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호 과학학술: 유전자가위] 유전자 가위와 유전체 편집의 이해

1970년대 유전자 조작이 처음 시도되면서 DNA의 특정 서열을 인지해 자르는 ‘제한효소’가 발견됐다. 그러나 제한효소는 인식할 수 있는 서열의 길이가 너무 짧다는 한계를 보였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어진 결과 마침내 새
롭고 강력한 유전자 가위‘CRISPR(크리스퍼)’가 개발됐다. 이에 본보는 유전자 편집 및 교정기술의 원리와 파급효과, 윤리적 문제점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유전체 교정/편집이 대체 뭐길래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유전자 가위’ 내지는 ‘크리스퍼/Cas9(CRISPR/Cas9)’, 혹은 ‘유전체 편집/교정(Genome Editing)’ 등의 용어를 들어본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본보에서는 소위 ‘유전체 편집/교정기술’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이들이 과학, 의학 및 산업발전에 미칠 파급효과, 그리고 이들이 야기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고찰해보도록 한다.

1세대 유전자 조작기술

세균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모든 생명현상의 ‘펌웨어’를 A, C, G, T의 염기 형태로서 일종의 디지털 정보로 DNA에 저장하고, 이를 후세에 물려준다. 미지의 언어로 기술된 고대 문서를 한 자씩 해독하듯, DNA 내에 기록된 유전정보의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에 유전자 조작기술이 등장하였다. 이 기술의 핵심 요소는 DNA의 특정한 서열을 인식하여 이를 절단하는 효소인 제한효소이다. 1972년 최초의 제한효소가 발견된 이후, 임의로 자른 DNA를 서로 연결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DNA 조각을 동식물 및 미생물에 삽입하는 소위 재조합 DNA 기술, 극소량의 DNA에서 임의영역을 증폭하는 PCR등의 1세대 유전자 조작기술이 1980년대에 확립되었다. 이러한 1세대 유전공학기술은 생물의 분자생물학적 이해에 필수적이었으며, 또한 생명공학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가령 인슐린과 같이 동물 내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단백질 유전자를 미생물 혹은 동물세포주에 도입하여 단백질을 대량생산하는 재조합 단백질 기술, 혹은 제초제/해충내성 등과 같이 원래의 작물이 가지지 않는 성질을 부여하기 위해서 외래 유전자를 동식물의 유전체 내에 도입하는 유전자 변형생물 등이 1세대 유전자 조작기술에 의한 주요 결실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1세대 유전자 조작기술은 실제로 조작할 수 있는 DNA의 길이가 한정적이었으며 따라서 전체 유전체를 마음대로 편집/수정한다기보다는 유전체의 극히 일부만을 떼어내 편집하는 제한적인 기술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수백 권으로 구성된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거대한 기록물에서 1~2개의 문단, 혹은 한 페이지를 떼어내서 이를 편집하는 수준의 제한적인 일이었다. 이런 한계는 1세대 유전자 조작기술의 핵심 도구였던 제한효소의 한계 때문이었다. 일례로 백과사전에서 특정 페이지를 잘라내고 우리가 원하는 내용으로 교체하고 싶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백과사전에서 원하는 내용이 있는 위치를 찾아 해당 페이지만을 잘라내고 원하는 내용을 끼워 넣게 된다. 마찬가지로 염기서열로 구성된 유전체에서 특정한 위치를 잘라내 원하는 DNA를 삽입하고 싶다면 유전체에서 원하는 위치만을 정확히 자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한효소는 6~8자로 구성된 짧은 서열정보만을 인식하여 DNA를 자른다. 고등생물의 유전체는 수십억 자로 구성된 방대한 정보이므로 6~8자를 특이적으로 인식하는 제한효소로 원하는 부분만을 자르는 것은 불가능하고 더욱이 여기에 원하는 정보를 삽입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즉 1970~80년대에 확립된 1세대 유전자 조작기술은 유전체의 극히 일부분을 잘라내서 ‘스크랩’ 하는 용도로는 적절하였으나, 유전체의 내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는 못한 불완전한 유전자 조작기술이었다.

