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호 인터뷰: 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장] 시간을 만지는 손

세상에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을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노력을 통해 남겨진 것들은 인간의 시간을 훨씬 뛰어넘어 그것만의 시간을 담아간다. 김겸 소장은 미술품보존복원 전문가로 로뎅, 백남준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뿐 아니라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의 보존처리를 한 바 있으며, 지난 2015년에는 이한열 열사의 산산조각 난 운동화 밑창을 한 조각 한 조각 맞춰 복원해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작업 책상 위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품이 있다. 지난 3월 17 일, 일산의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에서 김겸 소장을 만나 보존과 복원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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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시간이 담긴 물건

Q. 소장님께서는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으로 소개되지만,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하기도 하셨습니다. 보존·복원전문가가 다루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만한 과거의 물건들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될만한 물질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죠. 손상됐다면 치료를 하고요. 저는 원래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이고, 그 중에서도 조각이나 청동 작품을 다뤄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를 작업하게 됐어요. 이한열 열사의 유품인 운동화도 그렇고요. 지금 제 책상 위에 있는 것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유품이에요. 지금은 우선 카메라, 옷, 운동화 등 몇 가지가 와 있습니다. 처음에 물건들이 왔을 때, 집안에 바다 냄새가 꽉 차있었어요. 카메라 같은 경우 부식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옷의 천은 굉장히 삭았어요. 이런 것을 작업하면서 저도 많이 배웁니다. 제가 익숙하지 않은 재료에 대해 찾아보게 되니까요. 

Q. 보존·복원 전문가가 다루는 것들은 대체될 수 없는 ‘단 하나’기에, 책임감 혹은 사명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의 판단과 작업으로 제가 다루는 물건들의 복원이 잘못됐다면, 혹은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변화가 빨리 진행된다면 저는 1차적으로 제 직무에 잘못을 하는 거겠죠. 저는 작품에 직접 손을 대잖아요. 굉장히 가치 있거나 고가의 작품이라면 무서운 일입니다. 또, 직무와 관련된 책임의식과 함께 물건에 얽힌 여러 이야기도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개인적 기억, 그 가치에 대해 먼저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품을 작업하게 된 것은 제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희생된 학생들이 사용했던 단원고등학교 교실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칠판에 분필로 추모, 응원 메시지를 엄청 많이 남겼어요. 10개 반의 칠판에 빽빽하게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분필로 쓴 것이니 잘 지워지지 않습니까. 실제로 정신적으로 병을 앓고 계신 분이 한 반의 칠판을 다 문질러버린 일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와 연구원들이 가서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 연구원들에게 제가 의사를 물어봤는데, 모두 기꺼이 가겠다고 했죠.

Q. 아무나 만질 수 없는 것들을 직접 만진다는 점에서 소장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실은 보존·복원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인데요. 저는 미술사를 전공했습니다. 이론 공부에서는 작품을 글로 만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못 만지게 하잖아요. 그런데 작품을 직접 만질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짜릿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공식적으로 작품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작품을 만지면서 제가 책으로 공부했던 것과 또 다른 여러 이야기를 혼자 상상하곤 합니다. 그건 근거도 없고, 혼자만 느끼는 거지만요. 저는 굉장히 제 직업에 만족합 니다. 가장 강렬했던 것은 로뎅의 제자, 안토닌 부르델의〈활 쏘는 헤라클레스〉보존 작업을 할 때입니다. 남성 누드상인데, 아마 똑바로 일어나면 3m 이상은 될 겁니다. 작품 앞에 좌대를 놓고 올라서서, 표면에 토치로 불을 가해 뜨겁게 달궈 거기에 왁스를 입히는 코팅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작품을 안게 됐는데, 소름이 쫙 끼쳤어요. 분명 청동상을 안았는데, 마 치 그 안에 수많은 장기들이 꿈틀대서, 근육들이 장기를 부여 잡고 있는 단단한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순간적이지만 내가 사람을 안았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 이후로 이 얘기를 많이 했어요. 벌써 20년 전 일입니다.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말할 때 사용되는 생명력, 영혼 같은 표현이 단순한 상찬을 위해 사용되는 미사여구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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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건의 치료와 예방접종

Q. 보존·복원전문가라는 직업이 조금 생소합니다.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이건 비유를 들면 좋겠네요. 의사가 환자를 대하기 위해 거치는 과정과 수련이 보존·복원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과 매우 닮았습니다. 의사가 근본적으로 생명과 인체를 이해하기 위해 생리학을 공부하는 것처럼, 복원가도 재료학을 배웁니 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여러 물건들에 관련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보존·복원과 가장 연관성이 깊은 학문이 화학입니다. 외국의 보존 학교에 가면 크게 세 과목이 있어요. 화학, 보존 실기, 미술 비평사입니다. 이를 모두 이수해야 합니다. 복원 학교를 나오고, 연수를 받고 어시스트로 일을 하다가, 스스로 판단해서 복원할 수 있는 복원가가 되기까지 10년여 가까이 걸렸습니다.

