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호 책지성: 백종현, 『시대와의 대화, 칸트와 헤겔의 철학』] 시대와 대화하고 뛰어넘기, 칸트와 헤겔

ⓒC o m p o s i t e i m a g e b y G _ m a r i u s ▲칸트(I. Kant)와 헤겔(G.W.F.Hegel)

ⓒC o m p o s i t e i m a g e b y G _ m a r i u s
▲칸트(I. Kant)와 헤겔(G.W.F.Hegel)

고등학교 수준의 철학 지식밖에 없는 나지만 철학은 너무 멀거나 어렵기만 한 지식이 아니다. 나의 기준에 철학은 존재는 하지만 구체적인 언어로 형상을 갖추지 못하던 내 생각의 구현이며 인식의 벽을 깨는 경험이다. 그만큼 내가 느끼는 철학은 나 자신과 현실에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책을 펴내면서’에서 저자가 가장 먼저 철학이 현실에서 갖는 의의를 설명해 반가웠다. 저자는 “철학이 근본학(根本學, Radical science)으로서 그 시대의 자연, 인간, 사회, 문화 등 현실의 전 영역에 걸친 통일 원리를 반성적으로 탐구하는 지적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철학이 추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현실을 비추되 인간에게 본래적인 것을 응축해 추상적인 형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철학자의 반성적 사유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고 시대에 응하는 성격을 가지면서도 후세대들에게 여전히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칸트(I.Kant, 1724~1804)와 헤겔(G.W.F.Hegel, 1770~1831)철학은 독일 계몽주의-이상주의 시대의 철학적 반성으로, 그들의 시대가 던진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하지만 그들의 철학은 때와 곳을 넘어서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말을 건다.

구체적으로 칸트와 헤겔의 사상을 정리하는 본문에 앞서 시대상에 초점을 맞춘‘서설’에서 저자는 그 당시 유럽과 독일의 학계 분위기를 다룬다. 영국은 일찍이 명예혁명(1688)과 산업혁명을 성취해냈으며, 세계경영에 나선 상태였다. 프랑스는 프랑스대혁명(1789),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주활동기:1796~1815)을 통해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반면 독일은 1770년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울타리 안에 35개 이상의 나라로 나뉘어 있었고, 그중 칸트와 헤겔의 나라인 프로이센을 포함해 4개국은 왕국이었으며 산업사회로의 진입도 더디었다. 이 시대 지성계의 주요 흐름은 영국의 감각경험주의와 프랑스의 이성주의로 나뉘었다. 독일 지성계는 두 주류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체계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 결과, 두 갈래이던 것을 하나로 융합하고 보충해 근대철학의 체계를 세운 칸트철학이 탄생했다. 칸트철학은 합리주의 시대의 정점에 서 있다. 합리주의와 낭만주의가 합류하는 지점에는 헤겔로 대표되는 이상주의 철학이 등장하는데 저자는 이 둘을 대비하지 않고 한 묶음으로 살펴봄으로써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칸트철학 개괄 – 합리적인 이성, 비판철학

칸트의 주저는『순수이성비판』(1781·1787),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이다. 위 비판서들은 칸트가 서로 상충하는 이론을 주장한 사상가들을 대화시키고 충돌 지점을 조정하는 변증법적 방식으로 사상을 펼친 결과이다. 이 방식을 통해 칸트의 스스로 생각하는 힘, 즉 ‘철학함’이 결실을 맺는다. 칸트는 ‘계몽이란 타자의 지도 없이는 지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미성숙에서 벗어남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항상 계몽주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며 계몽주의 시대를 ‘모든 것이 비판에 붙여져야 하는 시대’로 인식했다. 따라서 그의 비판철학은 그 자체로 계몽철학이다. 칸트는 이성이 자기 자신부터 비판하는 작업을『순수이성비판』을 통해서 먼저 시작했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자연을인식하는이론적이성기능,『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자연 안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행위 하고자 하는 실천이성의 기능,『 판단력비판』에서는 자연 안에서 자유롭게 행위 하면서도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반성적 판단력의 원리와 활동의 한계를 구명했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모든 관심이 ‘인간은 무엇인가(Was ist der Mensch)’라는 물음에 집중된다고 보았다. 이 물음에 대한 근본적인 답은 이성을 통해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지,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지,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지를 탐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 전체를 조망하고,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인 자연과는 다른 것을 상상하고 추구하고 실현하려고 한다. 물리적으로서의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따라 움직이지만, 의식적이고 의지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자로서의 인간은 제삼자적 위치에서 자연 전체를 인식하며 물리적이고 생리적인 법칙 질서와는 다른 도덕의 질서를 지향한다. 그리고 생리적인 법칙 질서와 이질적인 도덕의 질서를 함께 주재하는 어떤 힘을 가진다. 결국, 칸트의 철학은 ‘인식하는나’, ‘ 행동하는나’, ‘ 희망하는나’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이다. 칸트는 영국의 감각경험론의 관점과 프랑스의 이성주의적 관점을 융합하여 실천하고 자신만의 독자적 체계를 만들어 냈다.

