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호 인문학술1: 두 명의 Simone] 베이유의 삶과 철학

고대부터 철학은 주로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20세기에 들어 샬롯 퍼킨스 길먼, 에디트 슈타인, 한나 아렌트 등의 여성 철학자가 등장했지만 철학은 여전히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이에 본보에서는 프랑스 여성 철학자 중 ‘불꽃의 지성’ 시몬느 베이유와 ‘행동하는 지성’ 시몬 드 보부아르를 선정해 그들의 삶과 사상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철학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확인하고자 한다.

 

 

20세기 프랑스에서 시몬느 베이유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여성이 두 명 있다. 한 명(Simone Veil, 1927~)은 우파 정치인으로서 데스탱(Valéry Giscard d’Estaing, 1926~)과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1916~1996) 대통령 때 보건 장관을 지냈다. 미테랑 때는 사회당 대통령보다는 수상이 신드골파 발라뒤르(Édouard Balladur, 1929~)라서 내각에 들어간 것이. 하지만 이 사람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고난은 신의 사랑

이 글에서 살펴보려는 베이유(Simone Weil, 1909~1943)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이는 생전에 주변 사람들의 무심한 관성적 행태들을 정의의 관점에서 되새기게끔 자주 따져 물은 말썽꾸러기였다. 미혼의 몸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편을 드는 데 오지랖이 넓어서빨갱이 동정녀(la vierge rouge)”라는 별명도 붙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가 독창적인 발상을 칭찬하느라 붙여준 별명은화성인(la Martienne)”이었다. 대학생 시절에 마주친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실존을 말하자, “한 번도 배고픈 적이 없었다는 표가 난다며 무안을 줬다. 사망한 후에는 일각에서 성자로 기린다. 베이유를 성자로 격상하는 관점의 기원은 그이가 죽을 때 보여준 장면과 통속적으로 연결된다. 결핵으로 요양하던 중에,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차라리 전선의 병사들에게나 보내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사연을 들은 지방 검시관은음식섭취를 거부하여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문구를 보고서에 넣었고, 지방 신문은 이를 크게 보도했다. 음식을 안 먹은 건지 못 먹은 건지를 제삼자가 명확히 가릴 길도 없거니와, 이 일 말고도 그가 성자 비슷한 풍모를 보인 적은 많다. 고난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회구조의 개혁을 부르짖는 한편, 당장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가능한 한 자기 스스로 그들이 받는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베이유의 인간관과 윤리학을 관통하는 대주제는 고난이 신의 특별한 사랑을 표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고난에 장엄한 의미를 언표적으로 부여하기는 어렵지 않다. 모세에게 이끌린 유대인들처럼 이웃과 함께 겪는 고난은 약속이 머지않아 실현된다는 징조다. 아들을 죽이러 가는 아브라함의 고난은 신이 그야말로 아브라함에게만 가졌던 특별한 관심의 반영이다. 일반적으로, 고난은 원인이 자연적일 때보다 사회적일 때 가중된다. 원인이 단지 자연이라면, 다시 말해 특별히 어떤 사람이나 조직의 탓 때문이 아니라면, 체념하고 받아들이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이 점을 뒤집어보면, 남이 겪지 않는 심하고 억울한 고난을 겪는다는 것은 사회의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할 기회가 주어진 셈과 같다. 그러나 이런 의미는 관찰자의 말로 표현될 때와 당사자의 태도로 표현될 때에 무게가 전형적으로 달라지는 종류의 의미다. 이와 같은 무게의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의 특유한 성격 중 하나다.어쨌든 베이유의 경우, 고난의 장엄한 의미가 당사자의 태도로 표현될 때의 무게 쪽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차이를 좁혀보려고 정성을 기울였다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하다. 이런 방향의 정성이야말로 그의 인생과 윤리학을 관통하는 기준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식론: 지식의 본질에 관한 탐구

지금까지 아주 소략하게 살펴본 것만으로도 베이유의 삶은 대단히 특이하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인간, 자연, , 윤리, 권력 등에 관해 그가 추구한 자의식적 탐구의 결과, 즉 그의 철학에 의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인도되었다. 하지만 그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지식의 본질에 관한 탐구, 즉 인식론이다.

베이유는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자동차 공장의 미숙련공으로 취직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당시 강의 노트를 보면, 그가 지식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뚜렷이 나타난다. 그는 과학을 사물간의 양적 관계로 이해했다. 그런데관계도 자연이 인간에게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이나 측정 도구에 따라서 다분히 가변적이다. 따라서 과학에서지식이라 불리는 것은 기실 공인된 가설이라는 지위를 모면할 수 없으며, 더 나아 보이는 가설이 출현하기만 하면 언제든 대체될 운명이다.

