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호 영화비평: <범죄도시>(2017) 순수한 공동체를 향한 배제의 방식

영화 <범죄도시>(강윤성, 2017)가 67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하반기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으로 올라섰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는 제약과 굵직한 흥행 배우 하나 없어 시장에서의 열패가 점쳐졌던 이 영화는 어떻게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까?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의 인기 요인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요인은 이 영화가 ‘2004년 금천경찰서의 조선족 조직 폭력배 소탕작전’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청년경찰>(김주환, 2017)이 빠졌던 중국 동포 재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두 번째는 외국인과 한국인의 구도를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았다는 점, 세 번째는 중국 동포가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가 여성으로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지점이 주인공을 맡은 마동석 배우의 스타 이미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범죄도시>가 최근 한국영화를 둘러싼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무사히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범죄도시>를 표면적인 차원에서 검토한 것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 가능한데, 하나는 한국영화에서의 중국 동포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와 관련해서 영화가 동시대 한국사회의 공기를 담아내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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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바탕을 둔 중국 동포의 재현 방식

영화의 초반부는 가리봉동 연변거리의 풍경에 관한 것이다. 그곳은 독사파와 이수파라는 2개의 ‘조선족 조직’과 춘식이파라는 한국인 조직이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곳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들을 그려내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조선족 조직을 그려내는 카메라는 이들에게 야생적이고 원초적인 이미지를 덧씌운다. 그래서 이들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거나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허름한 성인 오락실을 운영하면서 연변거리의 상인들에게 상납금을 받아가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인 조직은 항상 양복을 입고 있으며, 상인들을 상대하는 대신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영화는 스크린 밖의 관객과 영화 속 연변거리의 주변 상인으로 하여금 비난의 화살을 조선족 조직에게 향하도록 만든다. 카메라가 상대적으로 한국인 조직을 선량하고 정상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조선족 이미지의 정점에는 흑룡파 장첸(윤계상)과 그의 부하들이 서 있다. 그가 사용하는 이질적인 말투와 2개의 조선족 조직을 접수하는 과정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중국 동포의 고정관념이 형상화 된 것에 불과하며 집이 아닌 고물상에서 지내는 그의 설정은 이러한 타자화를 강화하는 요소이다. 이 영화가 중국 동포를 그리는데 사용한 관습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의 반복이다. <황해>(나홍진, 2010)에서 도끼와 짐승의 뼈로 사람을 살해하던 중국 동포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신세계>(박훈정, 2012)에서는 지저분한 모습으로 청부 살해를 하는 연변거지가 등장한다. <공모자들>(김홍선, 2012)에서 중국 동포는 무고한 사람을 납치해 장기 밀매 조직과 결탁되어 있다. <범죄도시> 바로 직전에 개봉했었던 <청년경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컨대 <범죄도시>를 포함한 동시대 한국영화들은 영화적 쾌감과 주인공의 정당성을 위해 중국 동포를 비롯한 사회의 소수자에게 부정적인 설정들을 거리낌 없이 덧붙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중국 동포들에 의한 범죄가 현실사회에서 전무한 것은 아니다. 또한 영화가 그런 현실을 재현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모든 범죄가 중국 동포들에 의한 것은 아니며 같은 한국인에 의한 강력범죄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과 영화장치에 의한 윤리적 재현의 필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범죄도시>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내용의 자막을 영화의 시작과 함께 제공해 이와 같은 판단의 기준선을 무뎌지게 만든다. 영화 속 중국 동포의 모습이 상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실제 존재했던 범죄자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타자혐오에서 자유롭다는 식으로 말이다. 보다 문제적인 것은 혐오에 바탕을 둔 중국 동포의 재현이 <범죄도시>가 말하는 가치와 조응해 타자화에 대한 가속을 더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민족적 감정에 기반을 둔 공동체

