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사설] 을에게

갑의 문장은 짧다. 짧아도 충분하다. 주목을 끌거나 예의 를 차리는 문장은 있으면 좋지만 굳이 필요 없다. 본론만 말하고 근거는 생략된다.

⊠ 오해가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규정 확인이 필요한 부분일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내가 한 항의에 답장 문자를 받았다. 문자에 파르 르 분노해 갑의 언어를 규탄하고 싶었다. 오해가 아니라고. 내가 맞다고.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라고 장문의 답장을 적었다가 곧 지웠다. 구구절절 적는 것 자체가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깨달았다. 나는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을이 된 느 낌’에 분노했다.

분노를 직시하고 나니 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한 택배기사님의 ‘고객님, 택배를 1층에 둡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는 문자에 친절한 택배기사라고 평가하고,  ‘1층 택배’라고만 보내던 이전 택배기사님과 비교하던 나의 소소한 갑질을 반성했다. 반성은 을의 언어와 맥을 같이 한다. 내가 당한 갑질이 아니꼬워서 시작한 글마저도 나에 대한 반성으로 점철 됐다. 친교적이고, 주변적인 을의 언어는 내 속에 내재화되어 있었다. 진짜 ‘을’인 모습에 이번에는 슬퍼졌다.

혹자는 갑과 을의 위치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 속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위치가 있음을 우 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알고 있다면 적어도 “갑과 말하지 않 으면 된다”고 속 편히 말해서는 안 된다. 을은 갑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 수 밖에 없고, 구구절절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을의 언어의 슬픔은 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만만한 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또 다른 갑의 언어일 뿐이다.

우리를 대학원생으로 치환한다면, 대학원생은 갑의 언어 를 쓰는가, 을의 언어를 쓰는가? 대학원생은 때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갑인지 을인지 명확하지 않은 순간도 있지만, 입을 떼는 순간 확신할 수 있다. 내 안에 을을 누르고 갑의 언어를 이어가본다. 갑이자 을인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 갑이여.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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