이와 달리, 존재론적 관점에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칸트의 용어로 말하면, “물자체(物自體)”에 관한 지식이어야 진정한 지식이라고 보는 이들이다. 베이유는 이들이 신의 관점을 자임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신성모독인데다가, 그보다 먼저 어불성설이자 착각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완전한 방법의 이념에 견주어 우리가 행하는 과학을 비교하는 방식으로비판적 지식을 추구하라고 가르쳤다.

직각삼각형의 꼭짓점에서 빗변에 수직선을 내리면, 원래의 삼각형과 수직선에 의해 분할된 작은 두 개의 삼각형이 모두 닮은꼴이 된다. 이와 같은 형태의 완전한 비례의 질서가 베이유에게는 일생동안 균형의 이념으로 작용했다. 과학을 이처럼 완전한 이념에 견주게 되면, 우리 행동의 바탕에서 작용하는 지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나아가, 근대이래 인간은 대체로 과학이 발견해준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을 조직해왔고, 거기에 엄청난 권력과 억압이 작용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 인간의 의지나 소원에 따라 조작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과학의 이름 아래자연의 법칙인줄 알고 있는 것들이 자연의 법칙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인류의 이해력이 도달한 상태에서자연의 법칙이라고 사회적으로 공인된 일종의 추정이라는 말일 따름이다. 이와 같은 사정에서, 과학자에게는 나름의 연구를 통해 최선이라 여겨지는 결론을 공표할 임무는 물론이고, 일단 도달한 결론에 어떤 과장이나 결함이 섞여있는지를 가차 없이 파악할 임무도 있다. 바로 이 후자의 임무를 위해 완전한 방법의 이념에 견주는 비판이 필요하다.

철학과 삶의 연관

도덕이나 정치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선이라고 하든 정의라고 하든 번영이나 행복이라고 하든, 바람직한 삶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어떤 표준을 정해놓고, 그것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을 도덕이나 정치로 이해하는 풍조가 현대 세계를 풍미한다. 공직에서 나오는 권력이든 자본이나 명망이나 학식에서 나오는 영향력이든, 힘을 쥔 자들이 남에게 강요하는 그 기준을 똑같이 엄정하게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권력자들의 행태를 완전한 비례의 이념에 견주기만 하면, 이와 같은 실상은 금세 드러난다.

근대에 등장한 대부분의 진보정치 이념은 권력자의 버릇을 구조적으로 고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개별적인 사례에서 권력의 전횡이나 부정은 찾아낼 수 있는 한 찾아내고, 징벌할 수 있는 한 징벌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결국 조사도 처벌도 권력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기가 한 짓을 은폐하고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이 때문에 권력의 버릇을 권력으로 고치는 방식은 무한회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욱 근원적인 치유책은 도덕에 관한 지식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데 있다. 인류가 동료에게 강요하는 도덕의 표준은 자체로 표준인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흥정과 세력균형에 의해 표준이라고 합의된(또는 묵인된) 결과일 뿐이다. 물론 문명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떤 정도로든 모종의 표준이 강요되지 않을 수는 없다. , 그러한 표준이 명실상부하게 도덕적이려면, 그 곁에 적어도 세 가지 고려가 반드시 항상 수반되어야 한다.

첫째, 표준의 강요는 도덕이 아니라 권력의 작용이다. 따라서 강요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정도로 실시되는지, 다시 말해 권력의 행사 방식이 항상 비판되어야 한다. 둘째, 강제하는 자가 표준을 어길 때 얼마나 처벌을 받게 되는지에 표준의 정당성은 비례한다. 셋째, 표준 자체를 개선해야 할 여지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도 항상 유지되어야 한다.

베이유는 인식론적으로 기지(旣知)의 것들을 미지의 것에 견줘 균형을 모색했다. 윤리적으로는 도덕의 사회적 표준을 완전한 비례의 이념에 비춰 정의를 추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 탐색의 결과를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삶에 적용했다. 그가 추구한 가치들이 실질적 표준으로 보편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식론과 윤리학, 다시 말해 철학과 삶의 본연적 연관을 뚜렷이 의식해서 형상화한 사례로서는 대단히 희귀하다. 지식이 삶을 인도할 자격을 갖추려면, 먼저 진짜 지식인지의 여부가 구체적인 삶 속에서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동천 |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그림 설명 출처

그림1: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 1909~1943)(출처: culturacolectiva.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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