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호 영화비평: <패왕별희 覇王別姬>(1993)] 기의를 잃은 기표,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아름다움의 묘비명

몇 년 전부터인가 재개봉 영화들이 관객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대부분 작은 규모의 멜로드라마나 예술영화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때로 개봉했을 때보다 더 나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다고 한다. 개봉 10주년을 기념하여 2015년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2004)이 대표적이다.

범죄, 액션, 스릴러가 지배하는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감성적인 멜로드라마를 구경한 게 언제인지 아득해지는 걸 보면, 대부분의 재개봉 작이 왜 멜로드라마인지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이터널 선샤인>처럼 주로 개봉한지 10년 내외의 영화들이 대부분이지만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1988)처럼 사반세기만에 재개봉(2013년)한 영화도 더러 있다. 첸카이거(陳凱歌) 감독의 <패왕별희 覇王別姬>(1993)도 24년 만에 재개봉하는 영화다. 또한 이번 4월 1일은 이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 장국영(張國榮)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지 꼭 14년이 된다. <패왕별희>와 장국영을 추억하는 관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고, 이 영화와 그를 잘 모르는 젊은 관객에게는‘전설’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치와 역사가 거세된 예술

결론부터 말해 <패왕별희>는 역사성과 역사의식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별로 할 말이 없는 영화다. 영화는 마치 편년체 역사서처럼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중요한 연도를 자막으로 표시하며 진행된다. 1937년 중일전쟁 전야, 1945년 일본 항복, 1949년 공산당 북경 입성, 1966년 문화혁명 시작…. 그런 점에서 첸카이거 감독의 라이벌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패왕별희>가 나온 이듬해에 연출한 <인생 活着>(1994)과 닮아 있다. 이 영화 역시 1940년대 국공내전, 1950년대 대약진운동, 1960년대 문화혁명 식으로 이어진다. <패왕별희>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극을 지켜내려고 하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그림자극을 지켜내려고 한다. 그러나 두 영화가 역사와 예술을 그리는 방식은 좀 다르다. <인생>에서 그림 자극은 중간중간에 잊을 만하면 나오는 정도지만 <패왕별희>에서 경극은 역사에 앞선다. <인생>은 그림자극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한다. 그것은 국민당군이나 공산당군 앞에서는 사기를 북돋워주는 정치적 도구가 된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엔 인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오락이 된다. 그러다가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낡은 전통으로 비판받을 것이 두려워 슬그머니 소각된다.

<패왕별희>에서 경극은 그렇지 않다. 데이(장국영)와 샤오루(장풍의)는 중일전쟁 전야에 대형 일장기와‘대동아공존공영’이 적혀 있는 현수막 앞에서도, 건국 전야에 인민해방을 부르짖는 공산당군 앞에서도 경극을 공연한다. 물론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서 경극은 낡은 구습으로 치부되고 그들은‘문화계의 요괴’로 비판받는다. 어린 시절 경극학교에서부터 평생을 같이 한 데이와 샤오루가 오직 생존을 위해 서로를 물어뜯듯이 비난하는 장면은 너무 참혹하여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런데 샤오루가 데이를 비난하며 늘어놓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예술의 정치적 도구화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예술의 질긴 생명력을 깨닫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데이는 경극에 미친 자예요. 그는 일본군, 장개석군, 반동 자본가 앞에서도 노래했어요.” 사실 일본군과 국민당군 앞에서 공연한 것은 데이만이 아니라 샤오루 자신도 해당된다. 그러나 데이가 경극으로부터 멀어진 적이 없는 데 반해, 샤오루는 데이만큼 경극을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연인이자 나중에 부인이 되는 쥬산(공리)이 경극을 좋아하지 않은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샤오루에게 동성애적 감정을 갖고 있으나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데이가 잠시나마 마음을 주는 원대인(갈우)은 경극 <패왕별희>의 한 대목에서 초패왕이 몇 걸음을 걸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정도로 경극에 조예가 깊다.

첸카이거는 데이를 통해 예술(경극)이 정치와 역사보다 길고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인생>에서 예술(그림자극)은 정치와 역사의 도구가 되지만 <패왕별희>에서 정치와 역사는 예술을 위한 병풍이 된다. 그리고 예술로 대변되는 데이의 삶은 정확히 배우이자 자연인으로서의 장국영의 삶과 겹쳐진다.

