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호 사설] 희망을 팝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개인의 입신영달을 위함이다.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받아 학사들은 감히 불가능한 일을 하게 됨으로써 성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수많은 청년들의 이러한 희망은 대학원이 존재할 수 있는 밑거름이다. 그런데 과연 대학원은 개인의 성공과 출세를 보장하는 곳일까? 청년의 현재를 희생하고라도 다닐만한 가치가 있는 곳일까?

‘연구 중심’ 대학원에 재학 중인 본교 원생들은 ‘연구’를 원생 생활의 중심에 두고 학업을 이어나간다. ‘연구’를 위해 수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한다. 혹시 모를 취업의 기회와 결혼의 기회 등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기회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갈 기회까지도 지불해버린다. 개인의 입신영달을 위해 기꺼이 지불하고 그 선택이 가져다 줄 희망을 믿는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로 선택으로 인해 포기한 기회 또는 그러한 기회의 최대가치인 ‘기회비용’일까? 어쩌면 실제로 지불된 비용 가운데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이 아닐까?

대학원 진학이 성공과 출세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고학력자들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고학력이 되기 위해 대학원이라는 조직에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지만 사회에서 바라는 인재상과 대학원이 양성하는 인재상과의 간극은 좁히기 어려운 듯하다. 이뿐만 아니라 결국 그 간극을 좁혀야 하는 것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제 몫을 하고 살아야 할 원생 자신이라는 현실은 희망에 취해 매몰비용을 지불해 버린 원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하다.

대학원은 원생의 희망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대학원은 우리가 연구를 열심히 하여 학위를 받으면 진리의 상아탑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강단에 계신 교수님들처럼 학자가 되어 강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래서 우리도 성공이라는 궤도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판매하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희망을 이성을 잃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버리는 ‘광신도’에 다름이 없다. 희망을 판매하는 대학원과 그 희망을 한 점 의심하지 않고 믿어버리는 광신도인 우리들, 완벽하게 완벽한 결합이다.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