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특강취재: 철학아카데미, <기호정신분석과 여성학>] 크리스테바의 ‘주체의 의미화 과정’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철학아카데미는 지난 15년 동안 “열린 사유의 공간, 사유를 열어가는 광장”이라는 구호 아래 예술, 과학 등 여러 장르에 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철학아카데미는 가을 학기를 맞아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기호정신분석과 여성학>을 개최했다. 본 특강은 총 8개의 강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0월 2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다. 본보는 지난 10월 21일에 진행한 김선하(경북대학교 철학박사)강연자의 ‘프로이트, 라캉 그리고 크리스테바’를 다룬다. 본 특강은 프로이트와 라캉을 비롯한 남근 중심의 정신분석이론이 배제한 타자성의 새로운 윤리와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 대한 내용이며, 강연자는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크리스테바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라캉과 크리스테바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이자 기호학자, 철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41~)는 타자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세가지 담론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시적 언어에 대한 담론’이며, 두 번째는 ‘모성 담론’ 그리고 세 번째는 ‘정신분석 담론’이다. 이런 담론들을 통해 크리스테바가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 타자성이다.
라캉은 타자성을 아이의 거울단계로 설명하는데,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아이는 거울단계를 거친다. 이때 아이는 거울 속 자신의 영상을 보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즉 아이는 하나(통일된 자아)가 되기 위해 둘(자신과 거울 속의 영상)이 되는 경험을 한다. 라캉은 이것을 분열된 주체라고 말한다. 거울단계 이전 시기에 아이는 ‘상상계’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데, 아이는 어머니와의 완전한 합일 상테에 있다는 환상을 갖는다. 하지만 이윽고 아이는 어머니의 잦은 현존과 부재의 연속을 느끼며 어머니가 사회 속에서 자신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닫는다. 그러면서 아이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문을 연다. 이때 어머니가 자신이 아닌 아버지의 남근을 욕망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직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의 거절(젖떼기)을 경험하고, 외부적으로는 아버지(사회적 권위, 언어체계, 법 등)로부터 거세 위협에 직명하며, 점차적으로 아버지의 기표를 받아들인다. 바로 아이가 상상계(아이-어머니 2자 관계)에서 상징계(아이-어머니-아버지 3자 관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설명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경험 중에서 주체가 갖는 의미화 체계 내 어머니의 역할을 배제시키고 있다”며 남근 중심의 정신분석이론에서 빠뜨리고 있는 어머니의 역할을 되살려내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것은 아이가 어머니의 육체와의 관계에서 가졌던 경험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의 억압으로부터 ‘어머니의 사랑’으로

프로이트는 출산을 여성적 거세이며, 여성에게 있어서 출산은 아이를 잃는 거세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아이가 사회의 질서를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는 아버지의 위협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이러한 상징계로의 진행을 정립적 꺾임(thetic break)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남근 중심적 정신분석이론의 설명에 대해 크리스테바는 성에 대한 억압이고 모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반박한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아버지의 억압과 권위가 나타났을 때 어머니와의 분리가 이뤄진다고 설명하는 반면, 크리스테바는 태어나는 순간에 이미 필연적으로 육체적인 분리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크리스테바는 출산을 통해 경험한 최초의 분리는 어머니와 아이가 스스로 비천해지는 것(abjection)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아이가 사회화되는 과정에 어미니는 스스로 비천체(abject)가 되는데, 이를 어머니의 사랑, 모성적 사랑이며 새로운 윤리의 기초라고 본다. 즉 아이가 사회화되는 과정의 기본 바탕이자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또한 크리스테바는 아이가 아버지의 기표를 받아들이는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모성적 육체와의 경험이 그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힘이며, 그 세계로 진입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징계 내 육체에 의한 의미화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주체의 형성과정을 아버지와의 동일시로 설명한다. 그들의 이론에서 어머니는 단절하거나 거부해야 할 대상이다. 아버지의 법과 기능만을 강종하는 그들의 정신분석이론에 맞서, 크리스테바는 그들이 배제한 상상계 내 어미니를 복원하고, 육체적 충동으로 가득 찬 기호계(Le Semiotique)를 정립한다. 또한, 상징계 내 육체에 대해 사람이 태어나서 사회의 질서를 익히는 것은 모성의 사랑과 육체를 통한 동일화(젖가슴)와 거부(똥)의 패턴 습득이 이후에 의미화 과정에서 반복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라캉의 언어 구조에서 배제되어있는 어머니의 역할을 복원하고자 한다.
라캉에게 상상계는 상징계에 진입하기 위해 단절해야 할 하나의 단계이므로, 주체에게 상상계는 영원히 잃어버린 영토이다. 그와 달리 크리스테바의 기호계는 거울단계 이전에 주체가 자신의 리비도적 에너지와 충동을 표현하고 방출하는 의미작용의 한 방식을 이룬다. 기호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징계의 영원한 반려로 남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크리스테바의 의미화 과정 ‘시계추 운동’

크리스테바는 상상계의 충동, 기호적 경험, 모성적 육체를 가지고 의미화에 한 축을 세운다. 큰 상징계(Symbolique) 내에는 기호계와 상징계(symbolique)가 있다. 이는 충동의 기호계와 상징계가 큰 상징계 내에 이미 포함되어 있고, 각각 의미화의 하나의 축으로서 작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미를 만드는 과정은 주체가 시계추 운동하듯 두 축을 오간다. 다시 말하면, 기호계와 상징계가 변증법적으로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주체는 의미화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과정 중의 주체’로 볼 수 있다. 크리스테바는 큰 상징계 내에서만 머물면 전체주의에 빠져 자기 없는 삶을 살고, 큰 상징계를 모두 거부하면 정신이상이 생긴다고 말한다. 따라서 전체주의 안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으려면 기호계와 상징계를 부지런히 오가며 주체로서 자기성(selbstheit)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자기가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은 바로 의미화 과정을 통해 적절한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계를 갖는다는 것은 헤겔식의 부정(negation)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천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크리스테바는 말한다. 즉, 비천시는 경계의 문제고, 장소와 관련되어 있다. 좋다, 나쁘다의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중의 주체가 공간과 장소에 따라 분리하고 배제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타자성이 만들어진다.
크리스테바의 의미화 과정은 충동으로 가득찬 기호적 육체를 구조주의 안에 다시 끌어들이려는 시도이고, 이는 라캉에서부터 출발하지만 라캉을 넘어선다. 충동을 언어에 재각인시키는 이러한 작업은 앞서 말한 ‘시적언어에 대한 담론’과 연결되며, 프로이트와 라캉을 넘어 ‘모성 담론’으로써 사랑에 기초한 ‘여성 윤리(herethics)’로 이어진다. 강연자는 “크리스테바의 철학은 사람의 주체 형성과정에 어머니, 즉 여성적 존재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라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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