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호 인문학술: 밈(meme)] 밈으로 세상보기: 이기적 ‘밈’이 한류를 만들다

밈은 1974년 생물학자가 정의한 개념으로 밈을 다루는 학문은 밈학, 밈과학이라 불렸다. 그러나 2017년에 밈은 문학 작품, 철학, 사이버 공간을 읽어내는 연구에서 쓰이고 있다. 과학뿐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는 것을 보면 밈학이 좀 더 적절한 용어로 보인다.오늘날 학문의 추세는 각자의 전공 학문을 넘어서는 융복합 학문이다. 과학학술에서 시작해 인문학술로 이어지는 밈의 내용은 어떻게 학문들을 아우르느냐는 물음에 작은 대답이 될 수 있다. 이에 본보는 밈의 개념과 특성, 적용분야의 하나로써 한류를 살펴보며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meme)이란 무엇인가?

‘밈’은 문화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문화의 ‘전달’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다. 밈이론(Memetics)의 창시자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보내질 수 있는 실체로서 밈을 정의한다. 노래 곡조, 아이디어, 캐치프레이즈, 의상, 패션, 항아리 또는 아치를 만드는 방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유전자가 정자와 난자를 통해 사람의 몸에서 몸으로 번식하듯 밈은 모방을 통해 사람의 뇌에서 뇌로 번식한다. 예를 들어, 과학자가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면, 자기 동료나 학생들에게 그 개념을 직접 전달하기도 하고, 기사를 통해 간접 전달하기도 한다. 개념이 알려지는 순간, 그 개념은 사람의 뇌에서 뇌로 퍼져나가며 번식한다.

그럼 ‘밈’이란 단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도킨스는 문화의 ‘전달’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하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모방이라는 뜻이 함축된 ‘미메메’(mimeme)는 이에 적합한 그리스어 어원이다. 그러나 유전자 ‘진’(gene[dƷi:n])처럼 짧게 소리 나는 단음절어를 그는 원했다. 그래서 ‘미메메’를 줄여서 ‘밈’이라고 부르게 된다. ‘기억’ 또는 프랑스어의 ‘멤’(même)과 같은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다윈 이후 50년, 볼드윈(Mark Baldwin)은 ‘모방’과 ‘가르침’에 의해 개인이 사회로부터 배우는 삶의 방식들을 서술하기 위해 ‘사회유전’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다. 진화심리학자인 캠벨(Donald Campbell)은 1960년대 초 ‘문화복제자’라는 이와 유사한 개념을 개발하고, ‘기억소’라는 단어를 도입한다. ‘문화유전자’라는 개념은 특히, 북미 사회생물학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처럼 기존의 문화를 보고 모방한다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도킨스가 이를 ‘밈’으로 명명하면서 그 개념이 널리 대중화되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밈의 유형 구분 또한 마찬가지다. 인류학자인 클로크(F.T. Cloak)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를 ‘i-문화’와 ‘m-문화’로 구분했다. ‘i-문화’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설명서(instruction)로 정의되었고, ‘m-문화’는 사람의 행동, 테크놀로지, 사회적 유기체의 모습(material)으로 정의되었다. 도킨스는 이들 i-문화와 m-문화에 각각 ‘유전자형’(genotype)과 ‘표현형’(phenotype)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주는 사례다.

데닛(Daniel Dennett)은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의 맨 처음 네 음절 ‘다, 다, 다, 덤’(da, da, da, dum)을 대단히 성공적인 밈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교향곡 <운명>의 곡 전체를 기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운명>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이 네 음절을 노래한다. 뇌 속에 복제되어 있던 유전자형 ‘다, 다, 다, 덤’이 <운명>하는 소리를 들으면, 겉으로 드러나 ‘표현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 다, 다, 덤’ 네 음절이 밈인가, 5번 교향곡 <운명> 전체가 밈인가? 블랙모어(Blackmore)는 네 음절이 너무 짧아서 밈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천재 음악가가 이 네 음절을 가지고 멋진 교향곡을 시작한다면, 그래서 그의 작품이 매스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살아남는 행운을 얻게 된다면, 이 4개의 음절은 글자 그대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의 귀에 들려지게 되고, 또 기억되게 될 것이다. 블랙모어는 이것을 단위의 크기가 밈의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로 활용한다.

