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호 영화비평: <겟 아웃 Get Out>(2017)] 트럼프 시대에 흑인으로 살아남기?

*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흑인 청년이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교외에서 전화통화를 하며 걷고 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잘못 와서 헤매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상대방에게 투덜댄다. 그의 옆으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다. 무엇인가 위협적인 분위기를 감지하지만 이내 지나가버린다. 그는 안심한다. 그러나 자동차가 멀지 않은 곳에 서고 영화는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창출해 낸다. 그리고 어김없이 무슨 일이 일어난다. 흑인 청년은 일순간 가격을 당하고 맥없이 쓰러진다. 그리고 차가 있는 곳으로 무력하게 질질 끌려간다.

 222-08-01

                                                                                                                                                                            ⓒmovie.naver.com

<초대받지 않은 손님>, 그 후 50년

 

<겟 아웃>은 흑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뒤집으면서 시작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대체로 주인공은 백인이며 그들이 으슥한 뒷골목에서 칼이나 총을 가진 강도를 만나게 된다면 십중팔구 흑인일 것이다. 고전적인 갱스터 영화에서 조직범죄는 마피아 같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에 의해 행해지지만 1970년대를 풍미했던 형사 영화에서 골목을 배회하며 껄렁대는 좀도둑이나 양아치들은 어김없이 흑인이었다. 영화 속 이탈리아계 마피아가 아메리칸드림의 왜곡된 형상으로 대중들의 우상이 될 때, 부당하게 끌려온 노예들의 후손인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은 영화에서조차 이민자들의 위계질서에서 최하층에 위치한다. 백인뿐 아니라 아시아인인 우리들조차도 한적한 곳에서 흑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두려움의 상당 부분은 영화가 재현해온 그들의 역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겟 아웃>의 남녀 주인공 크리스(다니엘 칼루야)와 로즈(앨리슨 윌리암스)는 흑백 커플이다. 로즈의 집을 방문하기 전 크리스는 로즈가 자신을 흑인이라고 미리 말하지 않은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또한 그는 로즈가 운전하던 중 사슴을 친 로드킬 사고를 겪은 후에,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음에도 신분증을 보자는 경찰의 말에 순순히 응하려 한다. 오히려 별일 아니라는 크리스의 말을 자르고 경찰에 대담하게 저항하는 것은 로즈이다. 백인들에겐 요구되지 않는 것이 흑인들에겐 요구되고, 백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권리가 흑인들에겐 힘겹게 싸워서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시대에도 끊이지 않았던 백인 경찰과 그들에 의해 범죄자로 추정된 흑인 시민들의 갈등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크리스가 로즈의 집에 들어섰을 때 표면상으로 그는 로즈 부모의 환대를 받는다. 적어도 그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아닌 것이다. 정확히 50년 전 <초대받지 않은 손님 Guess Who’s Coming to Dinner>(1967)에서 전후 할리우드의 가장 위대한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연기하는 존은 백인 아가씨 조이와의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이고 전처와 아이를 사고로 잃은 홀아비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결혼 전적이 아니라 그가 흑인이라는 것이다. 평소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딸을 그렇게 교육시켰던 조이의 부모는 정작 딸이 흑인을 결혼상대로 데려오자 당황한다. 성공한 언론인으로서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을 내비쳐 왔던 아버지로서는 더 곤혹스러운 일이다(이러한 설정은 38년 후 <게스 후? Guess Who>(2005)에서 흑인 딸이 데려온 백인 남자친구의 이야기로 코믹하게 뒤집어진다).

50년이 지난 오늘날 <겟 아웃>의 아버지는 오바마야말로 자신이 가장 좋아한 대통령이라며 그가 또 연임할 수 있다면 그를 뽑았을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더 나아가서 크리스에게 “요 맨~”하는 흑인 어투를 흉내 낸다. 세상이 그만큼 바뀐 것일까?

정치적 텍스트로 포장된 영민한 장르영화

 

그런데 정작 크리스에게 적대적인 것은 흑인 하인들이다. 그들은 차를 따를 때 넘치도록 따르거나 캄캄한 밤에 이유 없이 저 멀리서 크리스에게 돌진했다가 어이없게도 그냥 스쳐 지나간다. 또한, 크리스의 휴대전화 충전기를 허락 없이 건드리고도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런데 그들의 태도가 이상하다. 남자 하인이 예쁜 로즈랑 사귀니 좋겠다며 비아냥조로 크리스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면 여자 하인은 크리스를 기분 나쁠 만큼 빤히 쳐다보거나 하는 식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들이 하인으로 있는 백인 주인집에 분수도 모르고 손님, 혹은 미래의 사위가 될 수도 있는 동족(?) 남자에 대한 질투 섞인 적대감처럼 보인다. 서부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고: 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2012)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흑인 노예들은 말쑥한 옷차림에 말을 타고 다니는 흑인 총잡이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었다. 평생 노예로만 살아온 사람들의 노예 의식(‘나와 다를 바 없는 깜둥이 주제에 감히…’). 그런데 <겟 아웃>의 하인들은 그보다는 덜 직접적이고 더 교묘하다. 그들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걸까?

여기에 로즈의 부모가 갖고 있는 특이한 능력이 더해진다. 신경외과 의사인 아버지는 차치하고라도 어머니는 탁월한 최면술 능력을 갖고 있다. 크리스는 거기에 말 그대로 걸려든다. 그가 열한 살 때 어머니는 뺑소니로 돌아가셨고 어렸던 그는 어머니가 죽는 그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겨졌다. 이 집안의 파티는 더 이상하다. 파티에 온 이들은 거의 백인인데 겉으로는 크리스를 환대한다. 그런데 그것이 왠지 위선적으로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강박이라고 할 정도로 가식적이다. 심지어 한 일본계 미국인은“현대 미국 사회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같잖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점에서 이런 설정들은 인종 차별, 소수 민족 차별을 노골화하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대한 비판적 서브텍스트처럼 읽힐 수도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결국 이런 ‘위선적인’정치적 올바름과 교양만을 추구한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에 환멸을 느낀 백인 하층계급의 반란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3분의 2지점까지 이렇듯 영화는 작은 의문들을 포개놓으면서 전개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 배우 출신의 흑인 감독 조던 필레의 첫 번째 연출작이라는 데서 더욱 그러하다. 장르적으로 미스터리의 형식을 취하면서 상당 부분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관습에 기대고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가 로즈의 집 앞에서 부모님의 환대를 받는 모습이 카메라의 트랙아웃으로 빠지면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남자 하인의 뒷모습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깔리는 불길한 사운드는 공포영화의 흔한 시각적 관습이다. 그러나 <겟 아웃>이 그저 그런 공포영화와 다른 점은 이러한 장르적 클리셰들을 너무 남발하지 않는 것에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텐데, 뒤로 갈수록 장르적 관습에 의존하고 있어서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뉠 것 같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두 가지 실마리가 영화의 반전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하나는 로즈의 이전 남자친구들이 모두 하나같이 강건한 흑인들이었다는 것이다. 크리스는 창고에 있는 사진들 속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또 하나는 파티에 온 유일한 흑인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가격을 당해 질질 끌려갔던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장르 영화를 가장한, 동시대 미국 사회의 인종 갈등에 대한 진지한 (서브)텍스트로서 <겟 아웃>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반전이 공포영화의 흔한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관습은 근래 할리우드 장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기발하고 도발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겟 아웃>은 매우 영민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정영권 /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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