헤겔철학 개괄 – 낭만적인 이상, 변증법

헤겔의 주저는『정신현상학』(1807), 『논리학 I』(1812), 『철학백과개요』(1817), 『법철학요강』(1821) 등이 있다. 헤겔철학의 중심 개념은 변증법(Dialektike episteme)이다. 이는 자기대화의 논리(Dialegesthai)이다. 자기가 자기와 대화를 나누는 사변으로서 자기가 자기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에게서도 사용된 ‘성찰’의 방법인데, 헤겔의 변증법은 철학적 반성의 방법, 사고 전개의 방법이 아니라 존재의, 세계의, 역사의 자기 전개 방식이자 힘이다. 즉, 헤겔은 세계의 근원적인 존재를 정신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자기와 자기의 분열이 지속하는 동안 자기는 합일이라는 목적을 향해 발전한다. 이렇게 만물은 스스로 발전해 가는데 이때 자기 발전을 향해 움직이는 자기가 정신(Geist)이며 정신을 아는 자기가 ‘의식’이다. 자기와 완전한 합일에 이른 정신은 ‘절대자’가 된다.

변증법은 기본적으로 정반합(正反合)의 도식을 갖는다. 정반합은 하나의 주장(정)과 모순되는 주장(반)이 만났을 때 갈등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둘을 종합하는 더 높은 주장(합)이 도출되는 것을 말한다. 헤겔은 이 정반합의 논리로 사물의 변화와 발전까지 설명하는데, 어떤 사물(정)은 자신과 대립하는 것(반)을 산출하고, 이것들이 대립(모순)이 심화할 때 이러한 모순을 극복한 새로운 사물(합)로 변화된다고 논의를 확장한다. 인간의 정신 또한 마찬가지로 주관정신(정)-객관정신(반)-절대정신(합)의 과정으로 발전된다. 주관정신은 개인의 의식이고, 객관정신은 개인의식을 넘어선 집단이 갖는 사회의식, 즉 공통의식이며, 절대정신은 개인의식과 공통의식이 종합되어 발전된 의식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통의식인 객관의식은 법(정)-도덕(반)-인륜(합)으로 발전한다. 법은 객관적 규범이나 타율적이라는 문제점이 있고, 도덕은 자율적인 규범이나 주관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이를 극복한 것이 인륜(윤리적 공동체)이다. 인륜은 가족(정)-시민사회(반)-국가(합)로 발전한다. 가족은 공동의 이익을 중시하기에 개인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나 자유와 권리를 무시한다. 시민사회는 각 개인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기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나 공동체 전체를 위한 의무와 책임을 무시한다. 이를 극복하고 등장한 최고의 인륜인 국가는 의무와 책임을 지우기도 하지만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준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는 국가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헤겔은 주장한다.

 

시대를 뛰어넘어 한국에서 칸트와 헤겔

칸트와 헤겔철학은 한국 사회에 서양철학 사상이 유입된 이래 최대의 연구대상이었다.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15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에서 발간된 서양 철학자에 대한 논저 중 칸트 관련된 것이 1위, 헤겔 관련된 것이 2위를 차지할 정도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서양철학 수용은 칸트철학 연구와 활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한국인이 쓴 최초의 서양철학 관련 글이라고 알려진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의「강씨철학설대략(康氏哲學說大略)」도 칸트에 관한 것이고, 한용운(韓龍雲, 1879~1944)도 불교 교리의 현대적 활용을 모색할 때 칸트철학과의 비교를 통해 불교의 특징을 설명한다. 이처럼 칸트와 헤겔철학은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철학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이 자신과 세상을 설명해내는 방식을 유효하게 제공한다. 철학자가 사는 시·공간에 조응해 태어났으면서도, 인간 사고의 정수를 담아내어 그것을 뛰어넘음로써 인류의 공감을 사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을 통틀어 전하고자 한 칸트와 헤겔철학의 매력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 칸트와 헤겔을 떠올렸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가언명령, 정언명령, 변증법의 정반합이었다. 무조건 암기식으로 맥락 없이 지식을 받아들였었기에 내 지식은 끊어진 진주목걸이처럼 산발적인 진주 알만 있을 뿐, 전혀 연결되지 못했다. 이 책은 흩어지고 방치되어 먼지 쌓인 내 진주 알들에 알알이 광을 내고‘시대’라는 실로 다시 이어 주었다. 칸트와 헤겔이 어떤 시대에서 살았고, 그 시대에 어떻게 응답해 그들의 사상을 펼쳐냈는지 이 책을 통해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대와 칸트·헤겔을 묶어 풀어낸 저자의 책 구성이 ‘철학이 현실에 의의를 둔다’는 저자의 생각을 뒷받침하는데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곽민지 | christin616@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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