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호 특강취재: 경의선 책거리, <청춘과 함께하는 고전, 인문, 문화산책1>] 소설, 나의 버려졌던 감정을 되찾게 해주다

▲김영하 강연자가‘우리는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하 강연자가 ‘우리는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포구와 한국출판협동조합에서 주관하는 경의선 책거리는 5월 18일부터 7월 25일까지 ‘청춘과 함께 하는 고전, 인문, 문화산책1’이라는 제목으로 5차례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2차례의 강연이 진행됐으며 앞으로 3차례의 강연이 남았다. 경의선 책거리는 작년 10월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으로, 경의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 있다. 본 강연은 지난 5월 20일에 진행된 것으로, 김영하 작가가 ‘우리는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

소설을 읽기란 쉽지가 않다. 소설을 읽으려고 하면 우선 눈에 글자가 보여야 한다. 글자는 하나하나 읽어야 하며 집중을 해야 보인다. 100년 전만 해도 글자를 읽는 것은 굉장히 고급화된 기능으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글을 읽을 수 있 는 사람이 소수였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문명의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소설을 읽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활자 하나하나를 읽어내기에는 현대인의 삶이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잘 붙들지 못하며 그 세계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다. 필립 로스의 장편 소설『미국의 목가』에서는 60년대 말 혼란스런 미국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딸이 폭탄 테러를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아이의 삶이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우리의 딸이 폭탄 테러를 할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외에도 러시아 소설을 읽어야 할 때면 등장인물들의 꽤 긴 이름에서 헤매고, 과거 18~19세기에 쓰인 소설이라면 그 시대의 상황 또한 알 리가 없다. 따라서 소설이라는 것은 대단히 많은 인지적 자원을 가지고 마주해야 한다.

읽기 힘든 시대

우리나라에서 독자로 살아가는 데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주 역동적인 나라다.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대통령이 파면당하고, 대선이 끝난 지금은 새로 맞은 정권이 생산해 낸 뉴스들을 보기에 정신이 없다. 또한, TV 방송 프로그램들도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콘텐츠들로 가득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자기 집 냉장고를 들고 와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세쌍둥이들의 성장기를 담은 프로그램 등 예능 프로그램의 번성은 우리를 충분히 소설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게 한다.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전 세계의 천재적인 마케터와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시간을 빼앗으려고 달려든다. 우리가 소설을 읽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소설은 위기의 상황에 놓여있다. 소설의 전성기 시대였던 20년 전에는 얼마든지 벤치에 앉아 소설가가 표현하려는 세계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므로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덜 읽게 된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어려운 환경에서 책을 읽고 있다. 예전보다 소설이 덜 읽힌다고 하지만, 사실 절대적인 통계를 보면 책 판매량은 지금이 훨씬 높다. 그러나 사들이는 책이 많아서 완독하는 데에 더 어려움이 따른다. 헌책방에 팔아버릴까 하는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강연자는 이제는 책이 팔리는 부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독자가 그 책을 끝까지 읽었는가가 중요하다”며 책을 사기보다 이미 사놓은 책을 한 번 더 읽으라고 권면한다. 완독이 중요한 시대에 놓인 것이다.

소설, 보다 나은 나의 삶

이렇게 읽기 힘든 시대, 읽기 힘든 소설임에도 여전히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다. 소설을 포기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인생의 목적과도 같은 것이다. 강연자는 인생의 목적을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 여러 방법 을 쓴다. 예를 들면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이다. 점쟁이는 단정적으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들어보면 맞는 말 같지만, 그들이 하는 말만으로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참 힘듦을 발견한다. 또한, 누군가는 우리더러 명상으로 자신에게 집중해보라고 권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온 힘을 다해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가 아주 힘든 존재다. 결국, 명상의 시간은 단시간에 깨어지고, 온갖 잡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특히 타인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빼앗긴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하루 종일 생각하게 되는 것 중 대부분이 ‘타인’에 관한 것이다. 나의 동료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제와 다른 이성 친구의 행동은 도대체 왜 그런지 등 우리는 타인에 대해 아주 많은 인지적 자원을 사용한다. 자기를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곧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늘 서툴다. 그래서 내가 왜 화가 났고 슬픈지, 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지 등 알고는 싶지만, 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짜증나’라는 감정은 어디에나 갖다 붙여도 다 통용된다. 공중화장실을 갔는데 휴지가 없을 때, 길 가다가 낯선 사람이 어깨를 치고 갔을 때, 나의 소중한 사람이 나의 생일을 잊었을 때 우리 는 짜증이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설가는 우리의 서투른 감정을 대신 더 적합하게 표현 해준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경우는 ‘당황스럽다’, 나의 어깨를 밀치는 것은 ‘화가 난 다’, 나의 친구가 내 생일을 잊었을 때는 ‘서운하다’라는 식으로 소설가는 우리가 억눌렀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해준다. 그리고 작가가 쓴 감정묘사를 보며 ‘아,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 이거구나’라고 이해한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우리 안에 있던 마음을 분류할 수 있고, 서투른 감정들 위에 다채로운 언어를 덧붙일 수 있다.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방법은 소설을 읽는 것이다. 소설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소설은 복잡한 환경과 곁가지들을 제거하고 마치 실험실과 같은 상황 속에서 특정 인물의 심리, 인물들의 관계, 사건 등을 찬찬히 풀어나간다. 『미국의 목가』에서 한 유대인 아버지의 딸이 폭탄 테러범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이 아이의 부모라면 어떻게 할까? 남의 일이니까 생각하기 쉽 다. 소설은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동시에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내가 읽었던 소설의 사건이 현실에서 똑같이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비슷하게 일어날 수 있 다. 『미국의 목가』에 나오는 딸처럼 폭탄 테러범은 아니지만, 우리의 사랑스러웠던 딸이 반사회적인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소설을 통하여 우리의 상황을 그저 ‘준용’하면 된다. 즉 소설을 나의 삶의 푯대로 삼아 보다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책 한 줄을 읽는 여유

우리의 마음은 대부분 버려져 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주어진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아이를 길러야 하는 등 우리의 마음은 늘 쫓기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생각하며 보듬어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자’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소설 속의 타자는 현실 속 인물처럼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그들을 통해 쉽게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선량한 사람으로만 생각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는 악한 사람, 복잡한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소설 속 타인을 보게 되면서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친절한가? 강연자는 어떤 선량한 사람이 아닌, 바쁘지 않은 사람 이라고 말한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다 보면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가혹해진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한편에는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회복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내면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 우리는 타인과 공존함으로써, 때로는 고통을 감수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자기 자신이라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이 타인을 소설 속에서 만나보자.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에서 소설책을 읽어보 자. 세상에 치여 나의 잃어버렸던 감정을 되찾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고나혜 | konahye93@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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