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호 테마서평: 인류와 축제] 축제의 문명사적 변화와 동서양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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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축제와 문명』(장 뒤비뇨 저, 류정아 역, 한길사, 1998)
[2]『용과 여성, 달의 축제』(한양명 저, 민속원, 2006)
[3]『축제의 역동성과 현대일본사회』(김양주 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축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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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ana2371.tistory.com/617 ▲축제의 모순적인 에너지가 잘 드러나는 프랑스 대혁명

축제(祝祭)는 한자어가 보여주듯이 신에 의존하며 신을 모시고 노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신을 즐겁게 하는 놀이는 본인 스스로에게도 커다란 희열을 준다. 원래 한국에서는 축제와 놀이가 큰 의미 차이 없이 쓰였고, 축제라는 말보다 놀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별산대놀이, 탈놀이, 굿놀이 등에서 보듯‘놀이’도 축제와 마찬가지로 신을 모시고 노는 것을 의미했다. 영어 ‘Festival’은 라틴어의 성일(聖日, festivalis)에서 유래한 말이다. 동서양 모두 축제는 신을 모시고 의례를 행하고 신나게 노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축제와 놀이의 뜻이 분화되기 시작했다. 축제라는 단어가 신의 측면이 강조되는 신성한 잔치라면, 놀이 라는 단어는 신성성이 빠진 의미가 된다.
서양의 축제는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가 보여주듯, 마을 사람들이 술을 잔뜩 마시고 신을 위하여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 측면이 강했다. 신을 위무(慰撫)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도 흠뻑 빠져서 노는 것이다. 사람을 초월한 신을 위해서 놀기 때문에 더욱 더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었다. 이러한 축제가 문명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녔는가를 살펴본 책이 장 뒤비뇨의『축제와 문명』이다. 이 책은 축제와 관련하여 가장 뛰어난 이론적 논의를 펼치고 있다. 장 뒤비뇨에 따르면 축제는 인간이 신과 합일하여 성스러운 초월적 에너지에 흠뻑 빠지는 것이다. 축제는 일상과 전혀 다른 신성성이 부여된 비정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낸다. 신을 매개로 기존의 질서와 억압을 뒤집고 파괴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실현하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이런 모순적인 에너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혁명이고,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신성한 힘을 통하여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꿈을 실현할 때 축제의 진정한 에너지가 잘 드러난다.

 

동서양 축제의 변화

 

