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호 문화비평: 한류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한류, 사드, 블랙리스트의 정치경제

과거 군사독재 시절 한국의 문화는 척박했다. 검열과 금지가 일상화되고 정부의 3S(섹스, 스포츠, 스크린)정책이 문화를 규제하는 사회에서 문화가 다양하고 풍부해지는 건 불가능했다. 외부에 알릴 문화라는 건 기껏해야 전통으로 치장된 과거의 것이고 현재의 문화는 정부의 허가나 검열을 거쳐야 외부와 소통할 수 있었다. 비민주적인 정권에서 문화의 쇄국정책은 불가피했다.

민주화와 상업화, 한류의 문을 열다

1987년 6월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문화의 숨통이 좀 트였지만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시민들에게만 기회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정권이 통제하던(또는 정권과 거래를 일삼던) 대기업들도 더 많은 자율성을 누리게 되었고, 문화는 기업들의 이윤추구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상업(민영)방송과 케이블 TV 등은 문화산업의 파이를 키웠고 채널들을 채울 많은 문화 콘텐츠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위축된 문화가 갑자기 다양해질 수는 없기에 외국의 문화 콘텐츠들이 수입되고 모방되며 실험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생산된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이 대만과 일본을 거쳐 동남아시아로 퍼지면서 한류가 시작되었다. 1989년에 설립되어 연예인들을 관리하던 SM기획이 1995년에 SM엔터테인먼트로 성장해 아이돌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조건이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 활동하던 양현석이나 박진영이 2001년에 YG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로 회사를 확장한 것도 문화시장의 성장에 힘을 입었다. 대형기획사들의 아이돌 스타 마케팅은 그 규모에 맞는 시장을 필요로 했고, 한류는 그 시장을 넓히는 방법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4 한류백서>에 따르면, 콘텐츠산업 수출액이 54억 달러이고 영화 해외매출이 6천만 달러, 관광한류로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이 1,4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표한 <2014 지구촌 한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101개 국가의 재외공관에서 온라인 회원수를 근거로 집계한 한류 팬은 79개국에 걸쳐 약 2,1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이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1,248개의 온라인 한류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다고 밝힌다. 정말 그 정도의‘류(流)’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한류의 폭은 생각보다 넓다. 한류는 민주화 이후 성장한 한국문화의 자율성이자 그와 더불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한국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다른 한편으로 문화산업으로서의 한류는 신자유주의가 문화에 침투하는 과정이자 아시아 시장이 세계화되는 과정이다. 문화란 이질적인 것을 수용하고 뒤섞이는 과정인데,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특히 친미(親美)와 묘하게 결합된 애국주의는 이 과정을 방해한다.

220-09-1

ⓒ sbs.co.kr

혈맹국과 따꺼 사이에서, 한류는 어디로?

한국 보수세력의 집회에는 성조기가 자주 등장하고, 특이하게도 한국의 보수는 미국의 간섭을 지지하고 때론 미국을 앞세워 자신들을 정당화시킨다. 이해관계가 일치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교역국이 되었다. 1992년 수출 약 26억 달러, 수입 약 39억 달러 규모로 시작된 중국과의 교역은 2016년 약 1,244억 달러, 수입 약 869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반면에 미국과의 교역량은 중국 교역량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한국 경제는 미국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 보인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에도 이런 흐름은 바뀌지 않았지만, 여기에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있다. 한국의 대미흑자는 늘어났지만 무기거래는 교역량에 포함되지 않는다. 차세대 전투기사업을 비롯해 한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무기체계 수입규모는 2014년약 8조 6천억 원, 2015년 약 6조 6천억 원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미국의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인 한국은 경제와 문화 면에서 아시아의 주요 국가로 성장했고 초국적화되었지만 여전히 정치는 미국에 속해 있다.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이고 전시작전권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 해군기지나 사드 모두 한국이 북한을 견제하는 시설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시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북한을 견제하는 것으로 보기엔 그 위치나 규모가 부적절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세계통제전략이 한국을 거쳐 중국을 압박하는 형세이고 한류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모순은 이 점에서 발생한다(해군기지와 K-POP 뮤지엄이 공존하는 제주도는 모순의 돌출점이다). 문화는 국경을 넘나들어도 주요한 정보나 정치적인 결정은 국경에서 차단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드는 모순된 현실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치의 힘이 세다는 점을 증명한 사건이기도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공연하게 북한을 압박하고 있고 한반도 위기설이 외부에서 점점 확산되고 있다. 핵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상 북한은 외국의 압력에 쉽게 굴하지 않을 텐데, 한국은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탄핵요구로 트럼프 행정부와 제대로 협상조차 못하고 있다. 외교문제의 중요한 당사자인 국회를 따돌리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온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사라졌으니 협상의 진도가 나갈 수도 없다. 시진핑이 <별에서 온 그대>를 즐겨 본다고 한반도의 긴장이 사라질까?

