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호 특강취재: 한양대학교·성동문화재단, <시민대학, 인문학에서 길을 찾다>] 행복한 Win-Win 뒤에 가려진 진실

▲서신혜 강연자가 충신, 효자, 열녀가 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신혜 강연자가 충신, 효자, 열녀가 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양대학교는 인문학 진흥을 목적으로 교육부에서 추진한 ‘인문역량 강화사업(CORE사업)’대상 학교로 선발되어, 성동문화재단과 함께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 <시민대학, 인문학에서 길을 찾다>를 개최한다. 본 강연은 8월 3일부터 9월 격주 목요일 16시부터 18시까지 한양대학교 인문관 303호에서 진행된다. 총 5개의 특강이 준비되어있으며 앞으로 진행될 강연으로는 9월 14일 ‘문학에서 사랑을 찾다’, 28일 ‘한국인과 한국문화’가 있다. 본보는 지난 8월 3일에 있었던 서신혜(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강연자의 ‘Win-Win 전략이 숨긴 이야기’를 다룬다.

진정한 유교의 나라 만들기

사회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상, 행동, 생활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 즉 이념이 있어야 한다. 고려는 불교를, 조선은 유교를 이념으로 사용했다. 오랫동안 불교 이념에 따라 살던 백성에게 유교적인 생활양식을 강제할 수는 있지만,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백성이 유교를 체득하게 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교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조선은 백성이 유교를 내면화하고 따르도록 유교의 행동규범을 널리 전파하려고 노력했다. 유교의 행동규범은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삼강은 봉건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인간관계의 기준에 관한 것이다. 이는 공자 정통유교의 근본인 오륜 이후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삼강에는 임금과 신하 관계의 도리로 군위신강(君爲臣綱), 어버이와 자식 관계의 도리로 부위자강(父爲子綱), 남편과 아내 관계의 도리로 부위부강(夫爲婦綱)이 있다. 조선은 이 삼강을 지킨 인물에게 사회적 강화로 돈·칭찬·명예·지위 등을 포상함으로써 백성이 삼강오륜을 적극적으로 따르게 하는 정책을 펼쳤다.

조선은 그 정책의 일환으로 당시 가장 전파력이 큰 매체인 책을 발간하는데, 제일 처음발간된 책은 1434년 세종대왕에 의해 편찬된『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이다. 이 책에는 군위신강을 실천한 충신, 부위자강을 따른 효자·효녀·효부, 부위부강에 순응한 열녀의 이야기가 각각 100여 편씩 총 300개 정도 모여 있다. 당시 책은 한문으로 쓰여졌으나 한문으로 책을 구성하는 것은 전체 백성에게 접근성이 낮고 난해하기 때문에 행동규범의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것과 맞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은 백성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으로 책을 구성한다. 각 이야기에 대한 그림을 넣고 본문 끝에 원문을 시구(詩句)로 요약·정리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책을 만든 것이다. 『삼강행실도』이후에도 유교의 기강이 해이해진다 싶으면 조선은『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내놓았다.

모두가 행복한‘Win-Win 전략’

강연자는 주제인 ‘Win-Win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삼강행실도』의 효자·효녀·효부, 그리고 열녀(이하 효자 등)에게 초점을 맞추어 강연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효자 등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위중하신 부모·남편을 위하여 그들의 대변을 맛보는 상분(嘗糞)과 가장 신선한 피가 돌아 아픈 사람을 낫게 한다는 약지를 잘라 바치는 단지(斷指), 마지막으로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먹임으로써 치료하고자 하는 할고(割股)가 있다. 『삼강행실도』에 실린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위 세 조건 중 한 가지 이상을 꼭 실행했었다.

무엇이 사람에게 자기희생적이고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위와 같은 행동들을 가능하게 했을까. 강연자는 그것이 ‘Win-Win 전략’이었다고 답한다. 조선은 개인-마을-국가가 얽힌 이해관계에서 모두가 이득을 보게 하여 유교 행동규범의 사회적 강화를 이끌었다. 개인의 측면에서는 효자 등으로 봉해지면 임금이 쌀이나 돼지고기 두 근 정도의 식물(食物)을 내렸는데 하사품을 받았다는 자체만으로 큰 명예였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효자 등의 지위가 올라가고 아무리 신분이 높은 사람이더라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또한 평생 땅에 부과되는 세금인 조(租)와 부역인 용(庸)을 해당자와 그 가족까지 면제해주는 복호(復戶)와, 표창의 개념으로 국가에서 집 안이나 대문 앞, 마을 앞에 문을 세워주는 정문(旌門)이라는 혜택이 주어졌다. 마을의 측면에서는 효자 등이 배출되면 마을의 등급이 재평가되어 마을 단위로 내야 하는 세금인 조(調)가 줄어들었다. 고을에 부임하는 수령 또한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효자 등이 나오면 다음 발령에 유리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유교가 성공적으로 전파되고 홍보되는 효과에 이득을 보았다.

