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호 인터뷰: 조성현 수어통역사, 아름다운 손짓의 향연]

지난 5월, 장밋빛 대선을 앞두고 유세를 이어가는 후보들보다도 더 바쁜 스케줄을 감행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모든 음성 정보를 농인들에게 전달해주는 조성현 수어 통역사이다. 제15대 대선부터 토론 수어 통역을 맡아온 조성현 수어 통역사는 제19대 대선 토론에서‘1인 5역’통역을 하며 대중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 11일,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관에서 조성현 수어 통역사를 만나 수어 통역사로서의 삶과 행보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222-1-1 인트로사진

입말과 손말의 멋진 세계를 경험하다

Q. 선생님께서는‘화학공학’을 전공하셨는데, 전공과는 거리가 먼 수어 통역사를 직업으로 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에는 청각장애인 친구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수어를 배웠어요. 3개월 교육과정이었는데 그마저도 출석을 잘 못했죠.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농인들과 어울리면서 배운 게 가장 큰 공부가 됐어요. 수어 역시 언어이기 때문에 원어민에게 직접 배우니 실력 향상 속도가 빨랐죠.

처음부터 수어 통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가 주변 분들을 돕는 걸 보고 자란 영향이 있는지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자원봉사하는 것을 즐겨 했어요. 한 번은 장애인 체전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는데 너무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장애인 친구들을 보고 그곳이 마치 지상 낙원처럼 느껴졌어요. 이후 장애인들과 숙식하며 가족처럼 지냈죠. 처음에는 수어를 잘 못하니까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를 찾아오는 역할을 맡아 했어요. 점점 현장에서 부딪히다 보니 수어 실력이 늘었고,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뒤에서 남몰래 도와주게 되는데 수어 통역이라는 건 앞에서, 단상에서 통역을 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찾아주는 곳이 많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수어 통역사의 길이 정해진 것 같아요.

Q. 꽤 오랜 시간 동안 자원봉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수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에 대한 맹목적인 집중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 축구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다리가 조금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저에게는 그저 멋있고 공 잘 차는 부러운 친구였지요. 제가 자원봉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장애인이라는 대상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그냥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친구였어요. 그런데 자원봉사를 시작하고 알고 보니 그 친구가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던 거예요. 한순간에 멋있는 친구에서 장애인이 돼버린 거죠. 그 이후로 자원봉사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단지 나보다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들로 인식한 거죠.

이후 한 5~6년 동안 장애인 체전 기간만 되면 사무실에 옷을 가져다 두고 출퇴근을 할 정도로 자원봉사에 빠져 살았어요. 사실 자원봉사의 개념도 아닌, 즐기면서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렸던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농인인지 청인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재미있게 농인들과 어울려 놀았던 것 같아요.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하지 못했을 거예요.

 

손으로 이어가는 이야기

Q. 약간의 손짓에도 의미가 담겨있는 수어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것 같은데요. 화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통역을 잘못 하셨던 적이 있나요?

뉴스의 경우 앵커가 말을 실수하면 통역사도 똑같이 틀리게 돼요. 농인 입장에서는 음성언어를 듣지 못하니 수어 통역사가 틀린 줄 알게 되죠. 일반적으로 통역사마다 단어 선택이 다를 수는 있지만 우리말을 듣고 통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릴 수가 없어요. 하지만 뉴스의 경우 두괄식으로 소식을 전하지요. 예를 들어‘교통사고가 났습니다’라고 말하고 자세한 설명은 뒤에 나와요. 수어에서 교통사고는 버스와의 충돌, 추돌, 승용차의 충돌 등등 수어 표현이 다 달라요. ‘교통사고가 났습니다’만 듣고 승용차의 충돌로 표현했는데 설명을 듣다 보면 버스와의 충돌일 때는 의도와는 달리 잘못 전달하게 된 거죠.

또한, 동음이의어 같은 경우에도 간혹 실수를 하게 되는데, 예전에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을‘6일째’로 듣고 잘못 통역한적도 있어요. 웃지 못할 에피소드죠. 녹화의 경우엔 정정이 가능하지만, 뉴스의 경우 앵커의 멘트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정정하기가 어려워요.

Q. 손짓으로 대화를 한다는 게 많은 규칙을 필요로 할 것 같습니다. 수어도 일상생활에서 청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처럼 모든 의미와 맥락을 다 전할 수 있나요?

영문법과 한글 문법이 존재하듯 수어도 언어이기에 문법이있어요. 때문에 음성언어를 수어로 통역하는 과정에는 문제가 없지요. 다만 한글 단어 수에 비해 수어의 단어 수는 10분의 1밖에 안되기 때문에 한글 단어에 어울리는 수어 표현을 찾아 전달하는 것이 통역사의 역할인 거죠. 하지만 의성어는 소리를 나타내는 단어이기에 수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번개’라는 단어는 눈으로 보이기에 수어가 있지만, ‘천둥’이라는 단어는 들리지 않는 농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기에 천둥을 설명할 때는 정확한 단어라기보다는‘천둥’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도록 설명하는 거죠.

