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호 특강취재: 연세대학교와 함께하는 인문아카데미, <문자, 매체, 예술>] 종교와 함께해온 알파벳의 발명과 확산

225-12-1

서울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에서는 HK사업의 일환으로 인문학적인 지식을 널리 확산하기 위해 2010년부터 교도소 등 다양한 기관에서 인문학 관련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되는 이번 강연은 <문자, 매체, 예술>을 주제로 하며, 총 8번의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업은 11월 2일부터 12월 21일까지 서울시 서대문 도서관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다. 본보는 지난 11월 16일에 있었던 최경은(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강연자의 첫 수업 주제인 ‘문자의 확산, 알파벳의 발명에서 확산까지’를 다루고자 한다. 강연자는 이번 수업의 주제인 ‘알파벳’ 의 좁은 의미로서의 정의에 대한 설명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알파벳의 의미와 탄생

좁은 정의의 알파벳이란 영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에 쓰이는 ‘라틴 알파벳’을 의미한다. 본 강연은 ‘라틴 알파벳’에 관한 이야기이다. 라틴 알파벳을 사용하는 국가의 비율은 지구상에서 거의 7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알파벳은 언제부터 유래되었을까?
알파벳의 뿌리는 지중해 동안 페니키아 지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페니키아 문자는 3,000~4,000년 전부터 사용되어왔으며, 페니키아인들이 페니키아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역을 위해서였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물건을 사고팔던 페니키아인들은 기억에만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기호를 약속한 것이 페니키아 문자, 즉 알파벳의 뿌리가 된 것이다. 페니키아 문자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그리스 문자로 발전하였고, 이는 글라골, 아르메니아, 에트루리아, 콥트 문자로 확산되었다. 라틴 알파벳은 이 중 에트루리아 문자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오늘날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민중어로 발전하게 된다.

문자의 탄생과 확산

강연자는 이러한 알파벳을 포함한 문자의 탄생은 지구가 백만 년을 살았다고 추정할 때 대략 3,000년 전 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지구가 현재 100세라고 가정했을 때 100세가 되기 바로 직전인 99.7세에 문자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문자를 사용한 시기가 지구의 탄생 이후 매우 짧은 기간에 해당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렇기 때문에 과연 우주에 인간과 같이 문자를 사용하는 생물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강연자는 아니라고 답한다. 강연자는 “대부분의 문명체는 99.7세 이전에 속해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특출한 존재”라고 강조한다.

문자가 탄생하면서 이를 사용하고 기록하기 위한 관련 도구들도 함께 발달하게 된다. 약 2,000년 전 카야츠리그사 과의 식물을 재료로 한 최초의 기록매체인 파피루스가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찢어지기 쉬운 재질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 돼지, 다람쥐 등 동물의 가죽을 벗겨 글자를 새겼던 양피지가 발명되었고, 후에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는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기록 매체로 알려져 있다. 문자가 기록된 매체를 보관하기 위한 형태 또한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루마리 형태로 말아서 보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에서 시작하여 4세기부터는 코덱스 형태로 보관하기 시작했다. 코덱스형태는 현재의 책 형태를 의미한다.

문자가 탄생한 이후 활발하게 확산되기 시작한 요인으로 강연자는 크게 세 가지를 말한다. 첫 번째는‘안경의 발명’이다. 12~13세기경, 안경이 나타나면서 독자층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류의 수명은 20대 후반이었는데, 20대 정도가 되면 시력의 감퇴로 거의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따라서 독자층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안경의 보급으로 독자층이 확장되었고, 이는 책의 수요를 증가시켰다. 두 번째 요인은 ‘대학의 설립’이다. 당시의 책은 대부분 수도원에 보관되었으며, 필사를 통해 생산하였다. 따라서 수도원에는 필사실이 존재하였으며, 주문을 받으면 소속된 수도승이 필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책이 보급되었다. 그리고 필사를 위해 수도승들이 모여서 글을 익히던 곳이 당시의 대학이었다.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은 책의 수요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수도원에서 더 많은 필사생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문자는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현재 보존되고 있는 책의 수로 보았을 때 많은 책이 생산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책의 생산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으로, ‘인쇄술의 발달’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인쇄술의 발달