▲Biotechnology: Rewriting a Genome, Emmanuelle Carpentier & Jennifer A.Doudna, Nature, 495, 50-51(2003) ⓒwww.nature.com

▲Biotechnology: Rewriting a Genome, Emmanuelle Carpentier & Jennifer A.Doudna, Nature, 495, 50-51(2003)  ⓒwww.nature.com

 

유전자 가위: 긴 서열을 인식하는 인공제한효소

따라서 유전체 수준에서 유전체를 자유롭게 조작하기 위해서는 유전체를 원하는 위치에서 딱 한 번만 정확히 자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약 18염기 정도의 긴 서열을 인식하는 제한효소가 필요했지만 이런 효소는 자연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계에 있는 DNA에 결합한 단백질을 변형하여 약 16~18염기 정도의 긴 서열을 인식하는 인공효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1990년대부터 진행되었고, 이렇게 탄생한 첫 번째 산물이 징크핑거 뉴클레이즈(ZFN: Zinc-Finger Nuclease)이다. 즉 수백 권의 책으로 구성된 전집 중 내용과 일치하는 영역에서 딱 책 한 권을 자를 수 있는 ‘가위’가 개발된 셈이다. 이것은 DNA에 결합하여 특정한 서열을 인식하는 단백질인 징크핑거 단백질을 조작함으로써 특정한 서열을 인식하도록 하고, 여기에 DNA를 자르는 분해효소를 결합한 것이다. 2002년에는 최초로 고등생물인 초파리의 유전체 수준에서 ZFN을 이용한 유전자 조작이 수행되었다. 그러나 ZFN은 특정한 서열을 인식하는 단백질을 개발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으나, 의도하지 않은 서열을 자르는 등 한계점이 있었으므로 이 기술을 대중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유전자 가위’의 붐이 본격적으로 일게 된 것은 2012년으로 ‘CRISPR/Cas9’라고 통칭되는 유전자 가위가 등장한 이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유전자 가위의 기반이 되는 기술 자체는 원래 유전자 가위와는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세균도 ‘감기’에 걸린 후 내성이 생기는 이유

우리가 질병에 한 번 감염되고 항체를 형성한 이후에는 차후에 같은 질병에 감염되어도 예방이 된다. 또한 항체의 생성을 유도하는 백신을 통해 병을 예방할 수 있는 원리는 인체가 외부 병원체에 노출됐을 때 이를 인식하는 항체 등을 통해 해당 병원체가 다시 인체에 감염되어도 이를 무력화하는 ‘적응 면역’ 기작의 덕이다. 그렇다면 세균은 어떨까? 우리는 단순히 병원체라고만 생각하는 세균도 실은 그들에 감염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와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만약 세균이 박테리오파지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면 이들은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세균은 어떻게 방어를 수행할까? 2000년대 이후 세균의 유전체 내에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라는 이름을 가진 정체불명의 염기서열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들과 같이 Cas(CRISPR associated) 유전자군이라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들의 기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2005년경 덴마크의 요구르트 회사 다니스코(Danisco)에 근무하는 연구자들은 유산균을 죽이는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간혹 박테리오파지가 감염되어 거의 모든 유산균이 죽어도 살아남는 유산균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박테리오파지 내성 유산균은 놀랍게도 박테리오파지가 들어오면 이들의 DNA 조각을 잘라 자신의 유전체 내에 붙여 넣어서 ‘기억’해 둔다. 나중에 박테리오파지가 다시 침입하면 이전에 DNA 형태로‘기억’해 둔 박테리오파지의 서열 정보에 따라 박테리오파지의 DNA를 분해해 해당 박테리오
파지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CRISPR라는 유전자는 바로 전 침투했던 박테리오파지의 DNA 조각을 기억해 두는 역할을 하고, Cas 유전자는 이 정보를 이용해서 박테리오파지의 DNA를 자르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균의 면역이 어떻게 유전자 가위와 관련이 있게 될까?

Cas9: RNA의 정보에 따라 DNA를 자르는 효소

2012년 미국과 스위스 공동연구팀은 Cas9이라는 하나의 단백질이 박테리오파지의 DNA를 자르고, 이 단백질은 CRISPR안에 존재하는 crRNA라는 RNA의 서열에 따라 DNA를 자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제한효소나 ZFN 등이 단백질 내에서 어떤 DNA를 자르는지 고정되어 있다면, Cas9은 crRNA라는 외부의 RNA 서열에 의해 어떤 DNA가 잘리는지를 결정하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제한효소인 셈이다. 즉 Cas9에 결합되는 crRNA의 서열을 바꿔주면 어떤 DNA 서열이라도 자를 수 있는 유전자 가위가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Cas9이 RNA에 의해서 자르는 부위가 결정되는 새로운 종류의 단백질이라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이를 이용해서 유전체의 원하는 위치를 잘라 유전체를 수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2013년 동물세포주에서 지놈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보고된 이후 생쥐, 제브라피시 등의 모델생물에서 Cas9을 이용한 유전체 조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이런 모델생물들은 유전자 가위의 등장 이전에도 제한적으로 유전체를 일부 뜯어 고치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Cas9에 의한 유전체 편집기술의 진정한 의의는 기존에는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생물도 손쉽게 유전체를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즉 생쥐, 초파리, 제브라피시 등과 같은 모델생물은 물론이고 소, 돼지 등의 가축, 밀, 쌀 등의 작물, 심지어는 인간과 사촌인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유전체 정보를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막강한 기술이 등장한 셈이다.

