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문화비평: 징검다리로서의 인문학] 피카소와 인문학

1. ‘황소머리’

1978년 경희대학에 입학했던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원형 도서관이었다. 거기서 책을 읽노라면 정말 대학생이 된 듯했다. 무시로 드나들었다. 서가에 비치된 화집들을 뒤적이다가 파블로 피카소의 <황소머리>(1943)라는 오브제 작품도 거기서 만났다. 농촌에서 성장한 나로선 금방 작품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었다. 이것은 소의 대가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고 난해한 화가로 알았던 피카소의 작품 이름을 곧바로 알아 맞혔으니 으쓱하는 느낌도 들었다. 한국의 시골 출신 대학생과 저 먼 스페인 출신 유명작가가 번역 없이 서로 통했다는 감회에 흐뭇했다.

우쭐거리는 마음이 놀라움으로 바뀐 것은 작품의 소재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자전거로 통학을 했던 터라 이 또한 금방 알아맞힐 수 있었다. 위로 솟은 쇠뿔은 자전거 핸들이요, 소 대가리는 자전거 안장에서 가져와 짜 맞춘 것임을. 낡은 자전거 안장과 핸들이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니! 내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인 자전거가 전혀 색다르게 황소로 변모하여 ‘작품’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피카소의 팬이 되었다. 그와 관련된 서적이나 전기물, 비평문과 작품해설도 신경 써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근 30년이 흐른 뒤 다음 글을 접하면서 ‘황소머리’라는 작품이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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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보고 있지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보지만 말고, 생각하라!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어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아라! 눈이 아니고 마음으로 읽어라!”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에서)

피카소는 창작을 눈의 문제로 압축하고 있다. 우리더러 ‘보고 있지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그저 보는 것일 뿐’이라며 힐난한다. 거죽을 훑는 육안으로 사물을 보는 습관을 벗어나라고, 관습적인 시각을 벗어나라고 권하고 있다. 즉 ‘사물의 표면 배후에 숨어있는 놀라운 속성’을 생각하며 마음으로 찾아내라는 것.

자전거의 ‘표면적인 것’은 무엇인가. 서양 사람들이 바이-시클(bi-cycle)이라고 이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 ‘두-바퀴’가 저 물건의 표면이다. 또 아시아 사람들은 저것을 자전거(自轉車)라고 번역하였으니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가 그 표면이다. 즉 ‘두 바퀴로 이뤄진 수레’가 사람들이 보는 자전거의 표상이다. 그런데 피카소는 저 자전거를 표면으로만 보지 않고 ‘그 배후에 숨어있는 놀라운 속성’을 생각하였다. 그 결과 자전거의 주변부에 불과한 핸들과 안장을 ‘찾아냈다.’ 즉 ‘그저 눈이 아니고 마음으로 읽어’ 낯익은 자전거 속에서 낯선 소 대가리를 발견한 것이다. 핸들은 소의 뿔로, 안장은 소의 얼굴로 삼아 용접(융합)한 것이 작품이 되었다. 황소머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특성을 발견하는‘마음의 눈’ 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작품이 창작된 해가 1943년이다. 이때는 2차 대전이 한창일 즈음이다. 그의 조국 스페인은 프랑코 왕당파와 공화군 간의 치열한 내전으로 산하가 갈기갈기 찢기고 사람들은 살상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고국에 대한 사랑과 전쟁에 대한 분노를 화폭에 담은 대작이 <게르니카>(1937)인데, 그 속에도 황소가 울부짖고 있다. (스페인은 알다시피 투우의 나라! 황소는 스페인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다.) 피카소는 전쟁의 와중에 타국 땅 프랑스에서 우울 하고 통분한 마음으로 살고 있던 터였는데, 문득 아파트 주변에 널부러진 낡은 자전거 속에 서 조국의 상징인 소를 발견한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것이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마음’이 육안에 비치는 자전거를 해체하고, 그 기능적 중심부인 두 바퀴를 건너뛰어, 주변부에 불과한 핸들과 안장을 재발견하고 융합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심상(心象)인 황소머리를 창작한 것이렷다.

