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호 인문학술2: 두 명의 Simone] 윤리적 실존주의자, 시몬 드 보부아르

보부아르에 대한 최근까지 오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와의 파격적인 계약 결혼을 비롯해 화려했던 연애 경력, 그리고 전 세계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던『제2의 성』(1949)의 작가이자 여성해방운동의 선봉에 섰던 페미니즘 투사 등과 같은 예사롭지 않은 삶의 이력으로 인해,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의 사생활은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보부아르를 향한 관심이 지나치게 그녀의 사생활에만 집중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녀가 평생에 걸쳐 발전시켜 온 실존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지닌 독창성을 무시한 채, 그녀의 사상을 단순히 사르트르 실존주의를 요약 또는 반복한 결과물, 그 이상의 것으로 보려하지 않는 경향이 최근까지 대세를 이루어왔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보부아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삶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보편적인 실존에 대한 성찰로 발전시켜 나갔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작가로서의 소명 의식그리고 사르트르와의 만남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정의 장녀로 태어난 보부아르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의 애정을 가부장적이면서 기독교적인 부르주아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억압으로 인식하고 그들과의 극심한 갈등을 경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는 독서를 통해 부모가 만든 세계 이외의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승화해 나갈 수 있는 길 역시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그녀가 책을 읽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철학 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보부아르는 모든 개별성을 아우르면서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학문으로 철학을 인식하고 매력을 느낀다. 그에 따라 그녀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가들의 철학을 파고들면서 훗날 자신만의 철학 사상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학문적 토대를 쌓아 나간다. 또한 당시 고등사범학교에 다니던 사르트르를 비롯한 폴 니장과 게오르크 폴리처 등의 남학생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쌓으면서, 당시에는 아직 정식으로 프랑스에 소개되지 않았던 헤겔과 마르크스의 일부 이념들 역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더불어 문학계에 등장한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전통적 사회 체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역시 키워 나간다.

1929, 보부아르는 사상 최연소 합격자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면서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해 10, 드디어 사르트르와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년 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하되 다른 이들과 우발적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을 서로에게 허용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한 계약 결혼에 합의한다. 그리고 사르트르가 죽음에 이른 1980년까지, 5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그녀는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보부아르에게 있어서 사르트르와의 만남은 무엇보다도 그녀가 작가로서의 진정한 소명 의식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오직 문학을 통해서만 존재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르트르의 확고한 신념을 접하면서 보부아르는 자신이 이제까지 단순히 자신의 삶을 표현하기 위한 소극적인 수단으로만 글쓰기를 간주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자신의 존재 방식 자체와 동일시되는, 적극적인 행위로서 글쓰기를 사고해야겠다는 각성을 하기에 이른다.

202-05-1

실존의 윤리에 대한 철학적 성찰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르트르와의 관계는 보부아르에게 있어서 평생 짊어져야만 했던 인생의 굴레이기도 했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지성인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사르트르의 연인이라는 사실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사상과는 구분되는 실존에 대한 자신만의 성찰을 꾸준하게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은 잊혀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물론 사상적인 면에서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와 교류하면서 그의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실존주의 사상은 결코 사르트르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보부아르는 특히 인간존재가 세계 내 존재로서 타인과 맺을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상에서 타인의 존재는 주체로 존재하던 나를 객체로 전락시켜 나의 실존을 애매한 상태에 빠뜨리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자, 나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주된 방해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홀로 존재하기란 결코 불가능하며, 존재하는 한 인간은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다. 이러한 실존 조건은 필연적으로 나와 타인의 자유가 서로 충돌하도록 만들어 인간존재 사이에 갈등을 야기한다. 『존재와 무』(1943)에 집약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갈등을 인간존재가 필연적으로 경험하기 마련인 존재론적 숙명으로 규정하는 데 관심을 둔다. 그러나 이와 달리,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는 갈등 관계를 넘어서 인간존재들이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즉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는 인간의 존재 원리를 규명하는 것에 기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는 사르트르의 존재론적 실존주의와는 달리, 인간이 윤리적 실존을 영위할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하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윤리적 실존주의라고 규정될 수 있다.

보부아르가 윤리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전쟁의 경험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개인의 자유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며, 그것의 온전한 구현만을 유일한 행복으로 간주하던 보부아르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을 하루살이의 운명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역사의 힘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그녀는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자유가 함께 구현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참여지식인으로서의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지니게 된 결과, 인간의 존재 원리를 탐구하고자 했던 그녀의 철학적 관심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운명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이 영위할 수 있는 윤리적인 실존 방식에 대한 탐구로 옮겨가기에 이른다. 보부아르의 작품들 가운데『피뤼스와 시네아스』(1944),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1947), 『제2의 성』(1949), 그리고『노년』(1970)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철학 작품들은 보부아르의 윤리적 실존주의에 대한 사유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이 작품들을 통해 보부아르가 이야기하고 있는 윤리적 실존주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타인과의 공존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실존 조건하에서 개별적인 실존 주체로서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둘째, 하지만 타인과의 공존이 서로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상생의 수준으로 발전되었을 때 개개인이 구현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는 확장될 수 있다. 셋째, 따라서 자유로운 주체로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그가 기울이는 모든 존재론적노력들은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식을 찾기 위한윤리적노력들과 사실상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즉 보부아르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이 애초부터 윤리적 실존에 대한 성찰의 가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실존주의자들 가운데에서는 거의 최초로 철학 담론으로 구체화했던 작가였던 것이다.

윤리적 실존의 실천으로서의 글쓰기

실존주의가 실존의 윤리에 대한 담론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길 원했던 보부아르의 노력은 비단 철학 작품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도 그 결실을 맺게 된다. 특히 문학 작품들에서 그녀는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딜레마들을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독자들이 실존을 윤리적으로 영위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고 윤리적 실존의 방식을 직접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는 작가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해답들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보부아르의 입장으로부터 비롯한 결과물이었다. 즉 그녀는 독자들과의 상호적인 소통을 창출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보부아르에게 글쓰기는 윤리적 실존의 가능성을 직접 실천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식을 의미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초롱 |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강사

 

* 그림 설명 및 출처

– 그림 1: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 (출처: www.stephaniegehring.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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