한류산업, 블랙리스트의 공모자

그렇다고 흔히 얘기되듯이 한류가 민간외교사절의 역할을 맡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민주화 이후에도 문화에 미치는 정부의 입김이 사라지지 않았고 한류 이후에 그 입김은 더 세졌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세계화’의 문을 열었다면, 김대중 정부는‘신지식인’으로 문화를 부가가치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에서 <디워>로 이어졌던 논란은 우리가 여전히 아메리칸드림에 빠져 있음을 증명했다. 아시아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으로 진출하겠다는 애국주의는 아메리칸드림과 묘하게 뒤섞여 있다. K팝이나 드라마, 예능 등 한류로 표현되는 것들 상당수가 이렇게 뒤섞인 문화인데, 이 혼종성을 한국적인 것으로 미화하고 산업화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문화융성, 창조경제라며 노골적으로 지원한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에서 소위 한류예산이라 불리는 사업들의 규모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작년 11월에 국회가 최순실, 차은택 예산이라고 지적하며 삭감한 문화체육관광부 예산만 약 730억 원이다. 한류예산은 2012년에 이미 3천억 원을 훌쩍 넘어섰고 매년 증가했다. 작년에 YG엔터테인먼트가 경기도 의정부시와 계약을 맺고 추진하는 1천억 원 규모의 K팝 클러스터도 박근혜 정부의 문화진흥, 문화융성사업의 일환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 정책의 첨병인 한류가 정치문제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중국이 사드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기업들을 흔드는 건 어찌 보면 합리적인 전술인 셈이다. 민간의 자발적인 시도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면서 한류는 점점 더 획일화되었고, 그만큼 정부 정책이 문화를 좌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쓸모가 있는 문화와 쓸모없는 문화의 구별이 뚜렷해졌고, 문화산업은 한류를 내세워 공공연하게 정부지원을 요구했다. 9,473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한류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한류산업은 이 블랙리스트와 대비되는 한국정부의 화이트리스트이다.

한한과 혐한, 한류의 도플갱어

사드 이후 중국에서는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령)이 확대되고 있다. 이미 시작되었던 혐한(嫌韓)과 지금 시작되는 한한은 사실 한류의 또 다른 흐름이다. 문화에 국가의 가면을 씌우고 그 확산을 이윤과 애국심으로 즐겼을 때 이미 예견된 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 이후의 한류는 이런 질문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문화의 탈국가적 소비와 수용은 불가능한가? 국가주의, 자본주의의 포섭에서 벗어난 한류란 불가능할까? 그것이 꼭 한류란 가면을 써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정치적인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미국무기의 전시장이나 기지가 아닌 한국, 국경에 가로막히지 않는 문화세계는 불가능한가?

사드로 멈춰진 것은 한류만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준비하던 미세먼지 대책도 중단되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미세먼지는 한국으로 계속 날아오고 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까지 합치면 방독마스크를 쓰고 관람해야 하는 야외공연이 먼 미래의 일은 아니다. 여기에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의 핵발전소 밀집도까지 고려하면 한반도의 미래를 낙관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한(韓)이 아니라 류(流)이다.

하 승 우 /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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