얼핏 보기에 밈은 충실한 복제자로 보이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어떤 아이디어를 듣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때, 대부분 아이디어의 내용을 조금씩 바꿔서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에 맞게 아이디어를 뒤틀고, 강조점을 바꾸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함께 섞는다. 따라서 밈은 변화된 형태로 전달된다. 그렇더라도 양질의 밈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 즉 ‘충실성(fidelity), 다산성(fecundity), 장수성(longevity)’을 갖춰야 한다.

X형과 Y형 두 분자가 같은 시간의 길이를 살고, 같은 비율로 복제를 한다 해도, Y가 100회에 한 번 오류를 범하고, X가 평균 10회에 한 번 오류를 범한다면, Y는 분명히 엄청난 숫자로 늘어날 것이다. 복제의 ‘충실성’ 때문이다. 밈의 개체군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것은 복제의 속도다. 이를 ‘다산성’이라고 한다. 만약 A분자가 평균 주 1회 복제하고, B분자가 시간당 1회 복제한다면, A분자가 B분자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해도, A분자는 B분자에 비해 수적 열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유전자’와 ‘밈’, 두 가지를 남기고 간다. 우리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유전자 기계다. 그러나 3세대가 지나면, 우리의 유전자 전달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얼굴의 윤곽, 음악적 재능, 머리카락 색깔 등이 우리의 자식, 손자까지는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유전자의 영향력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유전자가 죽지는 않지만, 유전자 컬렉션이 사라져간다. 복제, 번식작용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남기거나, 음악을 작곡하고, 점화플러그를 발명하고, 시를 쓰는 등 세계 문화에 기여하게 된다면, 우리의 업적은 우리의 유전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오래도록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밈의 ‘장수성’이다.

 

밈의 본성과 복제의 성공도

우리는 밈에게 ‘복제를 멈추라’고 명령할 수 없다. ‘천천히 가라’고 명령할 수도 없다. 밈은 생명과 그 자신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밈은 복제자다. 기회만 있으면 언제라도 그 수를 증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밈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복제를 위한 기회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밈으로 하여금 이처럼 보다 많은 자신의 복제물을 생산하게 하는가?

유전자의 상호 관계 작용은 자아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자아실현은 이기적 성향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유전자의 자아실현 작용을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고 부른다. 유전자는 자신의 보존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적인 작용을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유전자는 ‘가치’로 선택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에 대해 ‘이기적인, 잔인한’ 등과 같은 형용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성생식에서 각각의 유전자는 대립유전자와 염색체 상의 동일한 위치를 놓고 경쟁한다. 대립유전자의 희생을 전제로 유전자는 염색체 상의 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밈은 자기들끼리 어떻게 경쟁하는 것일까? 대립형질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밈을 ‘이기적’ 또는 ‘무자비한’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대답은 ‘예’다. 밈은 서로 상대와의 경쟁을 탐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다. 여기서는 시간이 저장 공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제한적 요소로 치열한 경쟁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뇌와 뇌의 조종을 받는 사람의 몸은 하나 또는 몇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특정한 밈이 뇌의 주의력을 독점한다면, 이는 경쟁 밈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유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실어 나르는 몸을 조작하고, 연출하듯이 밈 또한 마찬가지다. 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작동한다. 경쟁 밈을 이기고 복제를 성공하는 것이 밈이 추구하는 이익이다.