Q. 그럼 수어는 언어로써 표현의 한계가 전혀 없는 건가요?

굳이 표현이 안되는 것을 꼽자면 개그예요. 개그는 그 언어의 문화이고 언어의 유희인데 글자 그대로 통역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언어의 문화까지 전달하기는 어렵죠. 미국에서 유행하던 스탠딩 개그와 한국의 슬랩스틱 개그를 비교해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언어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웃음 코드는 같을 수가 없어요. 수어도 하나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게 농인들에게도 농문화가 따로 있기 때문이에요. 수어를 가지고 그들만의 웃음 코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죠. 반대로 수어를 모르는 청인들에게 농인들만의 개그를 알려줘도 웃지 못할 거예요.

 

222-1-2 사진

청인과 농인, 그 중간에서의 삶

Q. 선생님께서는 농문화와 청인들의 문화를 다 체험해보신거네요.

그렇죠.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속에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30년 가까이 농인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는데 농인들이 이익을 우선하려는 순간이 오면‘너는 우리 편이 아니야. 넌 들을 수 있는 사람이잖아’라며 선을 그어버려요. 그럴 때마다 나도 청각장애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아요. 대부분의 수어 통역사들은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고, 이걸 이기지 못해 떠난 분들도 많죠. 농세계에서 소수로서의 청인으로 산다는 건 외국에 가서 오래 사는 것과 같은 거예요.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농인과 청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하니까 늘 농인 편에 서 있어야 해요.

Q. 복지관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농인’들이 겪고 있는 비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인간은 ‘사회적’동물이에요.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한 거죠.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빠지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농인이 아닌 다른 장애인들, 예를들어 지체장애인은 휠체어를 밀어준다거나 목욕 봉사를 하고, 시각장애인은 안내를 해준다든지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도움을 주는 건데 농인은 언어의 문제거든요. 이건 복지와 같은 의미로 도와주는 게 아닌 농인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대선의 경우도 선거 때 아무런 정보를 못 받으면 농인들이 제대로 된 투표를 할 수 없게 되죠. 또, 농인들이 투표소에 통역사가 배치되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되는 게 아니라 당연히 배치되어야 마땅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도 관공서와 같은 곳에서 수어 통역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된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 예전보다 사람들이‘수어 통역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 수어 통역과도 생겨나고, 수어교재도 발간하고요.

제가 처음 수어를 배울 때만 해도 수어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수어를 알리기 위해 매주 주말마다 대학로에서 노래를 수화로 표현해 불렀죠. 공연을 처음 시작했을 때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수어를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한두명이었어요. 수어를 제스처라는 개념으로 알고 계시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청각장애인과 통역사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도 청각장애인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또,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구분 못하는 사람도 있고요. 몇 년 활동하다 보니 나중엔 수어를 모르는 사람이 한두 명이 됐죠. 사람들이 수어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서 수어 통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니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Q. 어떻게 보면 저희 세대는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을 먼저 접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굉장히 뚜렷한 세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이 될까요?

예전에는 장애인들을 산 속에 있는 수용시설에 보내 격리했어요. 내 가족이 장애인이어도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는 사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지금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선진국의 경우 전 인구의 30% 이상이 장애인으로 등록될 정도로 다양한 장애영역이 생겨나고, 점점 후천적 장애인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예요. 또한,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 모두가 장애 한두 가지는 경험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요. 우리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어 치매가 오고 귀가 안 들리고, 시력이 저하되는 등 머지않아 장애인이 될 예비 장애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장애인들과 사회 속에서 함께 생활해야 해요.

Q. 이번 대선 토론에서‘1인 5역’을 하며 바쁘게 통역을 하셨지요. 많은 이슈를 받았는데, 통역 방식이 1인 1체제로 바뀔 날이 올까요?

꼭 바뀌게 만들겠습니다. 이번에 이슈가 되는 바람에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하지만 선관위에서는 방송기술상 어렵다는 입장이고, 방송사에서는 예산 책정을 통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하네요. 앞으로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국회나 방송사에서는 통역사를 배치해서 수어 통역을 하고 있지만, 정부나 청와대에는 통역사가 없어요. 농인들의 인권 문제가 되는 거죠. 때문에 제가 속해있는 한국수어통역사협회에서 이번 대선 후보들의 유세 현장에 수어 통역사를 배치했어요. 이렇게 수어 통역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수어 통역사가 함께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Q. 선생님께서는‘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신 분 같습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을 원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뭔가 하나를 정해놓고 끝까지 가려고 하다 보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에요. 일등 뒤통수만 보고 쫓아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 앞에 주어진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지금 하고 있는 게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가보지 않은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더 커질 것 같아요. 또, 뭐든지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기 싫어지거든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직선만이 길이 아니란 걸 말해주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대담·정리: 박현빈 | hbpark@khu.ac.kr

사 진: 지여정 | ceravi@khu.ac.kr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