문자의 확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번째 요인은‘인쇄술의 발달’이다. 1454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에 의해 발명된 인쇄술은 1377년 우리나라에서 발명된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시기는 느리지만 인류에 끼친 영향력은 훨씬 컸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하나의 책을 찍기 위해 활자를 만든 뒤, 종이를 바르고 문지르고 닦는 등 매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양의 책을 찍어 내기가 어려워 주로 왕조의 위엄, 또는 신앙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 인쇄 술의 경우 당시 서양에서 유행했던 포도주를 짜는 기구를 이용하여 찍어내는 방법을 통해 빠른 시간에 수천 부의 책을 찍어낼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는 1454~1455년에 걸쳐 책의 앞부분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42행으로 구성되어있는 42행 성서를 출판하였으며, 구텐베르크 인쇄술을 통해 출판된 책은 필사본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구하여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문자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알파벳의 정착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산되기 시작한 문자 중 하나인 알파벳은 어떻게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자로 자리 잡았을까. 현대에는 문자를 신성한 것으로 여기지 않지만 고대, 중세에서 문자는 하층민을 억압하기 위한 지배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로 많은 하층민들도 성서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문자는 저항의 매체로 변화하였다.
문자가 신성하던 15세기 말, 고대 사회에서 성서에서는 “문자를 다루는 사람은 말씀의 보관자이며, 말씀은 곧 신”이라고 말한다. 이는 문자의 ‘아담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으며, 문자 그 자체가 존재론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세 철학자 이시도루스는 문자를 비롯한 모든 기호들을 신의 계시를 보여주는 물질적인 매개체라고 표현하였으며, 11세기 한 처방전에서는 열이 나는 환자에게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주의 이름으로, 열아 날아가 버려라”고 쓰인 양피지 조각들을 목에 감을 것을 권고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문자는 수도원에서만 보관하였으며, 문자와 관련된 행위들은 다 신성한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왕이나 귀족들도 글자를 알지 못해 다양한 행정 기능을 성직자 에게 의존하였다. 이에 따라 성직자들의 권력이 커지면서 교회는 점점 관료주의적인 성 격을 띠게 되고, 하위직 성직자들은 교회의 위계질서에 회의를 갖기 시작하였다.
16세기 중반에 중대한 사회적 변혁이 일어나게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문자사용이 도시 시민들, 특히 행정가들 사이에서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필사생의 공급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시기에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한다. 대학의 설립은 책의 공급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교회의 문자사용 독점권을 급격하게 약화시켰다. 또한 문자가 확산되면서 당시 중세의 국제어였던 라틴어에 비해 사용이 적었던 민중어의 사용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가 유럽에 상륙하고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문자의 확산은 막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에 대해 로마 카톨릭은 초반에는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인쇄술을 통해 일정 금액을 받고 벌을 면해주는 ‘면벌부’를 판매하여 수익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문자는 저항의 매체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책은 ‘예술품’에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변화하였다. 루터는 누구나 성서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1522년부터 1599년까지 약 180만 부가 되는 양의 성서를 출판한다. 또한 1517년 10월 31일 로마 카톨릭에게 95개조 항목의 질의서를 발의한다. 이에 당시 교황인 레오 10세는 칙서「신이여, 일어나소서」를 통해 루터에게 경고하지만 루터는 칙서를 불태운다.
당시 루터를 지지하던 프리드리히 대제는 루터를 살해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동독일과 서독일의 경계에 위치한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납치한다. 루터는 그곳에서 약 2년 동안 생활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게 된다. 9월에 배부되어서 ‘9월 성서’라고 불리었던 이 성서는 약간의 개정을 통해 ‘12월 성서’로 재발매되었으며, 1545년에 마지막 교정을 본 완본인 ‘루터 성서’가 된다. 강연자는 “루터 성서는 단순한 종교적 인 의미뿐만 아니라 인류에 있어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며 “그 당시 통일되지 못했던 동독일과 서독일의 언어를 통일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고, 독일에 알파벳이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오지예 | ooojiye@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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