이 영화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은 주인공 마석도(마동석)와 한국인 폭력 조직과의 관계이다. 마석도는 가리봉동을 관할하는 강력반 형사이다. 그는 가리봉동 연변거리의 3개 조직의 보스를 직접 관리하는데 2개의 조선족 조직의 보스에게는 일관적으로 강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이수파와 독사파로 불리는 그들이 분쟁의 조짐을 보이자 보스들을 불러서 억지로 화해하게 만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반면 한국인 조직과는 유대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 한국인 조직의 보스인 황춘식(조재윤)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에서 석도가 그와 만나는 장면은 이들의 사이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석도가 춘식의 유흥주점에 들어서자 춘식의 부하들은 그에게 형님이라고 부른다. 석도는 춘식의 지갑을 뺏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챙긴다. 형사와 조폭의 유대 관계를 보여주는 이 장면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조선족 조직을 대하던 석도의 태도가 완연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석도는 조선족 조직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경찰이 범법자를 처벌하는 모습이라기보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훈계하는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춘식이파를 대하는 태도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위대관계에 가깝다. 석도는 춘식의 주점에서 술을 얻어 마시며, 춘식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술을 대접하면서 경찰들이 알고있는 정보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기까지 한다. 영화에서 가장 문제적이라고 지적할 만한 장면을 보자. 장첸은 가리봉동의 조선족 조직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은 춘식의 부하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춘식은 자신이 아끼는 부하가 당하자 복수를 위해 장첸을 습격하지만 놓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석도는 춘식에게 크게 화를 내며 칼 맞아 죽기 싫으면 입고 다니라며 경찰 방범복을 건네준다. 그런 다음 부하 3명을 골라서 자수시키라고 말한다. 경찰과 한국의 폭력조직이 공동의 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탁하는 순간이다. 이후 장첸의 역습을 받은 춘식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경찰서로 도망가기 시작한다. 이 지점만 살펴보더라도 영화가 이분법적 선악구도로 한국인과 중국 동포를 그리지 않았다는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범죄도시>의 중국 동포는 여전히 민족성으로 결합한 공동체를 위협하는 외부인 혹은 타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에 중국 동포인 연변거리의 상인들의 묘사방법이 선악구도에서 벗어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것 또한 영화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쉽게 반박 가능하다. <범죄도시>는 상인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작업은 노인, 아이, 여자 등으로 주로 힘없는 이들의 기호가 적극적으로 소환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제대로 된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조선족 조직원들에게 시달리는 처지이다. 최후의 위기에 몰린 장첸이 공격하는 것도 바로 이들, 그중에서도 노인과 아이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장첸으로 대표할 수 있는 중국 동포의 악마화 작업뿐 아니라 또 다른 약자로서 그들을 대상화 하고 있으며 이것을 서사의 강력한 동력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중국 동포에 의한 범죄의 희생자가 여성뿐만 아니기 때문에 혐오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라는 주장의 허점을 찾아볼 수 있다. 여성은 여전히 희생자이고 거기에 노인과 아이로 표상된 힘없는 중국 동포가 추가된 것이다. 이것을 중국 동포에 이중 대상화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그들은 잔인하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되거나 힘이 없기 때문에 시혜의 대상으로 소환되는 존재이다.

영화는 평화를 되찾은 연변거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곳은 상인들을 괴롭히던 기존의 조선족 폭력 조직과 그들보다 더 악랄했던 장첸의 흑룡파가 사라진 곳이다. 상인들을 괴롭히던 악당들이 사라진 거리를 마형사와 그의 부하들이 걷고 있다. 이제 이곳의 위계질서는 더욱더 확실해졌다. 여전히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힘없는 중국 동포들과 그들을 관리하는 한국의 경찰,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한국의 폭력 조직으로 말이다. 마형사와 그의 부하들은 기존의 조선족 폭력 조직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장면의 의도는 조직 폭력배가 사라진 평화스러운 거리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조선족 폭력 조직이 경찰로 대체된 것처럼 보이며 이러한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백태현 / 동국대학교 국제학생센터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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