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호 테마서평: 전통여성의 재발견

『주체적 삶, 전통여성』(이화형, 푸른사상, 2017)
『강직한 지식인, 인수대비』(이화형, 푸른사상, 2017)
『융합적 인재, 신사임당』(이화형, 푸른사상, 2017)


전통여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현모양처’, ‘일부종사’, ‘삼종지도’, ‘여필종부’, ‘칠거지악’등이 떠오른다. 남편의 말을 하늘과 같이 떠받들고, 남편이 첩을 들여도 감내하지만 자신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쫓겨나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살아가는 여성들의 수동적인 모습이 연상된다.

 

221-10-1-메인

▲이화형(1955~ )

전통여성을 새롭게 조명하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의 여성들이 과 수동적인 모습으로만 살았을까? 본교 이화형 교수(한국어학과)의『주체적 삶, 전통여성』,『 강직한 지식인, 인수대비』,『 융합적 인재, 신사임당』에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전통여성상을 확인하게 된다. 전통여성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모습의 여성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화형 교수는 이 땅의 여성들의 삶과 위상에 대한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한국근대여성의 일상문화』(2004, 전9권)와『한국현대여성의 일상문화』(2005, 전8권)(<문화일보> 주관의 제1회 출판문화대상 특별상을 수상)를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저술한 바 있다. 그 이후『뜻은 하늘에 몸은 땅에-세상에 맞서 살았던 멋진 여성들』과 『여성, 역사 속의 주체적인 삶』이라는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의 독창성은 인문학자의 일관된 시각으로 여성에 관한 다양한 영역을 다룬 여성사라는 점과 시대를 달리하는 여성들을‘주체’라는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저술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학술적 저술의 한계를 벗어나 우리 가까이에 두고 새길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저자는 ‘지식에세이 여성총서’ (9권)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이 총서는 여성을 전통여성(3권), 기생(3권), 신여성(3권)으로 분류하고, 먼저 각기 제1권에서 여성의 교육, 성과 사랑, 일이라는 큰 주제를 잡아 총체적인 틀을 세웠다. 그리고 총론 다음으로는 몇몇 여성들의 삶을 각론(각 2권씩)으로 다루고자 했다. 전통여성 중에서는 인수대비와 신사임당을, 기생으로는 황진이와 이매창을, 신여성으로는 나혜석과 김일엽을 대표적인 여성으로 택하여 시대상과 변화하는 사회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갔던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보려 한 것이다.

마침내 그 첫 수확으로서 올해 초‘전통여성’에 관한 3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여성학 연구가 다양하고 심도 있게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의 전통여성들의 꿈과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많았다. 그러나 아직도 전통여성들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물론 학문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과 분석에 어느 정도 이해를 하면서도 실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이를 명쾌하게 분석해 보고자 고민하여 왔다.

사실 한국사회의 성평등 지수는 국제적 평가에서 하위권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마음껏 활동하는 데는 제약이 많고, 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관습이다.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유교적 가치관에 억눌려 살아왔고 그 잔재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완고한 가부장적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 건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부터다. 반만년에 달하는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가부장적 문화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다시 말해 저자는 한국의 역사적 전개 속에 드러나는 여성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새롭게 진행하게 되었다. 이로써 적어도‘가부장제’라는 호명으로 역사 속의 여성 전체에 속박의 굴레를 씌우는 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20-10-1-전통여성

내적 주체로 살아가다

『주체적 삶, 전통여성』에서는 사회적 정의를 위한 교육,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 문화적인 젠더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 주장했다. 사실 우리는 진리 탐구의 교육을 통해 각성하고,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사랑을 하며, 이성적 판단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 아닐까.

