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호 책지성: 닉 수재니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생각을 언플래트닝 하라!

언플래트닝

만화로 된 철학책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성인까지 만화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웹툰, 만화책, 신문, 광고 등 다양하게 만화를 접하고 있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는 ‘컬럼비아 대학 최초로 논문 심사를 통과한 만화’, ‘하버드 대학이 출간한 최초의 만화 철학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보통의 경우 어린이를 위한 책들이 만화로 된 걸 감안한다면 상당히 특이한 책이다. 이 책에선 철학이라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소재를 만화라는 매우 익숙한 장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만화로 된 철학책인 것이다.

언어와 상호작용하는 시각적 이미지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에서 만화는 단순히 내용을 이끌어가는 수단이 아니다. 만화를 통해 저자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도와주는 매우 중요한 도구지만 만화는 언어로 미처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굴절’이라는 것을 ‘파동이 서로 다른 매질의 경계면을 지나면서 진행 방향이 바뀌는 현상’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빛이 굴절되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처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는 만화를 통해 인간의 사고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진행해간다. 이런 색다른 시도는 다른 어떤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도전적인 실험인데 아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유의 주요 수단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려온 ‘언어’와 언어의 보조수단 정도로 인식되어온 ‘이미지’의 관계를 변화시킨 책이기 때문이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에서 만화는 더 이상 책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의미 전달의 핵심이자 언어와 상호작용하는 주체가 되었다. 마치 200여 년 전 슈베르트가 가곡에서 노래만 중요하고 반주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당시의 풍조를 비판하며 반주도 노래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텍스트와 이미지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아니 책을 ‘보다’보면 이미지가 주는 이해의 틀을 통해 감탄하게 된다. 언어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만화가 도와줌으로써 “언어가 주는 생각 형태의 감옥”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의 치밀한 의도가 독자에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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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65쪽

언플래트닝, 새로운 세계의 경험

 그렇다면 이 책에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저자는 ‘언플래트닝’이라는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를 하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 과학의 발전,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식을 평가하기 위해 계량화되고 정형화된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은 계속해서 정형화되고 규격화”되고 있다. 이렇게 규격화 되어가는 “인간은 본래 가지고 있던 수많은 가능성과 역동적인 에너지의 활기를 잃”고 ‘플래트닝(flattening)’ 즉 “단조로움만 남게 된다”. 규격화된 인간들은 “수많은 가능성의 요소들을 비슷한 시각으로 편협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는 이 편협한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에서 인용한 「플랫랜드」라는 애드윈 애벗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소설 속에서 거주민들은 글자 그대로 ‘평평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평평한 세상에서 사는 거주민들은 입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물의 단면만 볼 수 있는 플랫랜드 거주민들은 그들이 보는 단면이 사물의 전체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플랫랜드 거주민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편협한 사고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2차원의 세계에서 벗어나 3차원의 세계를 직접 보게 된 주민은 3차원이라는 개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새로운 세계의 경험을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벗어버리게 되었고 3차원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내재되어 있던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언플래트닝(unflattening)’이다. ‘언플래트닝’을 경험한 주민은 이제 3차원뿐만이 아닌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생각의 ‘단조로움(flattening)’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침으로써 ‘언플래트닝’하게 된 것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는 패턴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정신적인 충격이 필요”하다. 이러한 파열을 경험한다면 기존에 하던 생각의 “한계를 알게 되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플래트닝’은 기존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의 나래를 펼쳐나가는 것이다.

 

관점을 전환하라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사회, 문화, 관습적으로 발전해왔고 그 발전은 일정한 형식으로 후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런 지식의 전승을 통해 “인류는 분명 발전해오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그 사회에 만들어져 있는 “구조에 적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너무 많은 형식과 제도에 얽혀, 특히 이성과 과학이라는 문명의 틀에 매여 인간 본연의 모습인 상상력, 감성, 삶의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다. 걸음마를 떼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인간은 시스템의 기준대로 분류되고, 이미 방향이 정해진 트랙 위에 놓여 지정된 경로를 따라 살아가게 된다. 정교하게 구성된 수많은 과정을 통과하며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정보를 주입당한다.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 새겨진 수많은 틀이 내재화”된다. 외부에서 주입된 내용이 내면에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새로운 시도와 상상보다 구조에 맞는 단조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내재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벗어나지 못 한다기보다는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런 닫혀있는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선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자연현상을 보고 중력을 생각해냈듯이, 플랫랜드의 거주민이 2차원으로 보던 것을 한 차원 넓혀 3차원으로 보듯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문 제기와 관점의 전환으로 이전에 알지 못했던, 혹은 알더라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의 이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대로, 고정된 시선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닌 변화무쌍한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표준화는 매우 유용하지만 타인의 기대에 따르게” 되어 마치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든 것과 같다. 서로의 차이와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리 규정된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고 새로운 발자국을 내딛는다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언플래트닝’은 바로 이런 관점의 변화를 통한 가능성의 세계로의 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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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158페이지

가능성의 문으로

 생각의 전환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평소에 일련의 흐름을 따라 남들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추지 않고 나 자신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남들의 생각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도 비는 계속 내리고 판에 박은 듯한 길은 생기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노래하고, 춤추고, 새로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라. 우리의 생각은 한 가지 지류만 따라 흐르는 물이 아닌 때론 넘쳐흐르는 강물이 되기도 하고 때론 새로운 지류를 만들어가는 흐름이 되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고 관점을 바꾼다면 낯설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상상력이 가득한 춤을 추고 활발하고 생생한 생각을 하자. “신발에 내 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꼭 맞는 신발을 신고 ‘나답게’ 걸어”간다면 누구나 ‘unflattening’ 할 수 있다.

 

박요셉 ߊ yoseph@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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