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호 문화비평: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제발 조 발표와 괄호 넣기를 버려라

※본 지면은 자유 주제 청탁 지면으로 본보의 방향성 및 기획 의도와 다를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극복하려는 다수가 없는 위기

인문학의 위기는 어느새 낡은 개념이 되었다. 필자가 학부생이었던 1990년대 후반에도 대학 안팎에서 인문학이 위기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인문학은 여전히 위기라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정부주도의 지원정책밖에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인문학을 전공한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사회로 나갔지만 이들이 인문학의 고사를 막겠다고 발벗고 함께 나서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인문학 교육이 살려야 할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경험으로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필자 역시 졸업을 위해 수강했던 수십 개의 과목들 중 영혼을 뒤흔들었던 강의를 기억하지 못한다. 교수나 강사가 교재 내용을 그대로 가르치거나 조 발표로 채워지는 수업들이 대부분이었다. 평가시험은 으레 괄호 넣기나 답이 정해진 단답형 서술형 문항들로 이뤄졌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인문학 과목들은 수능 암기과목들과 다를 바가 거의 없었다. 시험 때면 단편적인 지식을 달달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열심히 외우면 좋은 학점을 받았다. 필자가 다녔던 연세대학교의 국문학과와 영문학과는 오랜 전통과 학문적 업적을 자랑하였지만, 재학중 영혼을 살찌우는 인문학 교육을 받은 기억은 흐릿하다.

ⓒ 캠퍼스 잡앤조이, [조별과제 잔혹사] “잠수탄 발표자에 스케줄 만들기 장인까지”

ⓒ 캠퍼스 잡앤조이, [조별과제 잔혹사] “잠수탄 발표자에 스케줄 만들기 장인까지”

조 발표와 괄호 넣기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

그래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후 교수가 되어 강단에 섰을 때 필자는 세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수업에서 절대 조 발표를 시키지 않고 양질의 강의만을 제공한다. 둘째, 평가시험은 단순암기가 불필요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로 대체한다. 셋째, 변화하는 현실의 문제들의 설명과 이해를 돕는 다양한 내용들을 강의에 포함시킨다. 전임교수가 되기 전까지 3년 동안 연세대, 홍익대, 서강대, 고려대, 서울대, 숙명여대, 한국외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인문학 과목들을 가르치며 단 한 수업에서도 조 발표와 괄호 넣기 시험을 시행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깊이 있는 배움이 전혀 없는 발표와 지겹기만 한 암기가 없고 대신 수업에서 다루는 인문학적 주제들을 여러 관점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반응들 일색이었다. 또한, 학생들은 서양 근대철학이 정의하는 인간성 개념보다 최신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제시하는 인간성에 관한 탈근대적인 이론들에 더욱 매료되었다. 학생들의 분기어린 증언에 따르면 필자가 학부를 졸업한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대학에서의 인문학 교육은 변화된 바가 거의 없었다. 왜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수준의 지식으로 도배된 조 발표들을 듣고 그 내용을 암기해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밀턴이묘사한 사탄이 탄 구름의 색깔을, 리어왕의 둘째 딸의 이름의 철자를 외우는 동안 내가 이러려고 영문학을 전공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단답식 한 문제를 틀려서 더 낮은 학점을 받아야 했다는 학생들은 부지기수였다. 그러면서도 교수를 탓하기보다 암기를 완벽하게 못했다고 자책하는 학생들이었다.

