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호 특강취재: 다중지성의 정원, <자크 랑시에르와 영화- 이후의 시간과 이미지>] 랑시에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우화로서 영화

다중지성의 정원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총 8주에 걸쳐 <자크 랑시에르와 영화- 이후의 시간과 이미지> 특강을 개최하고 있다. 이 특강은 영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의 사유와 저작을 되새기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랑시에르는 그의 저서 『영화 우화』의 프롤로그에서 드러나듯 영화감독 장 엡스탱(Jean Epstein)이 거짓으로 치부한 우화(fable)로서 영화를 상정했다. 더 정확히 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하는 시학을 넘어 영화를두 시학이 엇갈리게 얽힌 우화로 간주했다. 신은실(인디다큐페스티벌 집행위원) 강연자는 지난 2월 23일에 열린 네 번째 강의에서 “‘우화’의 영화 2”라는 주제로 우화의 감독들로 분류되는 프리츠 랑(Fritz Lang, 1890~1976)과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1906~1977), 두 영화감독의 작품들을, 작품들에 대한 랑시에르의 관점과 함께 소개했다.

허구로서의 기억

 

강연자는 이전 강연의 내용을 다시 환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진리로 여겨지는 것들, 기억, 역사 등은 재현의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영화감독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가 남긴 CD는 한 예시이다. 그 CD는 마르케가 만든 일종의 자료집 같은 것이었다. 그 CD에는 그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남긴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마르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묘사된 마들렌 향기 서사에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기억’이라는 목차가 있었다). 사진들은 목차로 정리돼 있었다. 이 CD는 마르케의 신념을 드러낸다. 즉, 기억은 절대적이지 않고 가공될 수 있으며, 삶 전체는 CD와 CD의 프로그램 속 목차처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CD가 상징하는 마르케의 사상은 그가 남긴 다양한 다큐멘터리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허구로서의 기억’을 보여주는, 절대적 기억과 역사로 남을 다양한 이미지들을 엮어 기억과 역사를 구성해냈다(여기서 허구는 영어 단어 ‘fiction’과 동의어로 볼 수 있고, 강연자는 fiction의 어원이 ‘벼려서 만들다’라고 설명했다).

‘두 가지 인간사냥’: 프리츠 랑의 두 영화

 

랑시에르는 프리츠 랑의 영화 <도시가 잠든 사이에 While The City Sleeps>(1956)와 <M>(1931)을‘두 가지 인간사냥’이라는 제목으로 분석했다. 두 영화는 랑이 선호하던 범죄물이다. 랑은 독일 출신 감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적성국인 미국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제작한 영화 중 하나가 <도시가 잠든 사이에>이다. 강연자는 두 가지를 중심으로 랑시에르의 관점을 설명했다. 먼저, 이 영화는 랑이 바라본 미국 민주주의를 담고 있으며, 랑시에르는 이를 비관주의를 표현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 비관주의는 영화의 플롯에서 드러난다. 영화는 거대 미디어 기업의 창설자가 죽자 그 아들이 연쇄살인범을 잡는 이에게 이사장직을 넘기겠다고 공언해 벌어지는 암투를 다룬다. 영화는 범죄물이지만 서스펜스 장르는 아니다. 랑은 처음부터 범죄자가 누군지,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살해했는지를 모두 보여준다. 랑의 관심은 인물들 간 관계에서 나타나는 음모를 통해, 범죄자는 존재하지만, 이를 쫓는 자들도 다를 바 없다는 의식을 드러낸다. 모블리(조지 샌더스)가 여자친구인 낸시(샐리 포레스트)의 방 앞에서 헤어지기 전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를 때와 같은 방식으로 몰래 문의 잠금장치를 무력화시키는 (마치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이를 극적으로 설명해준다. 랑시에르가 또한 주목한 것은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 기자인 모블리는 카메라 앞에서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범죄자를‘호명’한다. 여기서 텔레비전의 (프랑스어) 어원을 보면 ‘텔레(tele)’는 거리를, ‘비제(visé)’는 겨냥하는 것을 의미한다. 텔레비전 앞에 선 범죄자는 겨냥된 사람이다. 텔레비전은 범인을 카메라 앞에 선 모블리와 가까이 대면하게 한다. 이는 모블리가 텔레비전 앞에서 설명하는 경찰이 만든 무력한 몽타주와 대비된다. 더 나아가 교육도 못 받고 친부모도 없는 범죄자와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상적 인간인 모블리를 대치시킨다.

