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호 테마서평: 트라우마와 치유] 사회적 트라우마와 문학의 물음

『마지막 테우리』(현기영, 창비, 1994)
『소년이 온다』(한강, 창비, 2014)
『거짓말이다』(김탁환, 북스피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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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침몰한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의 흐름을 짐작케 하듯 녹슬고 낡은 거대한 선체를 보며 사람들은 이 참혹한 사건이 일상의 시간에 남긴 파장을 되새긴다. 세월호를 바라보며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은 그동안 이 사건을 잊은 적이 없음을, 또한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 역시 늦춰진 적이 없음을 실감한다. 진은영의 전언대로 참사 이후 3년여의 시간은 희생자 가족과 선량한 시민들이 “본 것과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참사의 진실을 검토하고 밝히려” 노력했던 시간인 동시에 “진상규명을 원하는 모든 이들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의 상태에 감금하려는” 온갖 정치적인 시도가 횡행했던 시간이었다.(진은영, 「무능력의 정치학을 넘어서」, 『한겨레신문』2017년 3월 28일자) 삼 년이나 연기되었던 세월호의 인양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 작동해온 여러 가지의 구조적인 폭력의 실제 양상과 그것에 갇히지 않으려는 분투의 시간들을 동시에 되새기게 한다.

개인의 삶과 연동된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는 그 사건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진상규명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레나타 살레츨(Renata Salecl)은 트라우마의 대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현상 중의 하나로 ‘불안’을 거론한다. (레나타 살레츨, 『불안들』, 박광호 역, 후마니타스, 2015) 살레츨은 정신적 외상이 야기하는 부인과 부정, 무시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불안의 양상이 이제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의 국면을 열어줄 가능성에 대해 강조한다. 흔히 사회적인 관점에서 불안은 사람들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경계하고 통제하려는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근본적인 의미에서 불안은 사람들이 세계와 관계 맺는 데 매개가 되는 바로 그런 조건이기도 하다. 각종 사회적 불안들을 봉합하고 통제하려는 정치적 시도들이 출현하는 그 자리에 역설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문학이 탐구하는 사회적 트라우마 역시 빠른 해결책으로 문제를 봉합하려는 ‘기억의 타살’(현기영)에 맞서 적대와 균열, 새로운 틈새와 불안의 양상들을 목도하고 성찰하려는 움직임과 연동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케테 콜비츠, , 1942, 석판화, 49x62.4cm

ⓒ케테 콜비츠,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1942, 석판화, 49×62.4cm

 

4.3의 문학적 현재성 : 현기영,마지막 테우리

국가적 폭력이 남긴 정신적 외상의 문제를 서사화한 여러 작품들에서도 현기영의 『마지막 테우리』는 각별한 현재성을 갖는다. 이 소설은 78세의 테우리(목동) 고순만의 삶을 통하여 제주도 4.3사건이 공동체의 삶 속에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를 섬세하게 추적한다. 1948년 4월 3일 군, 경찰, 서북청년단의 끔찍한 잔혹 행위가 배경이 되어 3만에서 5만 가까이의 사람들이 희생된 4.3사건의 역사는 우리의 문학사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주인공 고순만 노인 역시 4.3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전달해주는 인물이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 그 어느 쪽으로도 쉽게 몰아갈 수 없는 경계의 인물인 고순만은 드넓은 초원의 평화와 힘껏 뛰노는 마소를 사랑했던 평범한 테우리였다. 지금 노인이 된 고순만은 도살한 소 이야기며, 죽인 소가죽을 덮어쓰고 다녔던 4.3 당시의 체험들을 청년에게 모험담처럼 ‘증언’하지만 정작 중요한 비밀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토벌대의 강압에 못 이겨 입산자 가족들이 숨어있던 굴을 가르쳐주고 만 그 끔찍한 순간의 기억은 그가 지금의 초원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소설 전반부에서 서정적인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고순만의 감성적 세계는 ‘가슴 속에 마르지 않는 찬 샘을 갖고 있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는 잔잔한 슬픔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슬픔은 사실 그 밑바닥에 ‘무서운 격정’과 불안을 감추고 있다. 그것은 노인이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트라우마에 연동되는 감정의 세계이다. 이 소설이 끝까지 비밀을 발설할 수 없는 노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부각하는 장면은 소설의 배경인 드넓은 초원이 포클레인과 골프장으로 뒤덮이는 변화과정과 겹치면서 중층적인 울림을 형성한다. 그것은 역사적 비극이 개인의 내면에 어떠한 방식으로 현재화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18 광주와 증언의 발화 : 한강, 소년이 온다