바흐친의『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는 카니발에서 전형적인 축제의 모습을 찾아낸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카니발 기간 동안, 민중 들은 신의 이름으로 일상적인 권위와 금기를 비꼰다. 하지만 이러한 신을 매개로 한 파괴적인 열망과 희열은 기독교에 의해 억압되고 약화되었다. 이러한 조롱을 허용하는 신은 기독교에 매우 이단적인 존재다. 기독교에서 신은 전지전능한 이성이고 질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지속적으로 카니발을 억압하고 악마화하면서 체제 순응적으로 재편해왔다. 기괴한 내용들이 점차 축제에서 제거되고 질서 있게 신을 모시는 축제가 되면 서 죽음, 기괴함을 축복하는 광란은 점차 사라졌다. 그러면서 사회적 위계질서와 권위를 파 괴하는, 유토피아적인 일탈을 매개로 충전되던 희열과 우주적 갱생의 에너지도 점차 약화된다. 그러다 보니 광란의 현장이었던 카니발들도 점차 적당한 일탈의 한계 내에서 질서 있게 진행되는 퍼레이드가 되었다. 기독교가 비기독 교적인 신을 억압하고 순화시켜온 결과이다. 그래서 리우카니발, 베네치아카 니발 등 카니발이라는 비기독교적인 이름으로 진행되는 축제가, 약간의 비기 독교적인 상징을 지닌 기독교 순응적 축제로 바뀌어 온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축제도 크게 보면 위와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지만 그 과정과 내용이 조금 다르다. 유동식의『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에 따르면 고대 한반 도에는“노래와 춤으로써 하늘과 땅, 신령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어 새로운 생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원초적인 종교현상”이 있었다. 중국 고대 사서인『위지』「동이전」에 따르면“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데, 이때에는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논다. 이것을 무천(舞天)”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헌들로 보면 우리의 조상은 중국보다 더 열정적으로 하늘을 위하여 제를 지내고 북을 치고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놀았다. 신을 위하여 신에 의지하여 무아지경으로 축제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정신이 나간 듯이, 신명나게 노는 모습이다.
이러한 고대의 질펀한 축제는 유교가 주도하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크게 약화되었다. 조선은 성리학적 이념에 입각하여 국가와 백성들을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유교는 현세 중심적이고 초월적인 신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여 인간을 초월한 신의 품에서 신명나게 노는 것이 어렵다. 현세에서의 삼강오륜, 충효, 대의명분 등을 지키고 가문을 빛내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에 들어와서 제사와 문중은 발달하였지만 대동놀이와 축제는 축소되거나 제례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사상적 영향으로 축제의 주술적이고 쾌락적인 성격은 흐려졌다. 고려시대의 연등제, 팔관회 등의 불교적 축제조차 음란하고 타락한 것으로 간주하며 억압하였다. 마을 축제나 국가 축제에서 유교의 영향을 받아 이전보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일탈과 난장을 행할 수 있었다.
마을 축제도 신명성과 일탈성이 크게 약화된 상태로 유지되었다. 동제, 당제, 별신제, 풍어제, 탈놀이 등이 대동제로 지속되었다. 한양명의『용과 여성, 달의 축제』는 근대에 의해 크게 약화 된 경북 영덕의 동제와 대동놀이의 원래 모습을 파악하여 그 의미를 제시하고자 했다. 줄당기기는 용왕을 모시는 별신굿을 대체하는 것으로, 지모(地母)신앙과 성행위를 상징하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놀이다. 월월이청청은 여성만의 가무놀이이며, 달봉뛰기는 달축 제의 잔재로 달의 생산력, 동신(洞神), 지신(地神)과 관련되어 있다. 유교 이전의 신명나는 축제였을 동신, 용왕신, 지신, 성행위, 다산, 여성 등이 유교적 축제로 파편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유교적으로부터 자유로워 유교 이전의 축제 모습을 많이 간직한 일본은 축제에서 신사(神社)의 신을 모시며, 신의 품 안에서 일상생활로부터 벗어나 몰입하는 모습을 비교적 한국보다 많이 보여주고 있다. 김양주의『축제의 역동성과 현대일본사회』는 일본 시코쿠의 시만토 강 유역 의 이러한 전통적 마츠리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여준다. 시만토 강 유역에는 남신의 후바하치만궁(八幡宮)과 여신의 잇쿠신사(一宮神社)가 존재하는데, 이들 신의 결혼을 해마다 재현하여 우주를 재생시킨다. 우주의 질서를 재생한다는 믿음이 강했을 때는 주민의 희열과 신명도 아주 강했겠지만, 점차 주민의 도시이주와 신앙심의 희박화로 주민의 참여강도도 약해지고 축제의 내용과 의미도 점차 간략해지고 축소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지연집단이 한국보다 더 잘 유지되면서 지연집단에 의존하는 축제의 전통적인 측면이 한국보다 더 많이 남아있다.

 

현대 축제의 변화

 

한국이나 일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와 근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축제의 성스러운 초월적 에너지에 대한 믿음이 크게 약화되었다. 따라서 고대에 강력하게 나타났던 축제에서의 희열, 신명, 전복, 광란도 현대로 올수록 약화되고 형해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축제가 사람의 열망을 자극하며 기존 질서를 무너Em리는데 몰입하게 만들고, 더욱 커다란 초월적 에너지와 함께 부활하며 희열을 느끼도록 만드는 힘도 갈수록 약해졌다. 전통적인 축제가 지닌 초월적이고 역동적인 측면이 약해지면서 현대의 축제는 오락적이며 유희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강조되는 경향을 보인다.
유럽에서도 19세기 신성성이 약화된, 퍼레이드 형식의 축제가 주도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역사회의 활성화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지역을 살리기 위한 주제를 지닌 이벤트로서의 축제가 급증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토속성이 강한 신을 모시는 동제, 당제, 용왕제 등이 미신으로 불리며 타파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그나마 남아 있던 당집, 신당, 해신당 등을 매개로 한 축
제들도 사라졌다. 과학이 강조되는 현대에 들어와 축제의 초월적, 일탈적 성격은 더욱 약화되었지만, 동서양 모두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이벤트로서의 축제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장 뒤비뇨의 책은 초월적 에너지와 전복성이라는 축제의 본질을 잘 제시하고 있다면, 한양명과 김양주의 책은 근대에 들어 축제가 가진 에너지가 순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정덕 /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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