Q. 미술품과 문화재는 보존·복원과정에서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나요?

소위 말하는 유물, 문화재는 그 자체가 물질로 기록된 역사 예요. 기록적 가치가 높은 것이 유물입니다. 그래서 발굴된 것 그 자체를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도자기 같은 것은 파편이 나오더라도 덧붙이지 않고, 일부분이 없더라도 메꾸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을 안정화시키는 것 외에는 지금의 기술이나 물질이 최대한 들어가지 않게 해요. 훼손된 부분을 복원해야 할 때는 원래 있던 것과 구분되도록, 나중에 덧댄 부분이 표가 나게 작업합니다. 원형보 존이라 하죠. 박물관에서 오래된 유물을 보면, 낡아있지 않나요? 기록된 역사로서의 가치를 지켜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가진 첫 번째 가치는 미적인 감상이 가능한 것으로서의 가치입니다. 이것은 외형을 통해 가능하죠. 그래서 회화 작품의 경우 물감을 칠한 부분이 갈라지거나 덩어리가 떨어진 부분이 있다면 모두 감쪽같이 메웁니다. 문화재 보존·복원가들이 내과 혹은 정형외과 의사라면, 미술품 보존·복원가들은 성형외과 의사입니다.

Q. 보존·복원은 대상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작품을 루브르 박물관에 걸어두잖아요. 방탄유리를 몇 겹이나 둘러치고, 카메라 플래 시도 못 터뜨리게 하면서도요. 그렇게 소중한 작품이면 수장고에 싸놓으면 되는데 말이죠. 예방 접종, 즉 보존처리를 거친 작품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면 그 가치는 가늠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유물을 남겨놓는 이유는 그 재료와 과거, 우리 조상들의 기술을 연구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복원이니, 가치는 당연히 높아집니다.

보존·복원의사의 고민

Q. 미술품의 보존·복원에는 작가의 의도나 소장자의 의견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은데요.

작품의 의도를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 작품은 작가의 정 신이 물질로 구체화된 형태니까요. 그걸 모르고 작품을 다룬 다면 여러 실수를 했을 것 같아요.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형태 등이 왜곡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 대상과 관련된 소장자의 의견을 듣고, 적절하지 않다면 말합니다. 보통 파란색을 빨간색으로 발라달라는 식의 무리한 요구는 없 어요. 예전에 의뢰가 들어왔던 것 중에 백남준의 오브제가 있었는데, 소장자의 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백남준의 사인을 그 집 아이가 낙서한 줄 알고 지워버린 겁니다. 그래서 저에게 사인을 다시 해줄 수 있는지 의뢰를 했어요. 너무 안타깝지만, 그건 복원 대상이 아닙니다. 글자의 획 중 일부분이 지워지면 복원 가능하지만 작가의 사인을 새로 할 수는 없는 것이죠.

Q. 복원 대상의 가장 적절한 상태에 대한 기준을 말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복원해야할까요?

복원 대상을 두고 여러 사람의 논의를 거쳐 복원 방향을 정합니다. 복원 방향은 복원 방법과 복원하고 난 이후 복원 대상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방향 회의에서는 ‘더 손상되지 않 게만 하자’, ‘새로 복제품을 만들어서 전시하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는 원형을 복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 이었습니다. 일단 손상된 원인이 이한열 열사의 사건과는 연관이 없었 어요. 처음 운동화가 벗겨졌을 때는 그냥 운동화였죠. 이후 10년 이상 된 건물에 운동화가 있었는데, 여름에 그 안이 비닐하우스같이 뜨겁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곳이었어요. 그 과 정에서 밑창인 폴리우레탄, 플라스틱이 다 바스라진겁니다. 때문에 이 운동화의 가치를 복원하는 것은 이한열 열사가 사망했던 당시 신고 있었던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 기술적 치료를 하는 사람으로서도 복구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문제에 답은 없습니다. 저는 독단적 판단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고 있습니다. 작업하다보면 제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 다. ‘좀 더 하면 나아질 텐데’같은 거요. 이런 부분을 끊임없이 단속하고 있습니다.

남겨진 것에서 시작하는 시간

Q.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의 묵은 때를 벗기는 작업 이후 팔 을 못 쓸 정도로 힘들었는데도 즐거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위에 페인트가 칠해졌습니다.

저는 왼손잡이인데, 2008년 당시 작업한 이후 6개월 정도 아파서 왼손을 전혀 쓸 수 없었어요. 페인트로 덮어졌을 때, 그땐 말도 못하게 속상했죠. 그래도 제가 절망적이지 않은 이유는 장군상이 청동이기 때문입니다. 청동은 3천년 동안 지중해 바다 속에 있었던 것도 꺼내서 부식된 것을 싹 다 벗겨내면 형태는 거의 그대로에요. 복구가 가능합니다. 만약 보존처리 과정이 근본적으로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지 끝까지 막아낼 겁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미적으로 아름답게 관리할지에 관한 것입니다. 야외 조각상은 먼지 등으로 인해 쉽게 지저분해지죠. 보존 작업을 통해 깔끔하게 할 수 있는데, 페인트를 칠해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것이 아름다운 동상인지 느끼는 경험이 없었던 겁니다.

Q. 페인트로 덮인 야외 조각상들만 생각해도, 우리에게 뭔가를 보존·복원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가치를 잘 평가하지 않거나, 혹은 그것을 가치 있게 바라보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근대에서 현대까지 오면서, 미래를 바라보며 준비하는 경험이 아직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든, 기성세대든 모두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만 걱정을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동일하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발견된 유물들이 모두 하나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역사는 유물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죠. 보존 작업을 하면서 저는 이게 당장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판단하지는 못해요. 그러나 한 가지 믿음으로 합니다. 일단 지켜놓는 것, 여 기서 출발하는 것이죠.

대담·정리: 고희영 | khyhy825@khu.ac.kr

고나혜 | konahye93@khu.ac.kr

사 진: 고나혜 | konahye93@khu.ac.k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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