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호 테마서평 특별호: 2017 지방 신춘문예 당선작]중심과 주변,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적 시각의 극복

『켄의 세계』(최은, 《경인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소설부문)

『끝없는 밤』(김선희, 《한라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소설부문)

『과녁』(이서안, 《경상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소설부문)

필자가 사는 곳은 경남 양산이다. 서울에 사는 지인들과 통화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서울은 ‘올라가는 곳’이 되고 양산은‘내려가는 곳’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미 일상의 언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의 ‘대표성과 중심성’은 권력과 자본의 집중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속에는 문화적인 우월성이 더 많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보통 ‘신춘문예’하면 경향일보, 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지방에 있는 신문사들도 매년 신춘문예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7 지방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우수한 작품 들이 각종 언론을 통해 대거 소개됐다. 그 중 공통적인 주제로 소설,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 상한 작품들이 있다. ‘최은, 「켄의 세계」(《경인일보》신춘문예 당선작)’ , ‘김선희, 「끝없는 밤」(《한라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이서안, 「과녁」(《경상일보》신춘문예 당선작)’은 모두 ‘소설적 기교 보다는 현실을 있는 대로 그려내려는 우직함’이라는 우수한 심사평으로 등단한 바 있다. 이렇듯 지방 문단에도 우수하고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 이에 본보에서는 ‘중앙 문단’과 ‘지방 문단’을 구분하는 층위개념의 시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방’이라는 이름의 서열과 중심이 가지는 특권적 시선

‘서울과 지방’이라는 말속에는 차별과 서열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지방은 중심에 반발하고 중심은 그 대표성을 공고히 하려고 한다. 서열이라는 것은 권력구조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문학은 태생적으로 문단문학이라는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단문학의 권력은 문예지를 통해 더 고착화되었다. 문단권력은 정파적 이해처럼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화하는 데 더욱 힘을 쏟는다. 소수의 유명 평론가와 소위 스타 작가가 유명 문예지를 통하여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재작년 문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사태는 문단권력의 한 축이었던 창작과 비평사에 큰 상처를 입혔지만『창작과 비평』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공고하다. 『창작과 비평』등 소위 메이저 문예지가 한국 문학에 끼친 긍정적인 역할은 대단하다. 그 대단함만큼이 나 구조적으로 중심에 편입될 수 없는 작가들은 독과점에 반발해 지방 문예지로 대항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문학적으로 중심과 주변, 중앙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과 서열은 이러한 문단권력의 구조적인 형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엄밀히 말해 문학에 있어 중심과 주변은 존재 하지 않는다.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문학은 그 지역의 문학이듯이 ‘서울문학’, ‘지방 문학’도 각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저 ‘지역문학’일 뿐이다. 시각에 따라 중심이 되고 주변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문단권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는 문단권력이 아닌 곳은 모두 ‘서울지 방’, ‘경남지방’일 뿐이다

문학적 자립주의

그 중심은 지역 전국에 걸쳐 수천 개의 문학단체와 수백 개의 문예지, 수만 명의 시인과 소설가, 수필가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과 이름이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기 위해서는 넘어 야 할 산이 겹겹이다. 확장성이 부족한 지역문예지는 소수의 독자들만이 작품을 공유한다. 설령 지역신문에 이들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하더라도 문단권력에 이르기까지는 난제가 너무 많 다. 소수가 공유하기에 아까운 작품들이 심심찮게 발표되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는 것은 이 미 구조적으로 정해진 성골과 진골의 영역 속에서 작품으로 평가하고 편입하기를 그들이 동의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의 생산과 주체는 작가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서 출발한다. 그 지역이 가지는 특성이 역사를 이루고 그 역사가 모여 현재를 구성한다. 순진한 발상이지만 이러한 면에서 문단권력을 향한 ‘중앙 중심적’시각을 벗어 던지고 ‘지역 중심적’ 시각으로의 전환을 제언하고 싶다. 사회적 시각에서 보면 과거 문학은 정치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지고 있었다. 조정래와 황석영 등은 소위 거대 서사문학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담론형성은 물론, 행동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정신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사회변화와 변혁의 중심에 서 있던 문학의 역할은 지금은 시민단체와 SNS라는 매체에 밀려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학이 한국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담론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더라도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문학만이 중심과 주변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서울 중심의 사고는 구조적으로 존재한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존재해야 만 한다. 서울 중심의 시선에서는 지역을 배려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서 는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다. 소위 문화적 자립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 적 경험과 현재성은 언제든지 문학의 소재로 전환될 수 있다. 지역의 담론이 제각각이듯이 문 학의 지역화는 거대한 강을 이루는 발원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국적인 출판도매업체인 송인서적이 부도 처리되었다. 전국에 걸쳐 5,000여 개의 출판사와 2,000여 개의 중소 서점이 입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업계종사자가 아닌 일반 국 민들은 송인서적의 부도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방치한다면 앞으로 중 앙에 예속된 지방 출판사들은 전멸하고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 말 은 문단권력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며 중앙만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립하지 않으 면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자립한다는 것은 결국 시선을 바꾸는 것부터 출발한다.