유전체를 뜯어 고치는 것의 진정한 의미

생물학 연구자가 아닌 사람은 “모든 생물의 유전체를 우리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의미를 쉽게 파악하지 못할수도 있다. 일단 이러한 수정이 생물학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부터 알아보자. 생물학에서 유전자의 기능을 파악하는 데는 통상적으로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정유전학(ForwardGenetics)’으로, 야생형과는 다른 성질을 보이는 돌연변이체에서 유전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가령 토머스 헌트 모건이 하얀색 눈을 가진 초파리로부터 눈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은 것이 정유전학의 예이다. 또 다른 방법론은 ‘역유전학(ReverseGenetics)’으로, 유전체의 염기서열로부터 파악된 유전자를 없애서 나온 돌연변이체가 어떤 형질을 보이는지를 관찰함으로써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파악하는 것이다. Cas9에 의해 모든 생물의 유전체 편집이 가능하게 되어 기존에는 모델생물을 제외하면 유전학적 연구가 쉽게 가능하지 못했던 거의 모든 생물의 유전체를 마음대로 뜯어 고쳐 유전자와 생물의 다양한 특성 간의 관계를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우리는 모델생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생명체의 신비를 상당수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미지로 남아있는 생명체의 신비는 허다하다. 가령 ‘얼룩말은 왜 줄무늬가 있어요?’ 혹은 ‘코끼리는 왜 코가 긴가요?’와 같은 초등학생이 할 법한 질문들의 상당수도 정확한 유전학적, 분자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생명체의 다양성은 궁극적으로 이를 결정하는 유전체/유전자에 대한 연구로 입증할 수 있다. 모든 생물체의 유전체를 뜯어고칠 수 있는 Cas9과 같은 기술의 등장은 생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하겠다.

유전체 편집은 생물학 연구를 넘어서 생명공학적인 새로운 활용 용도를 개척하고 있다. 가령 현재의 유전자 조작(GMO) 작물은 제초제 저항성이나 해충 저항성 등 작물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외래 유전자를 한두 개 끼워 넣은 초보적인 유전자 조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물의 특성을 좌우하는 대개의 형질은 전통적으로 교배 육종에 의해 이루어져 왔으며 여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이에 반해 유전자 가위를 통해 유전체의 내용을 직접 변경하는 기술은 전통적으로 교배 육종에 의해 이루어져 왔던 작물 육종의 시간과 노력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교배 육종으로만 이루어낼 수 있던 유전체 변화와는 달리 인위적인 유전체 편집을 통해 유전체 변화를 도입한 작물에 대해, 그 작물을 과연 통상적인 ‘유전자 조작’ 작물로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또 다른 활용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의학적인 용도일 것이다. 가령 AIDS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는 T세포에 존재하는 CCR5 단백질을 통해 침투하는데, 유전자 가위를 통해 이 단백질의 유전자를 없앰으로써 HIV에 대한 내성을 가지도록 조작된 T세포를 이용해 HIV에 감염된 환자를 치료하려는 시도 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암세포 표면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단백 질을 인식하도록 조작된 T세포(CAR-T: Chimeric Antigen Receptor T-Cell)를 이용해 면역세포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치료법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또한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로서,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등의 유전적 안과 질환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교정하려는 시도들이 동물 모델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아직 실험동물 수준에서의 가능성 타진 수준이며, 실제로 사람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의 당면과제

인간이 모든 생물체의 유전체를 뜯어 고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의 유전정보를 스스로 고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우려에 부응하고자 2015년 말 CRISPR/Cas9 기술과 관련된 전문가들은 인간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체 편집 시도를 당분간 삼가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유전자가 수정된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일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 및 생물의 유전체에 대한 우리의 현재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며, 이러한 상상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 미약할 뿐이다. 현재 우리가 CRISPR/Cas9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기능을 아는 유전자 몇 개의 기능을 없애거나, 잘못된 부분을 수선하는 정도이고, 이를 비유하자면 자동차와 같은 복잡한 기계의 부품 중 몇 가지의 기능을 알고 이를 겨우 교체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에 반해 유전체를 수정하여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을 만드는 것은 마치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개조하여 트랜스포머와 같은 로봇을 만드는 경지에 비견될 텐데, 그런 걱정을 하기엔 인간과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현재 지식은 너무나도 조악할 따름이다. 이와 함께 국내의 경우 생명윤리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간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 조작 자체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인간배아에 대한 유전체 편집 시도는 분명히 경계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현재로선 과민반응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진전되고 이러한 지식이 최근 발전하기시작한 합성생물학(Synthethic Biology)과 맞물리면, 언젠가 인간은 자신과 생물의‘진화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학술팁

남 궁 석 / 충북대학교 축산·식품과학부/동물바이오장기사업단 연구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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