2. 갑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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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다시금 인용문,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어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아라! 눈이 아 니고 마음으로 읽어라!”를 살펴보면 자전거 속에서 황소 대가리를 발견하고 창작해낸 그 기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놀라운, 일은 아닌가? 아무리 ‘마음으로 읽어낸다’지만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만으로 과연 자전거 속에서 황소머리를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자전거와 황소머리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가? 이런 의문은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라면, 천재는 따로 존재하는 것인가? 범인들은 고작 관객에 머물면서 작품에 탄복과 찬탄만 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피카소의 다음 언급을 만나면서 의문의 실마리가 풀렸다.

“내가 중국인으로 태어났더라면 화가가 아닌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림을  ‘쓰고’싶다.”

이 발언은 피카소가 상형문자인 한자(漢字)의 회화성에 매료되었다는 표지다. 여기 끝마디 “그림을 쓰고 싶다”는 기묘한 말은, 본시 ‘그림문자’인 한자를 배열하여 스토리를 구성하는 문학가가 되련다는 뜻이다. 즉 중국에서 태어났더라면 한문을 쓰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었으리라는 것. 이 발언은 당시 유럽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신발견 문물인 갑골문자에 피카소가 심취했던 배경을 깔고 있다.

갑골문은 옛날부터 알려진 문자가 아니다. 1899년, 그러니까 20세기에 접어들기 직전 중 국의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것이다. 수천 년 전 거북이 배딱지에 새겨진 상형 고문자가 현대에 와서 빛을 본 것이다. 그 영인본들이 1900년대 유럽을 위시한 전 세계 박물관에 회람 되었고 고대사 연구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터였다. 파리에 체류하던 피카소는 당시 문명사적 사건이었던 이 갑골문들을 접했다. 그렇기에 “중국인으로 태어났더라면 화가가 아 닌 작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찬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갑골문사전>을 통해 소를 살펴보자. 옆의 그림이 소를 뜻하는 우(牛)자의 글꼴이다. 소의 전체 몸통이 아니라 대가리 부분만으로 소를 상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자와 피카소의 작품 ‘황소머리’와 유사성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과장 되게 묘사된 소뿔이 그렇고, 간략하게 요약된 얼굴 부분은 더욱 근사하 다. 즉 머리통만으로 소를 상징한다는 구성적 차원에서부터 과장된 소뿔의 묘사와 간략한 두상 처리는 동질적인 상상력의 소산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지금 피카소가 갑골문을 베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 창의력은 난데없이 꿈꾸는 백일몽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할 따름이다. 모든 창작에는 징검다리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 “태양이 처음 떠오른 이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서양속담이 이 대목에 적절하리라. 피카소가 제 아무리 천재라고 한들, 조국사랑=스페인=투우=황소머리라는 식의 단순 연쇄로는 자전 거에서 황소머리를 뽑아내는 데 한계(혹은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 한계, 또는 빈 징검다리 를 메우기로는 갑골문자 속의 소 형상만한 것이 없다. 그 스스로 찬탄한 한자에 대한 언급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위대한 화가의 상상력에 고문자 연구, 즉 인문학이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 컸음을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해체하고 융합하는 창작의 과정에 인문학적 사유가, 혹은 고전적 지식이 긴요하다는 사실을 지금 ‘보았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비실용적인 공부가 아니라 창의와 융합의 필수적인 공부임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공부란 무엇인가? 낯익은 사물들 속에서 낯선 사건을 발견하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대학원은 무엇하는 곳인가? 낯익은 것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곳이다. 의심하고 질문하기를 한 세월 하다보면, 면과 면 사이에 혹은 허공중에 숨어있는 길이 보이는 수가 있다. 사람들은 숨어있던 그 길을 도(道)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배병삼 / 영산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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