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호 인문학술: 스트리트 아트의 도발과 저항 정신] 스트리트 아트, 미시 저항과 예술적 창조

스트리트 아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심찬양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한복입은 흑인 소녀를 그려서 화제가 된 것을 알고 있는가?
단순한 낙서와 일탈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생각을 그림이나 문자로 표현하는 거리예술은 하나의 예술 분야가 되었다. 이에 본보에서는 스트리트 아트의 저항과 창조, 자기 주도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림1. 제라르 즐로티카미앙, , 1969년 경, 스프레이, 파리, ⓒ 즐로티카미앙.

그림1. 제라르 즐로티카미앙, <하루살이>, 1969년 경, 스프레이, 파리, ⓒ 즐로티카미앙.

그림2. 블랙 르 하, , 1981, 스텐실, 파리, ⓒ 블랙 르 하.

그림2. 블랙 르 하, <검은 쥐>, 1981, 스텐실, 파리, ⓒ 블랙 르 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도전의 장이 되어왔던 새로움과 예술의 미학적 변형은 역설적으로 전통적인 예술 작품의 미적 코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당대의 문제점을 탐구하며 실천을 모색하고자 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 전략적으로 되풀이 되며 지속되어 왔던 다양한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의연대기를 재추적해 볼 때, 자본주의의 부상은 자본에 관해 가장 비판적인 위치에 있어야 할 예술이 타당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예술 체제의 전복을 흡수하였다. ‘자본’이라는 새로운‘이데올로기’, 예술적 가치의 흡수와 예술 체제의 전복,  ‘충격’과 ‘새로움’이라는 미학의 반복적인 과정을 토대로 형성되어온 현대 예술의 다양한 움직임에서 과연 스트리트 아트 운동은 예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특히 프랑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낙서를 개인적인 감정이나 유희보다 사회의 비평적 도구, 아카데믹한 사유 및 제도권에 저항하기 위해 사용했다. 낙서 행위의 양면성(파괴적이거나 창조적인)을 고려하더라도, 이들의 활동은 낙서를 일종의 전위 예술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잠재력을 지녔다.