4차 산업혁명과 교육의 미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AI가 인간의 지식활동과 노동력을 대체할 가까운 미래에서 “수학·과학·중세전쟁사 등 개별 과목을 가르치는 건 의미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AI와 더불어 30~40대를 살게 될 지금의 10대는 어떻게 하나.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건가는 더 미룰 수 없는 문제다.”라고 강조한다. 하라리의 문제의식은 이미 도래한 4차 산업혁명이 이끄는 변화들이 촉발한 것이다. 각국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개최하는 2016 다보스 포럼의 핵심 논의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고 일하고 있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라고 역설하였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이 가져올 변화들의 핵심이 인간, 자연, 기계 간의 구분과 경계가 없어지고 모든 지식과 기술이 인간의 학습과 무관하게 연결되는 사회로의 진화가 촉진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지적한다. 이렇듯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존재의 주체성, 인간과 사회의 관계 및 사회 시스템의 작동 방식은 대폭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 확실하지만 현재 대학에서 제공하는 인문학 교육은 여전히 지식암기 수준을 못 벗어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2020년까지 700만 개의 직업이 소멸하고 200만 개의 새로운 직업이 탄생할 것이며, 앞으로 전 세계 7세 이하 어린이 중 65%는 지금은 없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주입식 지식습득 중심의 교육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세상을 변화시킬 미래에서는 아무런 효용성을 갖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지식의 암기뿐만 아니라 암기하는 지식도 대부분 쓸모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변화들은 자율성, 개별성, 주체성 및 사회적 협의와 공동체의 정의 등 근대적 개념들에 기반하여 의심 없이 믿었던 인간성, 인간관계, 가치관, 공존의 원칙, 자유와 평등의 원리, 사회 통념과 관습, 정치적 권리와 의무, 노동의 역할과 기능, 인종·성·계급의 구분, 시간과 공간의 의미의 이해와 실천의 방식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인문학의 기본 개념들과 전제들 및 그에 기반한 인문학 교육의 내용과 형식은 고루한 구습이 될 것이다.

고전은 ‘꼭’ 읽어야 하는가?

원로 영문학자인 도정일은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아무리 사회가 달라져도, 인간에게는 바뀌지 않는 경험의 조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언제 어디서 살든 유한성의 경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죽는 존재입니다. 한계가 많습니다. 무한히 살 수도 없고, 능력이 무한할 수도 없습니다. … 고전은 인간의 경험이 종속되었던 이런 근본적인 조건들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 반응은 시대에 속박되지 않아요. 시간적 거리와 상관없이 여전히 우리 가슴을 칩니다.” 도정일의 전제는 사회의 그 어떤 급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경험의 조건은 불변이라는 것이다. 급변하는 기술환경과 사회관계를 상기시키면서도 그는 죽음에 관한 인문학적 사유와 고찰은 변함없다고 믿는다. 이러한 맹신은 로봇공학, 보철공학기술, 나노공학, 신경과학과 유전공학, 트랜스/포스트 휴머니즘, 양자역학 등이 맞물린 새로운 인식과 경험의 시공에서 죽음의 유한성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리라는 전망을 간과한 낡은 고집에 불과하다. 바이오나노 기술계의 전망에 따르면 유전공학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각종 질병을 예방하게 되면 약 2천여 종의 질병이 사라질 것이며, 바이오나노기술에 의해 세포 복제기술과 노화방지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미래에서는 수명이 천 살까지도 연장될 수 있다고 한다. 사실상 생물학적 노화가 사라지면 생물학적 나이는 원하는 대로 리셋될 것이다. 이처럼 수명의 생물학적 한계가 극복되고 죽음과 삶의 의미관계가 재정립되며 그와 함께 개인적, 사회적 삶의 관계들과 의미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다면 생로병사에 관한 기존의 인문학적 정의와 성찰은 전면적으로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인간에게는 바뀌지 않는 경험의 조건들”이 있고 따라서 인문학 고전을 배워야 한다고 고집부릴 수 있겠는가?

미래를 향한 인문학 교육의 시작

과거와 현재의 인문학 교육의 형식과 내용에 관한 학생들의 공통된 날선 비판은 왜 이런 내용을 이런 방식으로 배워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요구한다. 진심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고 그 극복을 갈망한다면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수업에서 조발표와 괄호 넣기를 포기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럼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하라는 거냐”라고 반문하는 교수들에게 미리 답하고 싶다. 그 질문은 애초부터 교수의 고민이었어야 한다고. 그리고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지에 관한 고민은 교수가 살아왔던 과거가 아닌,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를 향해야 한다고.

한 광 택 / 충북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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