저자는 전통여성 상당수가 내적 주체로 살았다고 보았다. 먼저‘교육’에서 자아계발이 허용되기 힘든 여건인 만큼 가정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살폈다. 다음으로 ‘섹슈얼리티’에서 여성들은 제도 내에서 성적 정체성을 찾으려 애썼고, 제도권 밖에서도 상대에 대한 선택 가능성 안에서 나름의 성적 쾌락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었음을 밝혔다. ‘젠더’의 경우, 신분적 측면에서 천민여성에게서조차 주체의식이 엿보이며 경제적 측면에서 여성들은 가사를 넘어 다양하게 생산 활동을 펼쳐나갔고 그만큼 내적 주체로서의 권리도 따랐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주체적 삶, 전통여성』은 전통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깨뜨리게 하는 책이다. 역사 속의 여성에 대한 바른 인식은 우리가 바라는 양성평등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디딤돌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20-10-1-인수대비

강직한 지식인으로 살아가다

『강직한 지식인, 인수대비』는 종래의 인수대비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인수대비는 일찍 남편이 죽고 자식에 의지해 살다가 손자인 연산군에게 보복당한 여성으로 인식되거나 며느리를 죽음으로 몰아간 포악한 시어머니로, 여성억압을 부추긴『내훈』을 지은 보수적 인물로도 평가된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등극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둘째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성군으로 이끌었다. 더욱이 4대에 걸쳐 정치력을 발휘하여 왕실을 지킨 지도자이기도 하다. 한편 그녀는 한국여성사에서 처음으로 책을 낼만한 지식인이었고, 최초로 여성교육서라 할 수 있는『내훈』을 저술했다는 점에서 여성교육의 선구자라 해야 할 것이다.

인수대비는 며느리로서뿐만 아니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세자빈으로서 대비로서 어느 위치에서나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고자 했던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그리고 당시 여성으로서 유교사회 질서를 숭상하고 예법을 실천하고자 앞장섰던 진보적 인물이었다. 『내훈』역시 여성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덕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교육적 비전을 선포한 진취적 산물이다.

『강직한 지식인, 인수대비』에서는 인수대비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벗겨내고, 자기 자리에서 정직하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유교적 정명사상을 실천했던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인수대비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220-10-1-신사임당

융합적 인재로 살아가다

『융합적 인재, 신사임당』에서는 저자가 처음으로 신사임당에게 합당한 이름을 붙여주고자 했다. 사실 5만 원 권 지폐에 신사임당 초상을 넣기로 결정했을 때 일각에서는 반발도 일어났다. 한 나라의 지폐 인물은 국체의 반영이기도 한데,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은 오늘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저자는 신사임당은 부정적 이미지를 지닌 현모양처가 아니며, 그녀가 현재와 미래에 더욱 중요시되는 가치관을 지녔음을 강조한다.

사임당은 부모에게 효성스러우면서도 겸손하게 바른 말을 했다. 남편을 존중하면서도 때로 훈계를 했고, 자녀들을 자애와 더불어 엄격하게 가르쳤다. 가사노동에 힘쓰며 그림을 그리거나 수를 놓아 시장에 내다 팔아 부족한 살림에 보태는 등 집안경제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녀는 가정에서의 의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남을 배려하고 책임을 다하려 했다. 특히 남편에게 사회적 의리를 권유했고 자녀들에게 국가에 봉사하기를 바랐다. 더욱이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재능을 보이며 시서화 등의 예술세계를 확보해나간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융합적 인재, 신사임당』에서는 사임당에게서 자아와 타자, 덕성과 재능, 학문(인격)과 예술, 이성과 감성, 가정과 사회, 꿈과 현실 등의 가치가 어우러져 승화되고 있음을 찾아 그녀에 대해 ‘융합적 인재’로 명명하는 성과를 보였다.

세 권의 에세이를 읽으며 여성이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전통여성의 모습을 새롭게 확인한다. 가부장적 질서의 잔재가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힘들다고 툴툴대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실 어려운 일이다. 많은 반성과 고민, 추진력이 필요한 일이다. 가부장적 질서만이 옳던 세계에서 살았던 전통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살 수 있었다면, 가부장제의 편린만이 남아 있는 현대에 살고 있는 여성들도 그들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송 영 은 / 《대학원보》편집장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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