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호 테마서평: 의료윤리] 어떤 의사들의 반성

『환자가 된 의사들』(로버트 클리츠먼 저 · 강명신 역, 동녘, 2016)
『신의 호텔』(빅토리아 스위트 저 · 김성훈 역, 와이즈베리, 2014)
『위대한 참견』(히노 오키오 저 · 김윤희 역, 인플루엔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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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안아키’라는 단어가 포털에 오르내리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안아키가 뭔가 했더니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안아키 카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예방접종과 항생제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이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가리킨다. 이들은 현대 의학을 불신하며, 예방접종 및 항생제가 제약회사와 의사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현대 의학을 거부하고 그 대신 택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택한 대안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아이에게 숯가루를 먹이거나 화상 부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면역력을 키워준다면서 수두에 걸린 아이와 멀쩡한 아이를 한데 모아두고 ‘수두 파티’를 연다. 이것은 치료도 아니고 대안도 아니다. 잔인한 아동학대이며 명백한 인권침해다. 다행히 한 시민단체가 안아키 카페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했고 이후 경찰은 안아키 카페 운영자를 수사하겠다고 해 일단락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일련의 소동을 지켜보며 나는 외과 의사로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그동안 환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이 앞섰다. 안아키 카페에 6만여 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고 하던데, 그 정도의 호응이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의사에 대한 불신이 그 만큼 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불신은 뭐라 말을 가져다 붙여도, 결국엔 기존의 의사들이 초래한 업보일 것이다.

물론, 뉴스에 나오는 의사들이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를 치는 것은 아마도 자극적인 내용을 좇을 수밖에 없는 언론의 직업적 천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비행기가 아무 일 없이 이륙했다고 뉴스에 나오지는 않지 않은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비행기가 바다 한가운데 추락했다는 뉴스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분명 의사들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실망하고 있다. 이 나라의 변변치 못한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의사들이 메꿔주지 못한 사람들의 허전함을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그 미안함을 조금은 덜고 싶다.

본고에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모두 의사들이 쓴 책이다. 그렇다고 ‘살 빼는 방법’이나 ‘약 없이 당뇨병 치료하기’와 같은 자기홍보용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해서 기본부터 다시 고민해보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성찰하는 책들이다. 의사의 관점에서 쓰인 책이긴 하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갖고 남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담고 있다.

ⓒ kr.pinter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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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로서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자만심

『환자가 된 의사들』의 저자 로버트 클리츠먼은 정신과 의사다. 그는 9.11 테러로 자신의 여동생을 잃고, 자기 자신이 우울증 환자가 된 일을 계기로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에서 정신과 환자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실들을 깨닫는다. 클리츠먼은 자신의 경험에 더해 70여 명의 다른 ‘환자가 된 의사들’과도 인터뷰를 하며 그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의사들은 병에 걸리기 전에 ‘자신은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갖는다. 남을 치료하는 의사가 병에 걸린다는 것은 창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가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진다. 한편, 환자가 된 의사들은 자신의 치료와 관련해 사사건건 치료에 개입하려고 한다. 그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주치의가 있지만 자신도 의사라는 생각에 치료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자만심 때문이다. 그리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또 다른 단계에 도달한다. 전문가로서 정체성을 잃을지 모른다는 ‘환자가 된 의사들’의 불안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만심과 불안감이 ‘환자가 된 의사들’ 본인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환자가 된 의사들’이 보여준 불안감과 그것을 숨기기 위한 자만심. 과연 그것이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나이를 앞세우고, 지위를 앞세운 이 사회의 자칭 어른들이 보여주는 안하무인적 태도들. 이런 것들도 깊이 파고 내려가 보면 결국 그 밑바닥에 자만심이, 그리고 더 아래에 지위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놓여있지 않을까.

반면 ‘환자가 된 의사들’이 보여준 모습 가운데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다. ‘ 환자가 된 의사들’가운데 일부는 투병생활을 거치며 환자들에 더욱 공감하게 된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자신이 의사로 환자를 치료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왜 그렇게 밖에 못했을까’ 후회하는 의사들도 있다.

‘환자에게 더욱 공감하게 된 의사들의 이야기’가 분량으로는『환자가 된 의사들』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핵심은 짧고 단순한 법이니까.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역할

내과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빅토리아 스위트는『신의 호텔』에서 자본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의료 현실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저자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공공병원 라 구 나 혼 다 (Laguna Honda Hospital and Rehabilitation Center)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의료계에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첫째, 환자를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상황이라도,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다못해 의사가 직접 베개를 바로 세워주거나 이불을 덮어주는 것도 환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의사들이 놓치고 있던 것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의사가 그렇게 하찮은 일을 하나’ 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던 일들이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들이다.

둘째, 환자들이 ‘자신은 돌봄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며, 실제로 돌봄을 받고 있다’는 안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주도적으로 환자를 이끄는 게 환자 입장에서 편할까, 아니면 그냥 묵묵히 환자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게 환자 입장에서 편할까. 의사는 환자의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셋째, 공공병원 폐쇄는 서류상으로만 보면 대단히 효율적이고 비용대비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세상과 서류상의 숫자는 다르다. 서류상에서는 낭비라고 여겨지던 예산들이 사라지면, 실제 세상의 병원과 환자들은 위기를 맞는다. 엑셀 스프레드시트에서 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존재들이 실제 세상의 병원을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 열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한다. 의사들도 요즘 같은 걱정을 한다. 그런데 환자들이 의사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걱정은 아닐까. 왜냐하면 환자들이 인공지능에게 바라는 것과 의사에게 바라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이다.

이것은 비단 의사와 환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당신도 누군가의 기대 덕분에 이 사회에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의 기대를, 사장은 직원의 기대를 받으며 그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기대의 후편에는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는 학생의 마음, 사장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는 직원의 마음, 의사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는 환자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같다. 당신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이들의 두려움을 들여다보고, ‘같은 사람에게서 버림받지 않게 하는 것’이 당신의 책무이다. 이것은 그 어떤 인공지능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할이다.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역할

병리학자이자 의사인 히노 오키오는『위대한 참견』에서 오늘날 의사들에게 ‘관심’과 ‘여유’가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요즘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처리해야 할 업무 대상으로 여기는 모습을 꾸짖는다.

저자는 이러한 시류에 맞서 대담한 실험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시한부 암 선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암철학 외래’다. 저자는 암 환자와 그의 가족과 함께 소파가 놓인 차분한 공간에서 만나 담담하게 이야기를 듣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말을 들려준다. 저자와 환자 사이에는 진료 기록을 남길 컴퓨터도, 청진기도 없다. 그저 대화를 나누며 들 수 있는 차와 약간의 쿠키가 그들 사이에 놓인 것의 전부다. 그는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에 ‘언어 처방전’이라고 이름 붙인 글을 환자에게 전해준다.

‘언어 처방전’에는 무슨 내용이 담길까. 저자는 ‘언어 처방전’에서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으며, 대부분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가족과 함께하기’가 좋은 예다. 반면에, 남이 대신 할 수 있는 것, 예컨대 ‘회식’, ‘ 모임’, ‘ 상사 비위 맞추기’ 같은 것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암 선고를 받고 절망에 빠졌던 많은 환자들은 ‘암철학 외래’에서 삶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해법을 얻고 돌아간다.
저자의 ‘암철학 외래’ 이야기를 들으며,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의사들이 종종 가벼이 여겼던 그 고유의 역할 말이다.

신승건 | 국립중앙의료원 외과 의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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