸한 공장의 불빛을 떠올릴 수 있을까. 비행기가 5분에 한 번씩 뜬다는 최대의 관광지 제주도 어딘가에 있을 공장을 상상할 수 있을까. 공장 노동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나’의 삶을 연결 지으려고하면 어쩐지 한 단계를 거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초등학생들이 “노동자는 득이 없다”, “노동자는 지지이다”라고 답변했다는 인터넷 게시물이 정말 어린 생각에 불과할까? 의문이 고개를 든다. 그럼에도 외부의 문제에 나름의 고민을 시작하려고 보면, 어쩐지 오지랖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 개입 이유를 찾고자 노력한다. 때로는 덜 정의로운, 합리성은 교과서처럼 매끄러운 상호존중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이해 지점을 만든다. 끼어들어 한 마디를 해도 될 만한 관계성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의 관계는 개인이나 집단이라는 비인칭의 관계처럼 자연스럽지 못하다.

사회구성원으로서 타인의 비극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위다. 여기에 있어 보이게 끼어들만한 관계를 계속해서 규명해보자.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때로는 존재 자체인 내가, 때로는 대학원생인 내가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기를 원한다. 혼자 살 수 없다는 것만은 모두가 명확하게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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