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호 특강취재: 화성문예아카데미,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를 보는 세 가지 물음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에 위치한 화성문예아카데미는 4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총 5차례 특강을 진행한다. 화성시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본 강연은 종교를 신앙의 대상이 아닌 탐구의 대상으로 접근하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 4월 12일 구형찬(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강연자가‘종교로 보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마음으로 보는 종교’를 주제로 첫 번째 강의를 진행했다.

이날 강연은“나에게 아무도 묻지 않았을 때 난 시간이 뭔지 안다. 그러나 누가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소개하며 시작됐다. 강연의 핵심은 모두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대답하기 어려운‘종교’와‘마음’이었다. 강연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확장하며 이 둘을 연결하는 하나의 관점을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강연을 이끈 질문은‘종교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을까?’, ‘종교인의 마음은 얼마나 특별한가?(부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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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찬 강연자가‘종교’와‘마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종교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일반적으로‘종교’하면 교회, 성당, 절, 사원 혹은 교리 등을 떠올린다. 여기에 강연자는 기우제, 서낭당 나무, 고사(告祀), 인도의 소 숭배, 그리고 FSM(Flying Spaghetti Monster,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를 소개한다. 우리는 이 중 어떤 것들을 종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믿음’이 그 본질적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유대교의 한 랍비는“유대인 사회에 태어나기만 해도 유대인이 되고, 신실한 믿음의 여부와 상관없이 유대교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종교에 대해 규범적인 정의를 내리려 할수록 종교라는 범주는 점점 더 모호해진다.

종교인들의 생각과 행동은 외부자의 시선에서 종종 불합리해 보이며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폭탄을 안고 뛰어든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 강 한편에서 화장한 시체를 강물에 띄워 보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 그 강물에 몸을 담그고 물을 마시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은 종교인들의 마음이 뭔가 유별난 게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그러나 비종교인들도 종종 종교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었어도 여전히 밥그릇에 밥을 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사별한 가족의 묘소를 찾기도 한다. 이것은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 아닌 그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종교가 아니었어도 존재했을 마음, 강연자는 이 마음에 또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다양한 사전적 정의와 용례가 있지만 우리에게 마음의 실체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마음은 만질 수도 없고, 가슴을 열고 심장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알 수가 없다. 타인의 마음만큼이나 자신의 마음도 알기가 어렵다. 누구나 한 번쯤 머릿속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일과 마음이 끌리는 일이 달랐던 경우를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알쏭달쏭한 마음은 오늘날 인문학을 비롯하여 인간다움에 대해 연구하는 여러 학문 분야의 중요한 키워드다.

오랫동안 인간에 대한 연구는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고전적인 인문학은 인간의 활동과 그것이 만들어낸 다양한 산물들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인간다움 자체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진전은 기존의 인문학이 취해왔던 사고방식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발견이 인간의 마음과 인간다움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인간 활동의 산물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인간 마음에 대한 지식을 통해 인간 활동의 산물들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이에 따라 종교를 통해 인간다움을 연구하던 종교학자들도 인간 마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참조하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종교적인 생각과 행동은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특성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을까?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몇몇 과학자들은 각각 ①신비체험과 뇌병변의 관계, ②영성과 관련된 유전자, ③종교 밈(meme)의 전파, ④개체 혹은 집단의 진화적 적응 등을 언급하며 흥미로운 가설들을 제시해왔다. 여기에 강연자는 ⑤인지적 부산물의 관점에서 종교적 생각과 행동을 설명하려는‘인지종교학(cognitive science of religion)’의 표준 모델을 소개한다. 이는 종교만을 위해 작동하는 특별한 인지체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 마음의 일상적인 작동방식이 종교적인 생각과 행동을 발생시키고 퍼지게 한다는 가설이다. 이때 마음의 작동방식이란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뇌의 인지적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이러한 가설은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성과들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 조상이 살던 원시의 환경에서는 대상의 물리적, 생물적, 심리적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을 지닌 개체들이 그렇지 않은 개체들보다 생존과 번식에 상대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다. 이 능력에는 정확성보다 민감성이 더 중요하다. 이 능력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낙엽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거나 시커먼 바위를 곰으로 오인해 도망가는 개체는 꽤 피곤하긴 해도, 정확한 판단을 위해 수풀을 뒤지거나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는 곰에게 다가가는 개체에 비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 과민한 능력이 유전되는 형질이라면 훗날 더 많은 개체들이 이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 현생 인류는 과민함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조상들이 물려준 다양한 마음의 체계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진화된 기능들이지만 우리의 뇌 속에서 함께 작동한다. 가령, 우리는 자신의 환경에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일단 행위자를 원인으로 떠올리는 인지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또 우리는 상대방의 의도에 매우 민감해서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 마음은 오염이나 전염 가능성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데, 이로 인해 종종 아무런 위험이 없는 대상에도 혐오감을 느끼곤 한다. 이런 마음의 체계들은 정확성보다는 효율성의 체계로서 정보를 처리하는 데 드는 노력 대비 효과가 큰 쪽으로 작동한다. 이로 인해 일체형으로 설계된 최신 컴퓨터와는 달리 인간 마음은 체계에 맞지 않는 정보가 입력되더라도 어떻게든 처리해내는데, 이는 사람들이 불합리한 판단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시와 은유를 즐기고 사랑에빠질 수 있게도 해준다.

사람들이 종교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도 우리 마음의 다양한 작동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는 신이나 영혼과 같은 관념이 널리 퍼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생각은 행위자를 찾는 데 과도하게 민감한 마음과 타인의 의도에 예민한 우리 마음의 작동 방식에 잘 부합한다. 또 그렇게 떠올려지는 신이나 영혼 같은 행위자에 대한 생각은‘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직관적 기대에 대부분 잘 부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라든지 벽을 통과하는 존재라는 반직관적인 정보는 초자연적 행위자를 쉽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관념은 개인의 마음에서 발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널리 퍼져나가서 문화를 이루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도 의사소통 과정에 작동하는 마음의 체계가 큰 역할을 한다. 우리 마음은 화자가 청자에게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는 약간의 정보만으로도 의미를 구성해낸다. 이 과정에서 종종 오해가 생기는 것은 이것이 정확성보다는 효율성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 효율성의 체계는 난해한 과학적 지식이나 종교적 교리가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는 데에도 기여한다. 인간 마음이 모호한 정보를 일단 유효한 것으로 처리하거나 쉽게 기각시키는 데 능숙하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밝혀져 있다.

종교인의 마음은 얼마나 특별한가?

강연자는 특정 종교를 옹호하지도 않고 종교적 신앙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도 않았다. 다만“종교인의 마음이나 비종교인의 마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종교인의 마음이 유별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종교적인 생각과 행동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교와 마음에 대한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나 종교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목적은 인간다움(humanity)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 여 정 | ceravi@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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