다시 지역으로

지역 신문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던 작가들 중에는 다시 중앙지의 신춘문예를 통해 재 등 단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일견 한국문단의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왠지 씁쓸하다. 문학적인 자존심보다 명성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 은 작가 스스로 중앙과 지방, 중심과 주변, 상위와 하위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은 아 닌지 묻고 싶다.

결코 폐쇄적인 연고주의나 인위적으로 지역을 구분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역마다 보유하고 있는 문학적 발원의 자산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처녀지에 가깝다. 내가 있는 곳이 문학의 중심 이라는 것, 내 지역이 문학의 시발점이라는 생각이 문단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립하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등단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섰다는 것이다. 2017년 신춘문예로 등 단한 최은, 김선희, 이서안 작가의 문학적 성취가 문단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를 기대한다. 모쪼 록 자신의 작품이 문단의 중심이며 중앙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김명관 / 시인, 《양산시민신문》대표

│2017 지방 신춘문예 당선작

219-10-1(1)일러스트_박성현

©일러스트: 박성현

켄이 보따리장수 처럼 초라한 진심을 늘어놓은 것을 후회 하기도 전에 여자들 은 옷을 재빨리 꿰어 입고 그 방을 떠났다.       

바비에겐 다른 공 기가 있었다, 승려처 럼 성냥탑 쌓기에 열중하는… 켄은 바비 의 몸에 자신의 진심이 담겨버린게 두려웠다.  

희가 진정 바라는 건 충실한 신하인지 증명해보라는 성의일 것이다 하지만 성형이라니…

카페 유리창 건너 놈 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보다 갸름했고, 피부가 희었고, 생각해보니 코도 더 얄쌍했다.

귀족적 아이덴티티까지 코히시브젤처럼 이식 할 병원을 알아봐야겠다.

-최은, 「켄의 세계」《경인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중

219-10-1(2)일러스트_고예현

©일러스트:고예현

TV를 켰다. 특별 생방송으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동 남아 지역의 바다 밑에서 진도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동남 아 곳곳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아 무런 대책 없이 썩어 들어갈 시체들이 소리 없이 비명을 지 르고 있었고,

산산조각 난 거리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사람 들만이 유령처럼 걸어 다니거나 널려 있었다.

나는 슬퍼져 서 다시 콩을 골랐다. 골라도 골라도 콩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선희, 「끝없는 밤」《한라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중

219-10-1(3)일러스트_윤문영

©일러스트:윤문형

오른발을 반 폭 든 사내가 투수 의 몸짓으로 비수를 내리꽂는다. 힘이 실린 비수는 나무판을 향해 날렵하게 날아갔다.

살진 몸에 비 해 꽤 날렵했다. ‘턱’힘이 실린 칼 이 바람을 타고 나무판 진공에서 숨이 멎었다.

다시 비수는 소리를 내지르며 일제히 판에 꽂혔다.

왼 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사내가 나무 판을 향해 걸어간다. 구리철사에 휘감긴 칼자루가 광선에 번들거렸다.

단검의 크기는 손바닥 크기로 바지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였다. 꽂힌 칼들을 하나 씩 뽑아낼 때 사내의 옆모습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칼들이 박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멀리서 나무판의 파진 홈들이 일정한 모양을 이루었 다.

테두리가 옻칠한 듯 자연스럽게 음영을 이룬 탓이었다.

 그것은 희미하게나마 사람의 얼굴 같았다. 민의 촉이 파르르 섰다. 34시간 동안 잠복근무로 지쳤지만 그의 촉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서안, 「과녁」《경상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중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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