 그렇다면, 변방의 문화였던 낙서는 어떻게 현대 미술의한 장르로 확립되었을까? 이 글은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활동에서 보이는 ‘진정한’ 저항의식과 ‘가시적인’ 아방가르드적인 태도, 고급 미술을 위한 작품 혹은 출세욕 등이 복잡하게 얽힌 그물망을 풀어나갈 것이다. 슬픈 사회의 현실을 이론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테오도르 아도르노(T.W. Adorno)는 ‘부정 변증법’으로서 문화적인 일상의 영역까지 탐구하면서 철학의 출발 지점, 철학의 가치, 철학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따라서 이 글은 사회경제적 제약 아래 놓인 도시 공간 속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주체로서 일상의 소소한 실천들을 통해 저항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실천을 통해 어떻게 예술적 창조와 자기 주도성의 영역을 자유롭게 구축해 나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스트리트 아트란 무엇인가?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와 그라피티(graffiti writing)의 관계에 대한 오해와 혼동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 개념에 대해 보다 선명한 설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스트리트 아트와 그라피티는 도시 공간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문화 예술 현상들 중의 하나, 즉 도시 예술(l’art urbain)의 하위 개념이다. 도시 예술은 아방가르드(네오-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활동, 공공미술(조형물, 벽화), 스트리트 아트, 장소-특정적 미술(in-situ), 퍼포먼스, 페스티벌, 미디어 파사드 등을 통칭하며 도시 공간, 거리, 혹은 벽에서 작업하는 예술을 지칭하는 보다 큰 상위 개념이다.
전통적인 그라피티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의 간단한 글이나 그림에서 출발하여 정교한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를 포함한다. 현대 그라피티는 스프레이를 이용해서 작업하는 미국 그라피티를 가리킨다. 태그(tag)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 갱스터들의 표시와는 다르게 특별한 ‘개인적인’ 낙서 형식으로 나타났는데, 표시자의 이름이나 별명 등과 같은 글쓰기의 형태였다. 1973년부터 단순한 태그의 문자들이 점점 복잡해지고 커다란 형태로 변형되는데, 이를 라이팅(writing)이라 한다. ‘태거(tagger)’ 혹은 ‘라이터(writer)’라 불리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10대들이었다. 건물 혹은 지하철의 벽, 차량과 열차 등에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작업물은 의식 없는 행위, 심리적 결함, 내용의 부재, 대중과 소통 없는 공동작업(crew)의 형태로 나타났다. ‘태그 전쟁’이라 부를 정도로 급속하게 그라피티가 팽창하면서 라이터들은 ‘스타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사회적 저항의 구체적인 이념과 내용이 형상화되거나 언어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태그의 반복적 행위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태그가‘사회적 실천’을 실험한다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그라피티는 특정한 예술적인 행위보다는 단지 문화적인 현상이었다. 미국 그라피티는 갤러리들의 상업성,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예술가들의 그라피티에 대한 호기심, 라이터들과 스트리트 아티스트들 사이의 친분 등의 상호작용이 다양한 문화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이 용어에 대한 오해와 혼동을 가중시켰다.
1970년대 다양한 그라피티 문화가 성행했던 미국과 달리, 프랑스는 제라드 즐로티카미앙(G´erard Zlotykamien)과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Ernest Pignon-Ernest)의 활동이 스트리트 아트 운동의 시초이다. 이들은 낙서의 행위를 강조하며, 모든 미학적·예술적 특징을 시도하고 담아냈다(그림1). 이들의 선구적인 활동에 영향을 받은 블랙 르 하(Blekle Rat)는 1981년부터 검은 생쥐를 ‘스텐실’기법으로 사용하면서 이 운동을 좀 더 활동적이고 특별한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그의 ‘쥐’ 이미지는 자유롭고 저항적일 뿐만 아니라, 낙서 행위 주체자의 정체성(Jesuis toujours l`a 나는 항상 거기(그곳)에 존재한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그림2). 그의 뒤를 이어 82년부터 미스 틱(Miss Tic), 제프 에로졸(Jef A´erosol), 제롬 메나제(J´erome Menager),모스코 에 아소시에(Mosko et associ´es), 네모(Nemo), 스피디 그라피토(Speedy Graphito), 믹스믹스(MixMix) 등이 이 노선을 따랐다. 더불어 다니엘 보제스트(Daniel Baugeste)는 버스 및 벽의 광고판을 변형했고, V.L.P.(Vive la Peinture) 그룹은 파리의 벽에 다양한 회화 작업을 하였다. 1980년대 중반, 소르본 대학의 교수였던 드니 리우(Deny Riout)는 이 운동을 학술적으로 정립하면서 ‘스텐실 아트(pochoirart)’ 혹은 ‘그라피티-아트(graffiti-art)’로 명명했다.
그러나 용어 사용의 더욱 큰 걸림돌은 ‘그라피티-아트’라는 단어였다. 미국에서 그라피티 아트는 라이팅을 포함하는 용어였지만, 프랑스에서 드니 리우는 라이팅을 ‘그라피티-아트(現스트리트 아트)’와 구분하였다. 미국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라이터들과 많은 교류(예술 전시, 갤러리 계약, 장소, 협업 작업,아틀리에 공동 사용)를 하고 있었지만, 프랑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라이터들과 어떤 예술적·문화적 교류도 하지 않으며, 독자적인 노선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국가의 그라피티 탄압 및 제재로 인해 1세대 프랑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갤러리로 유입되었고, 거리에서의 이 운동은 잠시 주춤했다. 1990년대 말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스페인 등의 도시 거리에 새롭게 등장한 제2세대 국제 스트리트 아티스트들 역시 라이팅 기법과 결별하고, 스프레이 그라피티(alter ego), 스텐실, 포스터뿐만 아니라, 스티커,콜라주, 설치, 착시, 모자이크, 벽화, 광고판 변형 등 다양한 예술적 기법들을 모색했다. 이들은 신속함, 자유롭고 저항적인 행위, 유머, 놀이, 비판적 태도, 예술적·시적인 표현, 불법 행위 등을 강조했다. 특히 뱅크시(Banksy, 영국)의 전설적인 행동은 급격하게 쏟아져 나오는 이후의 작가들에게 다양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따라서 ‘스트리트 아트’는 스프레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재료들을 사용하여, 벽, 바닥, 거리 공간 등에 작업한 낙서 행위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현대 예술 운동을 의미한다. 2008년, 테이트 모던에서 시더 루이슨(Cedar Lewisohn)이 기획한《스트리트 아트》전시는 이전의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의《그라피티》전(2006), 파리 그랑 팔레의《태그》전(2008), 까르띠에 재단에서 열린《길에서 태어난 그라피티》전(2008), 로스앤젤레스 미술관의《거리의 미술》전(2011) 등과 달리 스트리트 아트를 그라피티와 구분하며 현대 미술 운동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하였다. 2010년, 프랑스는 사전에 외래어 그대로 스트리트 아트 운동(le mouvement dustreet art 혹은 le street art)이라 수록했으며, 한국에서도 이 용어는 외래어를 문자 그대로‘스트리트 아트’로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림3.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  시리즈 중, 1996, 그르노블, ⓒ 피뇽-에르네스트.