그렇다면 밈의 복제 성공도는 어떻게 측정될 수 있는가? 복제된 형태로 살아남는 능력에 의해 측정된다. 밈 운반자(vehicle)의 성공 또한 운반자가 실어 나르는 복제자를 증식시키는 능력에 의해 측정된다. 만약 밈이 과학적인 아이디어라면, 밈의 보급률은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이 이를 수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밈의 생존율은 얼마나 많은 과학저널에, 얼마나 많이 그 밈이 거론되었는가를 세어보면 알 수 있다. 만약 밈이 유명한 노래 곡조라면, 밈의 전파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느냐를 보고 측정할 수 있다. 만약 밈이 숙녀화의 디자인 스타일이라면, 밈 학자는 구둣방의 매출 통계수치를 이용할 수 있다. 매출의 많고 적음이 스타일의 성공도를 측정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기적 이 한류를 만들다

밈은 유전자의 발명품이다. 드라마와 같은 밈 운반자를 해외시장에 직접 실어 나른 방송마케터들의 자아실현 본성, 즉 이들의 이기적 본성이 ‘한류유전자’다([그림 1], [그림 2] 참조). 한류밈은 이들이 낳은 발명품이다. 한류는 방송콘텐츠의 해외수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방송마케터들의 이기적 본성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한류는 없다. 이처럼 한류유전자는 유기체 ‘한류’를 발현시키고, 유기체 한류는 한류밈을 생성, 저장, 운반한다. 그러면서 한류밈은 유기체 한류에 영향을 주고, 한류유전자인 한류의 발현 동인에도 영향을 준다. 한류밈은 한류를 수용하는 세계인 특히, 아시아인들의 머릿속에 한류가 어떤 ‘정보’, 어떤 ‘개념’으로 살아있고, 이것이 복제를 통해 어떻게 현실화하는지, 그 모습까지를 총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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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한류유전자 트리 (출처: 한류의 흥행 유전자 밈,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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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유기체 한류의 통시적 진화구조 모형 (출처: 한류의 흥행 유전자 밈, 68쪽)

 

 

한류밈은 ‘애니메이션․드라마․대중음악․영화․게임’ 등 한류 중심소재영역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밈들의 복합체다. 한류밈은 이들 개별 단위 밈복합체들을 계열체로 하는 통합체적 성격의 초밈복합체(super memeplex)다. 교회를 건축물, 제의식, 법, 음악, 미술, 그리고 성문적 전통으로 조직화된 상호 보완적인 밈들의 안정된 세트(co-adapted stable set)로 인식하듯이, 한류밈 또한 이들 중심 소재영역들을 운반자로 하는 한국 대중문화 밈들의 ‘잘 어우러진 안정된 세트’다. 다시 말해 ‘한류밈의 구조’([그림 3])에서 보듯이 초밈복합체인 한류밈은 단위 밈복합체인 드라마, 대중음악,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 한류 중심소재영역들을 1차 계열체로 하고, 이들 개별 단위 소재영역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밈들을 2차 하부 계열체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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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한류밈의 구조(출처: 한류의 흥행 유전자 밈, 60쪽)

 

중국의 한 언론은 ‘한류’하면 ‘평민화(平民化; 보통사람들의 이야기), 진실, 정직, 유행선도, 선량함, 화목, 편안함, 아름다움’ 등 8가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또 어떤 중국인 학자는 ‘한류’하면 ‘노인공경, 어린이사랑, 교육열, 경제발전’ 등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처럼 아시아인들이 ‘한류’하면 떠올리는 이 단어들이 ‘한류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한류밈이 모두 K-드라마가 실어 나르는 ‘K-드라마밈’이라는 사실이다. K-드라마는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밈을 가지고 있다. 한류밈은 그 밈들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다. 강한 유전자가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하듯이, 복제 확산 욕구가 강한 밈은 그 힘만큼이나 겉으로 드러내 보이려는 경향성이 강하다.

