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호 문화비평: 21세기 세대차이] 21세기 세대의 세상을 허하라

인류 역사에서 20세기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분기점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바로‘과학기술의 발달’이 일정한 임계점에 다다른, 인류문명의 한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로. 우리는인류역사상 글자 그대로 전무후무한 시대를 지나왔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일정한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과학기술적 세대교체의 속도가 인간의 생물학적 세대교체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추월은 지금의 인류문명이 멸망하거나 퇴보하지 않는 한 역사상 단 한 번만 일어날 사건이다.

이 사건, 즉 추월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는 시간적으로 수백 년의 차이가 나지만, 각각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농사를 짓는 데 가축의 힘을 빌리고, 여행수단은 고작해야 말을 타거나 아니면 그냥 걸어 다니는 식이었다. 수백 년 동안 똑같았다. 그러나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수십 년, 그리고 심지어는 수 년 단위로 숨 가쁘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환경을 경험했다. 인류 최초의 비행기가 등장했을 때(1903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평균적인 수명을 누리고 숨을 거둘 즈음엔 이미 달에 인간의 발자국이 찍힌 다음(1969년)이었다. 인류 역사상 인간의 생애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처럼 엄청난 변화를 체험한 세대는 일찍이 없었다. 더구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PC의 광범위한 보급과 급속한 개선이 몇 년 사이에 세상 사람들을 구세대와 신세대로 나누어놓다시피 했다. PC나 휴대폰의 세대교체 주기가 요즘은 채 5년도 되지 않는다.

21세기는 세대 차이의 성격이 다르다

지금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급속하게 변화해가는 과학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20대 이하의 청소년층은 이미 태어나서 성장할 때부터 이러한 변화에 익숙하게 적응해온 편이라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쉽게 예견할 수 있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과학기술에 익숙한 세대로 대체되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과학기술 환경의 속성이 정적이었던 구세대와, 동적인 환경에 익숙하고 그것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신세대는 그 감성과 사고방식, 세계관 등이 매우 다를 것이다. ‘21세기 키드’의 의미는 바로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21세기에 태어나 자란 사람이 이제 10대 후반의 연령대가 되었다. 앞으로 5~10년 뒤면 이들은 우리 사회의 성인층에 편입되기 시작한다. 투표권을 행사하고, 구매력을 발휘하고, 사회 각 부분에서 실질적인 생산 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점점 이 사회의 속성을 변화시키는 흐름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념할 점은 무엇일까?

인문사회 및 과학기술의 세계적 석학들이 모인 싱크탱크‘로마클럽’은 1972년에 인류 문명의 근미래를 암울하게 진단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를 내놓은 바 있다. 당시는 대단히 충격적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불길한 시나리오(자원고갈, 인구폭발, 환경오염 등)가 예상보다는‘천천히’진행되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이다. 어쨌거나 그 보고서의 도입부에는 흥미로운 도표가 하나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람들이 시공간적으로 얼마나 멀리, 또 나중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를 인류통계학적으로 나타낸 ‘인간의 시야’라는 그림이다. 그 그래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공간적으로는 자기 마을, 자기 도시, 자기 나라 이상은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적으로도 1년 뒤, 10년 뒤가 제일 많고 100년 이후 후손들까지 고려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인류 대다수는 원점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으며 이들은 그야말로 자기 입에 풀칠하느라 바쁜, 일터와 집만을 오가며 하루 벌어 하루먹고 사는 고단한 삶의 시야에 갇혀 지낸다. 물론 그런 삶을 살면서도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은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기 가족 정도만 생각하며 1년 이상을 내다보지 못하는 삶의 시야를 가지고 있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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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클럽이 발표한 연구보고서 <성장의 한계>의 표 … 인간의 시야        ⓒ필자 제공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앞서 언급했듯이 21세기 들어 과학기술이라는 환경은 매우 역동적인 성격으로 바뀐 반면 사람들의 시야는 여전히 좁은 차원에 머물러있을 경우 이 둘 사이의 간극은 우리 문명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장전된 총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우리는 발달된 과학기술을 앞뒤 생각없이 사용하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숱하게 경험해오고 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처럼 극적인 사건들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처럼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그렇다. 결국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유토피아적인 밝은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암울한 전망도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역동적인 과학기술을 잘 통제하며 미래의 불길한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 그 방법은 이미 도표에 나와 있다. 그래프 상에서 원점과 가장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시공간적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로마클럽의 보고서에서도 이런 시야를 가진 사람들, 즉‘시간적으로는 몇 세대 이후의 후손들까지 생각하고 공간적으로는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와 그 밖의 우주까지 아울러 사유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람직한 미래 인류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인류가 문명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계속 영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공간적 시야를 넓혀주는 SF

이런 시야는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시야를 담고 있는 스토리텔링을 꾸준히 접하는 것이다. 시공간적으로 확장된 시야, 과학기술의 역동성을 전제로 한 스토리텔링, 바로 이런 분야가 SF이다.

새로운 세기의 매뉴얼로서 SF를 주목하는 이유는 21세기라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형성된 과학기술적 역동성의 시대에‘가능한 미래의 모습들’이라는 스펙트럼을 치밀하게 직조해오고 있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바로 이 점을 진작부터 강조해왔다. 그는 일찍이 주요저서 중 하나인『미래쇼크』(1970)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한 바 있다.

“…학생들에게 역사 과목은 가르치면서 왜‘미래학’과목은 없는가? 우리가 지금 로마의 사회 제도나 봉건시대 장원의 대두를 탐구하듯이 왜 미래의 가능성과 개연성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과목은 없는가?

…SF를 문학작품이 아니라 일종의 미래 사회학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예측의 습관을 길러내는 정신확장력으로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어린이들은 SF를 읽으면서 우주선과 타임머신에 관해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어른이 되어 부딪치게 될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윤리적 문제의 정글 속을 상상력을 발휘해 탐험해 보도록 이끌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SF는‘미래의 나’를 위해 읽혀져야만 한다.”

최근 몇 년 간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서 기성세대가 21세기 세대에 보여주는 것들이라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들뿐이다. 세월호 비극부터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까지, 세상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일상적인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시야가 오히려 좁아질 것을 걱정해야하는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알파고 쇼크나 자율주행차처럼‘4차 산업혁명’을 예감하는 변화는 계속되는데, 사실 4차 산업혁명 담론도 그 실체는 노동 환경의 개악이라는 비판이 이미 제기되고 있다.

한정된 지면이라 많은 얘기를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 21세기 세대는 더 이상 구세대의 자장에 휘둘리지 말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이미 과학기술의 역동성에 익숙한 그들이니만큼, 더 넓은 시야만 갖추면 세상은 곧 그들이 구축할 새로운 이성과 합리성에 따라 기획되고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SF를 읽자.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등등 어떤 형식이라도 좋다.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스토리텔링이 곧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박  상  준 /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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