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호 사설] 논문 좀 써주실래요?

연구자들이 모인 학문의 장에서 부끄러움과 수치 그 자체를 의미하는 행태가 최근 다시 드러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연구윤리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는 법을 개정하는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각 대학들은 교육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 “논문 대필”이라는 행태로 썩은 양심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내비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언론에 보도된 이 사건은 전임교수들이 한 계약직 교수에게 논문을 작성하게 하고 수차례 그 논문을 중간에서 가로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일종의 절도 행위였다.

이뿐만 아니라 교수가 석ㆍ박사생들에게 학위논문을 대신 써주고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와 정교수가 시간강사에게 교수 임용을 무기 삼아 논문 대필을 강제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논문이 본 의미를 잃고 수단화되고 있다. 전자의 상황은 지도교수라면 의무적으로 제자의 논문 작성을 지도해야 하는데, 이때 지도와 대필의 경계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한 점에 대한 악용이고, 후자의 상황은 시간강사의 생계와 사회적 신분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약자의 불편한 선택을 노리는 것이다. 또한, 두 경우 모두 개인의 사회적 입장을 보호하기 위해 함구하는 일이 많다. 이에 따라 행태의 심각성에 비해 고발과 처벌이 쉽지 않다는 맹점을 갖게 되고, 논문 대필의 관습화에 한몫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적 재산뿐만 아니라 지적 활동의 산물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런 그들이 학문의 권위에 관해 운운하고 있는 우스운 꼴을 상상하면 결국 또 맘속엔 씁쓸함만이 남는다.

가까운 곳에서 본 학문 세계의 이면은 사제 간 관계의 거창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종노릇을 하면서도 웃는 얼굴을 하는 사람도 많고, 자존감을 싸잡아 버린 듯한 아부의 기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일로 바쁜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무너진 학문 사회를 탓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훗날 교수직을 맡아 이 악행의 고리를 잇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유별나지 않다. 이러한 학문 사회의 불순한 배경이 논문 집필의 의미를 무색하게 하고 표절을 넘어 대필이라는 악업을 낳게 하는 조건을 마련해준 것이다.

논문 작성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학자의 길로 입문하는 순간부터 지극히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의식을 갖는 것, 그 의식으로 주어진 학문을 대하는 자세가 변화의 시작점일 것이다. 논문의 존엄한 가치를 보호하고 훼손하지 않는 것이 연구자의 참된 의무가 아닐까 깊이 생각해보며 책임감을 느낀다. 진정으로 대학이 지(知), 정(情), 의(意)를 모두 갖춘 전인적인 학인들의 장이 되길 희망한다.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