그림3.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 <전화 부스(Les cabines téléphoniques)> 시리즈 중, 1996, 그르노블, ⓒ 피뇽-에르네스트.

저항 예술 혹은 저항 예술의 상업화?

프랑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낙서가 예술 형식으로서 내용과 형식을 갖추며, 보다 더 직접적으로 ‘아방가르드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고 보았다.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의 선례를 따라 이들은 거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부르주아 문화와 관습화된 사유체계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과 행동을 추구하였다. 사회에 관한 ‘비판적’ 태도를 보여주는 이들의 이미지들은 정치적인 목적에 부합한 상업적이고 단순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이미지들과 그 궤를 달리한다. 이들은 단순히 인물의 초상, 전쟁, 이민자, 이재민(혹은 노숙자), 소비 사회, 스트리트 아트의 상업성 등과 같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자신들의 행동과 작품이 일상적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수단이 되고자 했다. 이들의 활동은 국제 상황주의(La Situation Internationale) 예술가들이 언급했던 일상 생활의 변혁, 즉 미시적 저항일까?
즐로티카미앙과 피뇽-에르네스트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예술의 제도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거리(벽, 공사판 가림막, 맨홀 뚜껑, 계단 등)를 선택했다. 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장소’에 ‘불법적’으로 작업하면서 낙서 행위의 반달리즘 성격을 예술적으로 실천했다. 특히 피뇽-에르네스트는 벽에 스프레이로 직접 그리지 않고, 벽의 훼손 없이 재빠르게 거리에 작업할 수 있도록 인쇄된 이미지들을 거리에 선보였다. 그가 보여준 인간 형상들은 우리 자신이자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그림3).다양한 국가의 도시 공간에서 작업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대중문화와 고급미술의 관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접근, 미술의 상업화와 제도적 개선, 미술의 자율성 문제등과 같은 현대미술 전반에 드러나는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이 운동이 태생적으로 갖고있는 저항적·비판적 태도와는 모순되게, 한편으로는 예술적 저항으로 가장한 채 매스컴과 갤러리 등의 요구에 적응하는방식에 더욱 민감한 작가들이 공존한다. 따라서 이 운동의 정체성, 매체와 작업 방식에 대한 의구심, 진정성과 상업성의 모호한 경계 등에 대한 작가들의 개별적 평가는 좀 더 세심하게고려되어야만 한다.
1970년대 그라피티의 미학적·내용적 결여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의 요구에 따른 뉴욕 변두리 지역의 화랑들은 결과적으로 라이터들을 예술가의 반열에 위치시켰다. 작품으로서 생산과 판매를 지속시키며 퓨튜라(Futura), 이(Lee), 크래쉬(Crash) 등의 라이터들의 출세욕은 자신들의 ‘태그’를 하나의 ‘스타일’로 만들어내고, 이미지를 곁들인 라이팅 작업을 통해 새로운‘예술 양식’으로 정착시켰다. 이들은 시대에 대한 어떤 비판적 사유를 나타내지 않았으며, 예술 제도에 대해서도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며 ‘예술’이 되었다. 예컨대 아도르노의『프리즘』에 수록된「재즈」에 관한 그의 예리한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아도르노의 비판이 겨냥하는 것은 재즈 음악, 흑인 문화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 진보적’인 체하는 재즈의 정체를 폭로하고 문화산업에 의한 재즈의 순응주의적인 태도이다. 새로운 것인 양 가장한 재즈를 관류하고 있는 법칙은 시장의 법칙이었으며, 결국 재즈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예술형태가 되었다.
향락과 목적 없는 여가를 즐기고자 하는 대중이나 부르주아에 순응할 때마다 지배적인 시장 구조에 손쉽게 동화되었던 재즈처럼, 스트리트 아트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한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저항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프랑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전통적인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갤러리와 거리’ 활동에 대한 토론, 스트리트 아트의 정체성, 예술의 목적 등에 관한 수많은 논의를 진행하며 새롭게 거리 미학의 장을 형성했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지키는 것에 동조했고, 프랑스 갤러리는 이들의 활동을 묶어주며 ‘공간’을 제시하는데 힘썼다. 프랑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이 국가와 대중의 관심을 유발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삶과 문화에 오랫동안 깊이 뿌리내린 아방가르드 정신을 잃지 않고, 현대미술의 긴장감 있는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공 공간을 직접적으로 가로지르며 ‘함께-살기’나 ‘정치적’문제에 개인적인 의견을 내보였다. 예술이 일상의 삶과 더불어 공유되길 원했으며, 대중이 이들의 문제에 함께 소통하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갤러리와 미술관 전시, 퍼포먼스, 페스티벌, 더 나아가 도시예술 아트페어(L’art urbainFair) 등과 같은 국제적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지적이고 윤리적 의식, 작품에 대한 철학적 태도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뱅크시가 재편집해 영화로 만든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Exist trough the giftshop)>(2010)는 이 운동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라 명명되는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는 M.B.W.