죽어야만 했던‘향랑’, 열녀 만들기

모두가 다 이기는 이 ‘Win-Win 전략’에서 강연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강연자는 이 느낌을 실제 있었던 인물의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바로 대표적인 열녀 향랑의 이야기이다. 향랑은 숙종 때 경상북도 선산 사람으로 농부의 딸이며 17살에 시집가지만 남편의 폭력에 적응하지 못하고 3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계속되는 계모의 폭력으로 숙부 집에 머무르다 개가 권유를 피해 시댁으로 돌아간다. 향랑을 불쌍하게 여긴 시아버지가 자신의 허락 하에 이혼 후 다시 개가할 것을 권하지만 향랑은 이를 거절한다. 결국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향랑은 죽음을 택한다. 저수지에 몸을 던지러 가는 길에 어린 여자아이를 만나는데, 추후에 여자아이가 수령에게 진술한 것에 따르면 향랑은 ‘산유화’를 부른 후 자살했다고 한다. 이것이 1702년의 사건이다.

위 이야기로는 향랑에게서 열녀의 면모를 전혀 찾을 수 없다. 결혼하기 싫었던 여성이 벼랑 끝으로 내몰려 죽음밖에 택할 수 없었던 슬픈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향랑은 1704년에 선산 수령 조구상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열녀로 봉해진다. 선산은 삼국시대부터 유서 깊고 유명한 마을이었다. 조선 전기 조정의 1/4가 선산 출신이었고, 이중환의『택리지(擇里志)』에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그 반은 선산에 있다’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과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퇴계 이황 이후 안동으로 그 권력이 넘어가게 되어 옛날 영광을 되찾고자 혈안이던 선산 사람들이 마침 향랑의 죽음을 보고 이를 이용할 생각을 한 것이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고려에 충절을 지킨 ‘삼은’중 한 명인 성리학자 야은 길재는 선산 출신이었다. 조구상 등은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야은 길재가 내린 유교의 가르침이 선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조선 전국에 퍼진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미천한 농부의 딸도 야은 길재선생의 ‘충신불사이군 열녀불경이부’라는 가르침을 본받아 용감하게 죽었다는 논리를『열녀향랑도기(烈女香娘圖記)』를 통해 펼쳐냈다. 두 컷으로 된 이 그림에는 여자아이에게 말하는 향랑과 뛰어드는 향랑이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그림에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는 ‘야은 길재 지주중류비’와 그를 모신 서당인 ‘야은서원’이 있다는 것이다.

죽음의 진실, 우리가 할 일은

향랑의 이야기는 대표적으로 ‘Win-Win 전략’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이 이득을 보는데, 세상에 발 디딜 곳 없어 죽은 당사자는 왜곡되어 기억된다. 향랑이 실제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같이 ‘한 사람’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은 모두 왜곡되고, 만들어진 ‘모두의 열녀’로서의 향랑만 남았다. 향랑이 죽기 전에 여자아이에게 불렀다는 산유화의 가사는 이렇다. “하늘은 어찌 그리도 높고도 멀며/ 땅은 어찌 그리도 넓고 아득한가/ 천지가 비록 크다고 하지만/ 이 한 몸 의탁할 곳 없네/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 속에 장사 지냈으면”가사에서 나타나듯이 향랑은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에 등 떠밀려 죽었다. 향랑 이후에 열녀가 되기 위한 조건이 하나 더 생기는데, 바로 죽음이다. 효자 등을 합친 200편 정도의『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여자는 남자의 두 배를 훨씬 넘는다. 누군가 죽어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기보다 가장 약한 자가 몰려 죽은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Win-Win 전략에 숨은 이야기’이다. 이 ‘숨은 이야기’는 현재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 사람이 입을 다물고 희생함으로써 회사 전체가 이익을 본다든지, 권력자의 딸이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실력으로 합격했을 학생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사건 등이 그렇다. 강연자는 이런 부당한 세상에 맞서 ‘봉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지하고 고민하자’고 한다. 모두가 이익을 본다는 논리에 쉽게 속지 말고 그 속에서 누군가 희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하자고 한다. 인지 후에 이런 세상에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할 것인지는 스스로의 기준에 달렸다. 강연자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깊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곽민지 | christin616@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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