이들 밈이 오늘의 ‘한류’를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은 K-드라마가 실어 나르는 유가적 가치가 1990∼2000년대 척박한 환경에서 살던 아시아인들에게 그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특별한 자아실현 요소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최적자의 삶을 갈망해온 아시아인들의 이기적 본성은 복제, 확산 욕구로 충만한 K-드라마밈, 한류밈의 이기적 본성과 조우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시아인들은 한류밈의 유가적 가치를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하게 된다. 한류는 이렇게 탄생했다. 혹자는 이를 ‘우연’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아마도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한류밈의 복제 성공도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밈 운반자인 K-드라마의 수출이 해를 거듭하며 얼마나 많이 증가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드라마 수출이 증가한다는 것은 해외시장이 K-드라마밈을 계속해서 강하게 소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 <질투>(1992, 최수종, 최진실 주연)와 대하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1992, 채시라, 최재성 주연)가 처음으로 수출된 1993년 우리나라의 방송콘텐츠 수출액은 132만 달러였다. 그로부터 6년 뒤 신조어 ‘한류’가 중국의 일간신문 《북경청년보》에 처음 등장한 1999년 수출액은 1,273만 달러, <겨울연가>(2002, 배용준, 최지우 주연) 신드롬이 절정을 이뤘던 2005년 수출액은 1억2천만 달러였다. 다시 말해 13년 동안 한국의 드라마 수출은 무려 90.9배의 놀라운 수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그 결과는 2002년 한국을 문화수입국에서 문화수출국으로 변신에 성공하게 한다. 이런 수치적 증가가 바로, 한류밈의 복제 성공도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해주는 근거가 된다.

밈은 미래를 계획하지 못한다; 한류는 어떻게 될까?

밈은 맹목적인 복제자다. 이기적일 뿐 아니라, ‘예지’를 갖고 있지 않다. 밈은 미래를 계획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밈의 복제, 확산이 낳은 문화현상, ‘한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밈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다. 인간은 눈앞의 이익이나 욕심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도록 마음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필요하다면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교화하고, 이기적 밈을 조종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진화생물학에서 ‘이타’는 타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다. 도킨스는 ‘이타’를 행위의 결과가 가상적 이타주의자의 생존 가능성과 가상적 수익자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거나 높여주는 것과 관련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행위의 결과가 가상적 이타주의자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고, 가상적 수익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을 ‘이타’라고 본다.

1914년 인듀어런스(Endurance)호를 타고 영국을 출발해 남극 횡단에 나섰던 섀클턴 경 (Sir Ernest Shackleton)과 그의 탐험대원들이 쓴 일기를 엮은 알프레드 랜싱(Lansing)의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는 생존을 넘어 공존에 이르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이타’를 보여준다. 인듀어런스호는 부빙군(浮氷群)에 갇혀 침몰해간다. 탐험대원들은 급히 인듀어런스호를 탈출했고, 이들의 절박감은 의사 맥클린(Macklin)의 일기에 잘 나타나있다. 우유를 엎지른 슬픔에 1등 항해서 그린스트리트(Greenstreet)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생물학자 클라크(Clark)는 아무 말 없이 다가가 그린스트리트의 잔에 자신의 우유를 따라 주었다. 그러자 선장 워슬리(Worsley)와 맥클린, 1등 기관사 리킨슨(Rickinson), 2등 기관사 커어(Kerr), 모터전문가 오들리(Orde-Lees), 주방보조 블랙보로(Blackboro)도 조금씩 자신의 우유를 그린스트리트에게 부어주었다. 그들은 말없이 남은 우유를 마셨다. 먹을 것도 없이 죽음을 목전에 둔 그들이 이렇게 서로를 위해 행한 ‘이타’는 마침내 634일이라는 생사를 넘나드는 빙판 위에서의 악몽을 떨쳐버리고, 전원 생환이라는 세기의 기적을 일궈낸다. 남극 횡단에는 실패했지만, 섀클턴의 탐험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타’는 생존을 넘어 ‘공존’에 이르는 위대한 문화적 진화 이데올로기다.

한류가 행해야 할 ‘이타’는 세계인, 특히 아시아인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타자인 세계인, 특히 아시아인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결국, 우리의 생존을 위한 가치이기도 하고, 동시에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한 유전자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비록 밈이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결국, ‘한류’의 운명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는 이기적 밈을 조정할 수 있는 위대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중문화로 전 세계 온 인류가 유가적 가치인 ‘인’(仁) 밈과 기독교 신학적 가치인 ‘사랑’ 밈으로 하나 되는 ‘한류대동사회‘, ‘한류토피아’(Hallyutopia)의 세상에 이르게 될 그날을 기대해본다.

 

박장순 |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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