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호 사설] 먹고사니?즘

한 번 듣고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먹고사니즘’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신조어는 아니었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먹고 사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 혹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됐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먹고사니즘에 빠졌다”는 말은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 어감과 사용이 ‘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먹고사니즘’이란 신조어의 발생은 바로 먹고 살기‘만’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며, 그렇게 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이다.

 

지난 8월, 우리는 치열하게 쟁취한 먹고 사는 일에 이른바 뒤통수를 맞았다. 대체 불가능한 완전식품이라 우리를 현혹하던 계란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생리대에서는 발암 물질이 발견됐다. 먹는 것, 사는(買) 것이 우리의 삶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었다. N포 세대라 불리며 먹고사니즘에까지 시달리던 우리에게 가혹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여성들은 해외 사이트에서 생리컵을 직접 구매하거나, 면 생리대를 사용하는 등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을 찾고 있다. 언론은 화학품을 기피하는 이러한 움직임에 ‘케미컬 포비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실제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보다 분노에 가깝다. 생리대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까지 여성들은 생리혈이 줄어들고, 생리 주기가 짧아지는 것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사는(生)’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개인의 책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먹고사니즘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있었다. 여성들은 이제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않는, 그리고 잘못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한국 사회에 분노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먹고사니즘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 눈 감아버린 안정성이라는 가치가 삶을 위협하고 있다. 공영방송 MBC·KBS 기자 및 구성원들은 경영진 사퇴와 제작 자율성 보장을 요구하며 매주 금요일마다 ‘돌마고’집회를 열고 있다. 그들이 내건 가치는 ‘공정 보도’다. ‘공정성’과 ‘먹고사니즘’의 거리는 딱 이상과 현실만큼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찾고자 하는 가치는, 먹고 살기라는 현실과 더없이 밀접하다. 우리는 그것을 겪지 않아도 될 일을 통해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이상을 응원한다.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