(Mr. Brainwash)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작업을 시켜 만든 자신의 얼굴 사진을 통해 ‘이미지-태그’ 또는 ‘엠블렘’을 창조하여 ‘반복’이 곧 저항적인 태도라는 태그의 정신을 실현하였다. 예술 관련 종사자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해서 이루어진 <삶은 아름답다 (Life is Beautiful)>(2008) 전시는 잡지, 인터뷰, 뉴스 등의 언론 매체를 이용한 홍보, 성공적인 전시의 개·폐막 등을 통해 그를 본격적인 예술가로 등극시켰다. 이 영화는 스트리트 아트를 표방하는 티에리의 모습과 이러한 보이지 않은 과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의 작품에만 열광하는 대중과 미술계를 과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젊은 작가들의 빠른 성공, 손쉬운 기법, 가식화된 행동, 공식적 주문에 대한 작가들의 선명하지 못한 태도와 결탁 등은 이 운동 자체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저항적인 태도가 하나의 예술적 장르로 유입될 수 있었던 계기였다면, 갤러리에서 ‘선물가게를 지나야만 출구’에 이를 수 있는 현대미술의 자본주의는 역설적으로 이 예술운동의 힘을 하락시키는 동력이다. ‘낙서’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가 되는 상황, 다시 말해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낙서를 통해 기득권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던 이들이 또 다시 기존의 질서에 범주화·제도화 되는 과정은 자본의 논리를 통해 소비문화 속에 빠져든 현대미술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적 가치와 예술 시장에 대한 ‘수치스러운 공모’는 쓸데없는 것들이 여전히 예술 행세를 하고, 쓸데없음은 곧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것이 되어 버리도록 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와의 유혹 속에서 혹은 예술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예술가(l’artiste simul´e)와 진정한 예술가(l’artiste v´eritable)를 구별 짓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 스트리트 아트의 미래는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에 달라붙어 새로운 생성(生成)의 땅으로 바꿔가는 유목민의 삶처럼, 스트리트 아티스트들 역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과의 접속을 통해 철학적 사유와 함께 창조적 삶을 추구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가『미니마 모랄리아』(1951)에서 철학이 현실의 모순을 남김없이 폭로하고 비판하며 그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예술 역시 ‘사회적 모순을 시각화’할 때 언제나 가치 있는 비판적 기능이 수행될 수 있다. 이러한 아도르노의 시각에 비춰 볼 때, 스트리트 아트 역시 예술가들 스스로의 비판적 반성과 함께 적극적으로 사회 및 예술 제도에 대응할 때 지속될 것이다.
다시 말해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제도권, 전시기획자, 비평가, 예술수집가, 그리고 기업의 후원 안에서 주도권을 잡으며 도시 미술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방법으로 진행되었던 예술 제도와 공공미술의 주문 방식에 도전하여, 도시 공간 안에 조형 예술을 설치하는 데 관여했던 수많은 결정권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도시 공간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이러한 갈등을 감수하면서도 창의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장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토대로 한국 도시 예술에 대한 지형도를 그려나가며, 예술의 자율성을 적극 보장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예술가들 또한 진취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도시 거리에서의 주도권을 나타낼 수 있을까? 한국 예술계는 도시 공간에 비공식적으로 개입하며 실천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의 활동을 정당화해주며, 사회와 예술, 그리고 일상적인 삶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이 사회 문제에 대한 대중의 공감대를 획득하며 시대를 바라보는 비판적 눈을 보여줄 때, 예술비평·학술계가 이들의 활동을 분석하고 공론화하며 논의의 장을 확대시킬 때, ‘관조적’이면서 ‘열린 태도’로 국가가 도시의 공간 및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줄 때, 공공 미술에 의해 주도되었던 한국 도시 예술은 도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선보이며 다양한 도시 예술 지형도를 재편성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제도권이 도시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리 주어진 전체’를 제시하는 것보다 다양하고 분산된 일상적 행동을 인정해 줄 때, 이들의 근본적인 활동은 대중과의 소통의 매개로서 ‘일차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

양 초 롱 / 미술사 박사,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초빙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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