또한 랑시에르는 랑의 다른 영화인 <M>을 검토한다( ‘M’은 살인자(murder)를 의미하며, 그의 등에‘M’이라고 표시돼 있다). <M>은 랑의 독일 시기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범죄자는 아동 연쇄살인범이다. 여기서도 범죄자는 처음부터 누군지 드러난다. 범죄자는 나중에 잡혀 ‘인민재판’에 부쳐진다. 영화는‘M’이 아이를 죽이기 전 아이와 함께 거리를 평온하게 노니는 모습을 꽤 오래 보여준다. 랑시에르는 이를 인간사냥이 시작되기 전 ‘은총의 시간’으로 표현한다. 이 장면은 서사가 진전되지 않고 정지한 것 같으며, 또한 미학적 감정을 가져다주는데, 앞으로의 서사에 힘을 부여해준다. 즉 ‘서사의 구조화’와‘ 서사를 중단하고 다시 발생시키는 것’이다. 랑은 이를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19-12-1-3

신은실 강연자가‘우화로서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체의 하강과 상승’: 로셀리니의 영화들

 

제2차 세계대전은 전후 유럽에 큰 충격을 줬다. 강연자는 이를 ‘신이 존재하는 세상에 신이 응답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유럽의 입장에서 잔인한 살육의 현장은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부정적인 변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영화에서도 드러났는데,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운동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셀리니는 네오리얼리즘 운동의 대표자로, 강연자는 랑시에르가 분석한 로셀리니의 영화 가운데 <무방비도시 Roma Citta Aperta>(1945), <독일 영년 Germania Anno Zero>(1947), <프란체스코, 신의 어릿광대 Francesco, Giullare Di Dio>(1950), <스트롬볼리 Stromboli, terra di Dio>(1950), <유로파 51 Europa ’51>(1952) 등을 소개했다. 강연자는 이러한 영화에서 두 가지 요소, 신체의 추락과 상승에 대한 랑시에르의 설명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무솔리니 말기 레지스탕스 이야기인 <무방비도시>에서 여주인공 피나(안나 마냐니)가 독일군에게 잡혀가는 애인을 따라가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년들의 이야기인 <독일 영년>과 아들을 잃은 한 여인의 이야기인 <유로파 51>에서 아이들의 투신자살 등은 신체의 추락을 보여준다. 랑시에르는 이러한 죽음들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전후 패전국의 사회상과 관련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더불어, 로셀리니는 가톨릭 신자로서 영화에서 이를 한 요소로 배치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에 따른 결과를 랑시에르는‘신체의 상승’으로 설명한다. 신체의 추락과 같은 비참한 사회상과 반대로, 이를 회복하려는, 이와는 다른 모습의‘성스러움’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무방비도시>에서 나타나는 피나의 모습과 레지스탕스의 눈을 감겨주는 사제를 담은 장면, <프란체스코, 신의 어릿광대>에서 누군지도 모를 부족민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부족의 독재자 앞에서 모욕을 당하면서도 평온한 얼굴의 사제를 담은 장면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스러움은 신체의 상승과 연결된다. 아이가 추락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스트롬볼리>와 <유로파 51>의 여주인공들의 신체는 높은 곳으로 상승한다. <스트롬볼리>에서 여주인공 카린(잉그리드 버그만)은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화산 정상에 올라간다. 정상에서 여주인공은 (약간 뜬금없이) 신의 은총을 느끼며, 이는 영화의 극적 장면으로 나타난다. 화산의 거친 환경을 뚫고 올라가는 아름답고 고매한 ‘잉그리드 버그만’, 신의 은총을 느끼는 그녀의 표정, ‘성스러움’이 묻어나는 듯한 여러 설정 등이 인상적이다. <유로파 51>은 여주인공 이레네(잉그리드 버그만)가 미국계 부유층으로서 자기 아들을 추락으로 결국 잃고 점차 성녀가 돼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들의 병상을 지키는 것부터 빈민가를 돌보는 장면, 거리의 여성을 돌보는 장면 등으로 이어지는데, 건물 위의 창문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가족들을 내려다보는 마지막 장면은 신체의 상승을 극적으로 상징한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파솔리니(Pier Pasolini)는 <테오레마 Teorema>(1968)에서 아예 성녀가 지붕에 둥둥 떠 있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신체의 상승과 신의 은총을 겹치는 이미지를 구성한다.

강연자는 랑시에르가 랑과 로셀리니의 영화에서 주목한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장면의 기법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랑시에르의 해석을 들려줬다. 준비된 강의가 모두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강연자는 랑과 로셀리니가 시대상을 반영하려고 했고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해 주목했음을 언급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던 만큼 논의 자체가 상당히 생소했지만, 영화와 미디어의 재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진 수 /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