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술 2 |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인문학술 2 |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식민지 근대화론의 일제강점기 재인식

— 필자

이준식 /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본문

 

 

▲ 미쯔비시 백화점(현 충무로 1가 신세계 백화점). ⓒkcm.kr

 

식민지 근대화론의 등장 배경

 

내 재적 발전론은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외부로부터의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1980년대 말부터 경제학계 일부에서 제기된 식민지 근대화론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이룬 경제 발전, 그리고 1987년 이후 민주화의 진전에 1980년대 이후 냉전 체제의 붕괴와 그에 뒤이은 동구 사회주의권의 쇠퇴가 겹쳐지면서 한국사는 물론이고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는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포함되었다. 식민사학의 극복을 내걸고 내재적 발전론이 등장했듯이 이번에는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하는 새로운 경향이 등장한 것이다. 거기에 앞장선 것은 경제사학계의 안병직, 이영훈 등이었다.

 

안 병직 등의 문제의식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거둔 경제발전과 그에 대비되는 북한의 경제난에 비추어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은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영원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평가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사례의 역사적 기원을 일제강점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일제강점기가 없었으면 한국의 경제발전은 불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과는 달리 일제에 의한 수탈을 강조하는 기존의 한국사 인식에 ‘수탈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탈과 발전’, ‘ 식민지 공업화’등의 새로운 틀로 일제강점기를 설명하겠다고 나섰다. 이것이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한국 경제성장의 역사적 기원 찾기

 

애 초에 식민지 근대화론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미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었다. 이를테면 미국의 일본사 연구자인 마이어스와 피티는 1984년에 펴낸 『일본 식민 제국: 1895-1945』 서론에서‘수탈과 발전’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한편으로는 수탈적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수탈을 위해 식민지에서 발전을 초래한 측면도 있음을 지적하면서 식민지에서의 수탈과 발전을 동시적으로 파악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왜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에서의 제국주의에 의한 수탈과 발전이라는 것이 1980년대 초반에 문제가 되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자본주의 세계체계 안에서 일본과 구일본 식민지가 거둔 경제적 성공 때문이었다. 1980년대 이후 구미학계의 관심은 동아시아에서의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 집중되었다. 한국 등이 후발자본주의 국가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빠른 속도로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 경험에 주목한 것이다. 마이어스와 피티가 제시한 ‘수탈과 발전’이라는 틀에 대해 일본의 경제사학자들도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보기가 한때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따르던 나카무라(中村哲)이다. 나카무라도 동아시아의 몇몇 나라가 거둔 자본주의 발전의 성공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중진자본주의론을 들고 나왔고 그러면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친 일본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경험에 주목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 경제사학자들이 미국과 일본의 동향에 즉각 반응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인 셈이다.

 

식 민지 근대화론의 핵심은 일제가 조선을 억압하고 착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물적, 인적 자원을 개발하기도 했으며 이것이 한국사회가 해방 이후 경제발전을 이루는 주요 요인이었다고 보는 데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국 근현대사를 ‘침략과 저항’이 아니라‘수탈과 발전’그 가운데서도 특히 발전을 통해 파악하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따르면 현재 한국사회의 발전은 조선 후기 이래의 내재적 변화가 아니라 일제 식민지 지배가 낳은 근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고 민족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 민족 운동이 결과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 아무런 이바지를 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운동사’적 관점에서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여기서 당연히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생각하는 사회발전 또는 근대화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근거는 주로 물질적, 경제적, 기술적 측면에서의 변화에 집중되고 있다. 단순화시키자면 ‘경제성장=근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식민지가 결여된 식민지 근대화론

 

내 재적 발전론의 핵심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비판하듯이 자본주의 맹아의 존재를 밝히고 그러한 맹아의 변형을 낳은 일제의 수탈과 착취의 구체적인 양상을 논증하는 따위가 아니다. 이제 내재적 발전론도 더 이상 자본주의 맹아에 집착하지 않는다. 수탈을 이야기하더라도 일제강점기에 여러 측면에서 근대적 양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여전히 자본주의 맹아라든가 식민지 근대화의 사실관계를 쟁점으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사실 내재적 발전론이 우리에게 전해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근대 이외의 또 다른 근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재적 발전론 안에는 ‘근대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발상이 담겨 있다. 내재적 발전론이 나오기 전까지 근대에 대한 모든 논의는 서구 근대를 근대의 유일한 전범으로 전제했다. 내재적 발전론은 바로 그러한 서구 중심적 보편주의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었다. 물론 내재적 발전론이 과연 그러한 도전의식에 합당한 성과를 내놓았느냐는 데는 비판의 여지가 많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맹아론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 내재적 발전론도 자생적 근대화의 모델을 서구 근대에서 빌려왔기 때문이다.

 

그 러나 내재적 발전론이 심화되면서 서구 근대와는 다른 근대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민중이 주체가 된 저항운동이나 사회주의를 비롯한 비(非)자본주의적 근대기획에 대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시도의 한 표현이었다. 공산주의라는 말도 굳이 사회주의로 써야 하는 상황에서 내재적 발전론이 자본주의 근대 이외의 다른 근대 곧 ‘복수(複數)의 근대’를 분명히 주장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재적 발전론을 바탕으로 한 여러 글이 곳곳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은 내재적 발전론의 성과나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회피했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말하는 ‘근대’란 언제나 서구 근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내재적 발전론의 합리적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본주의 성공에 도취한 서구나 일본의 일부 학자들이 실험적으로 내놓은 최신 이론을 한국의 근대에 무반성적으로 적용하는 데 급급했다. 서구중심의 단선론적 역사인식은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하고 등장한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더 두드러진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식 민지 근대화론에서 말하는 수탈도 있었고 발전도 있었다는 식의 논리는 쟁점에 대한 절충주의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내재적 발전론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수탈의 구조화’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 식민지 지배의 죄악상과 수탈상만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수탈론’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정작 내재적 발전론 안에서는 1980년대 이후 원시적 수탈보다는 구조적 수탈과 지배를 강조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각종 통계자료와 수치를 앞세워 ‘식민권력은 공장도 짓고 철도도 놓았고 항만도 건설했다, 식민지 시대 동안 생산력이 발전했고 수출이 늘었고 소득도 올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통계가 과연 당대의 역사상을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경제사학계 안에서도 논란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통계자료를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설사 통계자료의 왜곡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제가 만든 통계자료가 정말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이 점에서 통계적 방법과 수치를 내세운 식민지 근대화론의 현란한 수사는 우리가 왜 일제강점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핵심 논점으로부터 사실상 벗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1920 년대 초에 염상섭은 『만세전』이라는 소설에서 이층집도 늘고 양옥도 생기면서 “시가가 나날이 번창하여 가는”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민중은 오히려 집문서마저 식산은행에 뺏기고 만주로 쫓겨 가는 근대화의 역설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염상섭은 “누구의 이층이요 누구를 위한 위생이냐”고 반문했다.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이기영은 <서화>라는 소설에서 “세상은 점점 개명을 한다는데 사람 살기는 해마다 더 곤란하니 웬일인가”라고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훨씬 더 근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살림살이가 더욱 힘들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식민지 근대에 대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근대화의 주체와 수혜자에 대한 통찰을 결여한 학문이란 삶에서 괴리된 지적 유희이자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을 호도하는 이념일 뿐이다.

 

— 담당자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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