영화비평 사진2

ⓒwww.imdb.co

우희-데이-장국영, 그 처연한 아름다움

<패왕별희>의 출연 섭외를 받았을 때 장국영은 동성애적 성향을 전면에 드러내는 데이의 이미지가 부담스러워 처음엔 출연을 망설였다고 한다. 사업가 당학덕과 아직 연인 관계를 드러내지 않았던 그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영화에서도 데이는 어린 시절부터 경극 <패왕별희>의 한 소절“나는 본래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데…”를 거꾸로“나는 본래 사내아이로서 계집아이도 아닌데…”로 읊는다. 그는 이 때문에 사부한테 늘 호되게 혼난다. 어쩌면 그것은 데이가 자신이 갖고 있는 여성성을 감추고 부정하려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 소절을 정확하게 읊게 되는 것은 샤오루가 막대기로 데이의 입 속을 헤져 놓은 직후이다. 그것은 명백하게 강간 혹은 거세를 연상시킨다. 또한 데이는 역시 성 정체성이 모호한 장내시에게 말 그대로 강간당한다. 이후로 그가 보이는 모든 행동은 여성적이다. 그는 샤오루의 사랑을 구하며 샤오루가 사랑하는 쥬산을 질투하고 마치 스폰서를 등에 업은 여배우처럼 원대인의 후원을 얻는다. 여자처럼 다리를 꼬고 손짓 하나하나에도 우아하고 섬세한 기운이 느껴진다.

경극 <패왕별희>에서 초 패왕의 후궁 우희는 한 유방의 공격이 절정에 이르러 초나라가 멸망할 때가 되자 패왕의 칼로 자결을 결심한다. 그것은 평생 한 남자만을 섬기고 그를 위해 절개를 지키는‘동양 여성(Oriental woman)’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그 역할이 여배우인 공리가 아니라 장국영에게 맡겨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리는 장이머우의 초기 영화(<붉은 수수밭 紅高梁>(1988), <국두 菊豆>(1990) 등)에서 중국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여성을 연기했다. 물론 이 역시도 동양을 원시적 열정(Primitive passion)으로 포장하는 한 방식이었지만 그럼에도‘나비 부인’을 연상시키는 수동적 동양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남자에 대한 절개, 예술(경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은 동양을 역사와 정치가 거세된 예술의 물신화로화하게 만든다.

중국의 영화학자 다이진화(戴錦華)는『무중풍경: 중국영화문화 1978~1998』(산지니, 2007)에서 <패왕별희>가 지나칠 정도로 분명하게‘중국’을 가리키고 있지만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며, 중국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기의를 잃어버리고‘비어있는 기표’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비어있는 기표가 물신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희-데이-장국영이 겹쳐지는 경극-예술-영화의 물신화에 다름 아니다. 우희가 패왕을 죽음으로 섬기듯이, 또한 데이가 경극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샤오루에게 매달리듯이, 이 가련한‘동양 여성’의‘교태’가 향하는 곳은 중국의 인민이 발 딛고 서있는 역사가 아니라 칸 국제영화제로 대변되는 서구의 예술장(Champs)이다. 제도와 행위자들 사이에 힘겨루기가 판치는 그곳 말이다. 그런 점에서 첸카이거가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의 기존 이미지에 기대어 그의 이미지를 착취하고 있다고 한 어느 영화평론가의 말은 정확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기억은 생각해 낼 수 없다고 했던 장국영은 자신을 사랑해준 유모가 자신을 가장 많이 이해해준 가족이라고도 말했다. <패왕별희>의 초반부, 육손이라 경극을 할 수 없다며 박대를 당하자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비정한 어미의 모습. 그래서 어머니와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편을 탐닉하던 데이가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 그를 달래는 쥬산에게‘엄마’라고 중얼거리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것은 그대로 장국영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라이벌 장이머우가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귀주 이야기 秋菊打官司>(1992)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던 첸카이거는 <패왕별희>로 드디어 1993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우희-데이-동양 여성으로 분한 장국영이 서구를 향해 저 처연한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대가였다.

정 영 권 /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강사

* 장국영의 삶과 관련해서는 이상용 외, 『장국영: 천상에서 해피 투게더』(media 2.0, 2003)에 수록돼 있는「장국영의 삶」(김혜선)을, 첸카이거가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의 이미지를 착취했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은 같은 책에 수록돼 있는「장국영 in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 <풍월>」(김성욱)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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