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기획: 화학물질의 위협과 대응]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안

화학물질로 인한 국민의 생활안전 문제는 과거부터 주기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가습기살균제, 살충제 계란, 생리대 유해물질 등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터질 때마다 큰 이슈가 되고, 시민연대와 언론을 중심으로 정부의 근본적인 대응책을 촉구했지만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실정이다. 본보는 화학물질 문제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책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습기, 계란, 그리고 생리대

가습기살균제에 이어 살충제로 오염된 계란과 유해물질이 방출되는 생리대 문제가 연이어 이슈 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은 미흡했다. 특히, 이미 해외에서 계란과 생리대 문제가 이슈화된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정부차원의 위험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수차례 제기된 바 있었음에도, 정부는 문제가 커질 대로 커진 이후에 대응을 시작했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국민들은 가습기살균제 이후 화학물질에 대해 근본적인 우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들이 화학물질에 대해 과도한 공포증을 겪고 있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 치유될 것’으로 여기는데, 이러한 태도는 문제의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가 마주한 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대응할 사회의 역량을 진단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보다 안전한 사회라는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위험이 아니라 안전이다

위와 같은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얼마나 위험한지 묻는 것보다, 얼마나 안전한지 묻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가 위험한 제품이었다는 점에 우리 사회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정부는 계란의 경우 피해자를 확인할 수 없고, 생리대는 다수의 피해 호소가 있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라며 정확한 피해 가능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냈다. 계란과 생리대는 가습기살균제와 달리 문제의 원인규명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화학물질 피해에 대해 이러한 입장 차가 생기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에 ‘위험확인’이 낡은 프레임으로 비판받는 것이다. 이 프레임에서 위험은 피해를 규명해야 입증되는 것이므로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존재한다. 만성적 질환이 우려될 때, 피해를 주장하는 측과 부정하는 측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발생하며 조정도 쉽지 않다. 위험확인이 늦어지니 대책수립도 따라서 늦어진다. 결국 이 프레임에서는 가습기, 계란, 생리대에서 문제가 그치지 않고 다른 문제들이 계속 불거지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확인’이라는 프레임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제품을 만들면서 필요한 안전확인과 조치를 다 하였느냐를 확인하는 것은 피해규명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닭을 키우는 과정에 허용된 살충제 외에 다른 물질이 사용될 수 없게 하였는가? 생리대를 만들 때 원료의 재질과 불순물을 확인하면서 유해한 물질이 잔류하여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공급망 관리를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제품의 위험성을 확인하는 것보다 빨리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 제품 생산 전에 미리 안전을 확인하는 절차가 확립된다면 유사한 많은 문제들이 사전에 방지되는 효과가 발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화학물질 문제에 뒤늦은 정부의 대응

ⓒ 조선일보
▲화학물질 문제에 뒤늦은 정부의 대응

정부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계란을 하루에 몇 개씩 먹더라도 안전하다고 발표하자 한국환경보건학회에서는 반박 성명을 냈다. 급성적인 피해는 없을지 모르나 만성적인 피해에 대한 검토가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리대의 경우 스티렌 같은 휘발성유기화합물이 피부로 흡수되는 비율이 낮아 위험이 적다는 입장을 냈지만, 예민한 피부와 일반적 피부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위와 같은 입장 차는 피해 문제를 진단하는 도구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린 이 부분에서 가습기살균제, 계란, 생리대가 가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세 가지 모두 미관리영역의 문제라는 점이다. 가습기살균제는 원래 공산품 품질기준으로 관리되었어야 하나, 관리품목이 아니었다. 계란에 사용된 살충제 또한 검사대상이 아니었다. 생리대와 같은 제품에서 새어나오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정부와 기업 모두 관리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위험을 판단하고 관리할 도구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다시 말해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화학물질 문제는 정부의 관리영역 밖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역사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정부의 관리영역이 협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된다. 화학물질이 대량 생산되고, 이것을 전 세계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화학물질이 본격적으로 등장한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다. 고대사회로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병에 대해서도 최근에서야 과학적인 대응관리시스템이 구축되었는데, 100년도 되지 않은 새로운 문제에 대해 정부가 대응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 발생되는 화학물질 문제에 대해 정부가 신속히 정답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사회적 룰을 구축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에 검찰조사와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화학물질 문제가 밝혀지며 정부의 살생물제와 제품 안전관리시스템이 개편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과정이 그렇게 내실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계란과 생리대가 정말로 위험한 것인지 토론하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와 계란, 생리대 속 화학물질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하지 않는다면, 우린 비슷한 위험의 홍수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리치(REACH)라는 새로운 화학물질관리시스템을 도입한 유럽을 보면서 전 세계가 화학물질관리의 혁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사회가 이러한 질적 전환을 이루게 된 배경은 우리와 같은 참사를 먼저 겪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광우병, 프랑스의 HIV 감염 혈액 유통, 이탈리아의 전자파, 벨기에의 가축사료 다이옥신 오염 등 다양한 환경안전보건 문제로 인해 극도의 정부불신 상황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정부불신은 가장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되었다. 유럽의 경우 사고로부터 배운다는 말을 제대로 실천한 사회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한국사회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화학물질의 독성확인도 안하고 제품을 만드는 사회에서 제품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전 세계에 유례 없는 끔찍한 제품참사를 경험한 한국사회를 어떻게 하면 안전한 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가이다. 유럽은 참사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국민의 요구수준이 높아졌고, 정부는 예민하게 반응해 보다 책임감 있는 정책으로 대응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우린 또 다른 화학물질 참사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란 무엇인가

현재 상황이 위기이자 기회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더 잘 알게 된다면 더 좋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어떠한 사회를 원하는 것일까? 첫째, 화학물질에 대해 자만하지 않는 사회이다. 화학물질의 위험은 다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현재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위험을 판단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아직 모른다는 것 때문에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된다면, 보다 꼼꼼한 안전장치들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순간의 대책이 아니라 사회의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과정에서 정부가 PHMG라는 물질을 유독물로 지정하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렇다면 유독물을 많이 지정하면 생활화학제품에 의한 참사가 재발되지 않을까? 당연히 아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가장 결정적 원인은‘안전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기업은 안전을 확인할 책임이 없었고, 정부는 기업을 감독할 능력과 의지가 없었다. 이제부터 우리사회에는 ‘제품은 사전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판매한다’는 원칙이 확고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셋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은 실익을 따지는 것이 생리이며 법제도가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느껴야만 법을 지킨다. 기업이 안전을 확인해야 할 책임을 이행하지 않아 국민에게 피해가 발생된 경우 징벌적 배상제나 집단소송제로 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게 해야만 기업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전환될 것이다. 넷째, 국민이 안전을 정부와 기업에게만 위임하지 않고 감시자로 적극 나서는 사회이다. 국민의 감시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유일한 기제나 마찬가지다. 안전은 공동의 노력으로 애써서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그러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기쁨을 국민이 공유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일 것이다.

김 신 범 / 노동환경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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