현기영이 4. 3 사건을 두고 ‘기억의 타살’로 명명한 민중적 기억의 공적인 말살 과정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에서도 참담하게 반복된다. 1980년의 5월 광주는 “개인을 넘어 집단적이고 대사회적인 차원에서 행해진 참극”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잠재적인 원상(寃傷)”(김정숙, 「5.18 민중항쟁과 기억의 서사화」,『 민주주의와 인권』, 2007.4, 193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트라우마와 애도의 주제를 서사화할 때 작가들이 실감하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희생자, 피해자의 증언을 중심에 둔 서술방식에 대한 고민이라 할 것이다. 증언이 불가능해진, 그러나 엄연히 실재하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려는 기록의 분투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넘어 새로운 감각의 경계를 개척하려는 문학의 언어는 인간 행동의 다양한 지점들을 포착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국가적인 폭력과 민간인의 희생참사가 새겨진 역사적 연대기들을 다루는 방식일수록 그러한 다층적인 형상화가 섬세한 방식으로 요구된다. 더욱이 분단현실이라는 특수한 체제의 제약 속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역사가 개인에게 남기는 트라우마의 문제는 복합적으로 고찰될 필요가 있다.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는 학살과 고문의 피해자들, 목격자들을 다양한 목소리로 교차시켜 5월 광주의 기록을 되살려낸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서술방식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특징은 비가시적인 존재들의 증언까지도 환상의 형식을 통해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광주항쟁의 현장에서 출발하지만 80년대 중반과 90년대, 2000년대를 거쳐 각각 다른 연대기를 교차해놓는 서술 방식은 ‘광주’가 과거에 박제된 기억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준다. 소설에서도 직접적으로 설명되듯이 ‘광주’의 참상은 역사적 시공간을 가로질러 ‘베트남전’과 ‘관동과 난징’ ‘보스니아 내전’ ‘제주도 4.3’ ‘용산’과 연결된다. 목소리 그 자체를 생생히 부각하는 발화의 방식을 통해 증언을 현재화하는 이 소설은 말하기와 듣기, 질문과 대답의 대화 구조를 통하여 트라우마의 현재성을 거듭 문 제삼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소년’의 무덤을 찾아가는 ‘나’의 존재 역시 역사적 기억을 현재로 끌어오려는 강력한 열망을 반영한다.

세월호이후의 문학: 김탁환, 거짓말이다

한강의 소설에서 본 것처럼 증언의 진정성은 역사의 현재성을 강조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역사적 시간들의 ‘차이’에 대한 문학적 고찰은 일정한 객관화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현재의 문학적 응전은 증언과 기록의 축적에 당분간 집중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김탁환의 『거짓말이다』가 분명하게 일러주는 것 역시 진상규명의 작업과 함께 할 때만 애도와 치유가 가능하다는 진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적 고양과 분노가 세월호라는, 그리고 민간 잠수사 김관홍의 삶이라는 실제 사실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을 끌고 가는 발화자의 뚜렷한 ‘관점’ 자체가 이 소설의 고유한 개성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르포르타주에서 가장 핵심적인 ‘특정한 관점’을 지닌 ‘특정한 재현’이 이 소설에서는 매우 효과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강력한 증언의 힘을 개방적으로 살려낸 이 작품에서 기록의 세계는 인물을 얽매지 않고 오히려 서사를 열려있게 만든다. 소설은 잠수사의 증언을 전적으로 부각하는 대목과 그 증언을 무력화하는 각종 공적 ‘거짓말’의 세계에 대한 기록이 교차하는 방식을 통해 선명한 주제를 발신한다. ‘피해자’ 혹은 ‘희생자’의 고통에 대한 감정적 몰입을 넘어서 이 작품이 진전시키고 있는 중요한 지점은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생존자가 겪는 고통과 갈등에 대한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주목이라고 할 것이다. 상실과 죄의식의 모호한 감상적 변주에 갇히지 않고 기록의 힘을 통해 소설의 육체를 쇄신하는 이러한 서사적 분투는 우리 문학에서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말미에서 “인양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지요”(358면) 라는 주인공의 전언은 지금 이 시점의 현실에서 거듭 중요한 의미로 와 닿는다. 더불어 “세월호참사가 우리 사회의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어요.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는 그런 전환점”(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창비, 2016, 126~7면)이라는 학생들의 간절한 발화 역시 이 자리에서 문학이 껴안아야 할 질문으로서 함께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백지연 | 문학평론가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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