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호 책지성: 칼 세이건,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계속된다

218-11-1-2

ⓒ National Geographic Channel

『코스모스』만큼 유명한 과학책도 드물 것이다. 유명할 뿐 아니라 1980년에 나온 책인데도 35년이 넘도록 여전히 베스트셀러 대열에서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몇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소설도 많은데 35년 세월이 뭐 그렇게 대단하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 지를 생각한다면 과학책이 세월의 속도를 견뎌내기 힘들다는 것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교과서마저도 몇 년 사이에 핵심적인 내용이 변하는 것이 과학의 현실이다. 『코스모스』도 물론 그 기간 동안의 과학의 새로운 발견 앞에 낡은 책이 되어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우주의 나이와 현재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 우주의 나이의 값은 달라졌지만 이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 살아있기에『코스모스』는 현재에도 건재한 것 같다. 당시에는 태양계 밖에서 외계행성이 발견된 적이 없었지만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은『코스모스』에서 개연성 있는 추론을 통해서 태양계와 (당시로서는 존재하는 지도 알 수 없었던) 외계행성에 대한 보편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칼 세이건의 뛰어난 통찰과 성찰을 통한 보편적 접근과 서술이『코스모스』를 세월의 벽을 넘어서는 과학의 고전으로 만든 동력인 것 같다. 새로운 관측 결과에 따라 조정된 숫자만 바꿔놓으면『코스모스』는 2016년에 나온 책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보편성을 지녔다. 『코스모스』는 단지 유명하기만 한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전히 동시대적으로 읽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책이라는 뜻이다. 그 바탕에 칼 세이건의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통찰과 성찰이 자리 잡고 있다.

218-11-1

치밀하고도 우아한

‘코스모스’는 사실 책으로도 유명하지만 먼저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1980년 판 ‘코스모스’는 〈Cosmos: A Personal Voyage〉라는 제목을 달고 방송되었다. 책과 마찬가지로 1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다큐멘터리와 책의 각 에피소드는 서로 일대일로 대응하면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칼 세이건의 내레이션과 이미지를 활용해서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면 책에서는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깊게 다루지 못한 내용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책이 단순한 다큐멘터리의 정리판이 아니라는 말이다. 책만 보거나 다큐멘터리만 봐서는 ‘코스모스’의 진면목을 느끼기 힘들다. 책을 먼저 보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보는 것의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아마 치밀한 전략적 계산에 따라서 ‘코스모스’ 책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스모스’제작을 위해서 칼 세이건이 다니던 대학교를 3년 가량 휴직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회사를 세우고 전문가들을 모으고 또 다른 전문가그룹과는 전략적·기술적 제휴를 했다. 배수진을 치고 전력을 다해서 만들었던 것이다.

1980년 판 ‘코스모스’책과 다큐멘터리가 나오자마자 나는 이에 매료되었다. 나에게 당시로서는 최신의 과학 정보를 전해주는 과학책으로 읽혔다.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와 2호가 전해온 목성과 토성에 대한 최신의 정보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코스모스’를 같이 만났던 내 친구는 “‘코스모스’야말로 역사책이고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친구는 문학과 설화 책으로 읽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코스모스』의 진짜 미덕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 자신이 만나고 싶은 것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입체성 또는 다면성에 있는 것 같다. ‘ 코스모스’는 분명히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작품이고 천문학에 관한 것이다. 범위를 넓혀도 과학책과 과학 다큐멘터리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코스모스’를 읽었거나 본 사람이라면 내 친구들의 말도 이해를 할 것이다. ‘코스모스’는 과학 이야기를 하지만 그 시작은 늘 역사나 신화/설화/종교 그리고 문학이다. 인류에게 좀 더 친숙한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려는 칼 세이건의 배려가 묻어있다고나 할까. 칼 세이건은 긴 세월 동안 인류의 문화를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이끌어오던 신화와 설화와 종교에 대해서 존중의 뜻을 표한다. ‘코스모스’에서도 한껏 이들 문화유산을 인용한다. 하지만 한편 종교 같은 인류의 문화유산은 이제 효용을 다했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과학으로 세상의 일부를 이해하기 시작한 이 시대에 종교라는 옷은 더 이상 맞지 않는 낡은 시대의 가치라는 것이다. 그동안 인류의 문화에 어쨌든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이별을 하자는 것이 칼 세이건의 생각이다. 그래서 ‘코스모스’는 종교와의 우아하지만 냉정한 이별을 선언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경이로움과 허무함, 그 사이의 성찰

‘코스모스’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경이로움이다. 과학이 발견한 세상의 모습은 경이롭기만 하다. 당시로서는 최신의 천문학 정보인 보이저호의 관측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실렸다. 우주탐사선이 보내온 따끈따끈한 사진과 정보들이야말로 ‘코스모스’가 추구하는 경이로움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칼 세이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이로운 우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편 그 웅장하고 광활한 세계 앞에 주눅이 들지도 모른다. 너무나 자그마한 인간의 세상이 초라하고 허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코스모스’는 경이로움과 허무함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광활한 우주 속의 인간의 위치를 두려워하지 말고 제대로 자각하자고 제안한다. 그런 자각이야말로 용기 있고 과학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라고 우리를 북돋아준다. 이런 자기 성찰을 거친다면 우리는 우주 속 작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의 가치를 종교나 설화나 신화의 도움을 받지 않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는 그런 과정으로 우리를 이끄는 현대적인 가이드북이다. 우주와 인간의 삶을 연결해주는 지혜의 속삭임이 ‘코스모스’에 녹아 있다. 칼 세이건은 그래서 우주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지구를 사랑하자고 외친다. 결국 지구를 사랑하고 지킬 존재는 인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에 도달한다. 먼 우주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이 ‘코스모스’의 태도다.

칼 세이건의 진짜 위대함은 그 다음에 있다. 그는 실천을 강조한다. 실천이 없는 성찰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코스모스’에는 핵무기의 위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밖으로 나아가서 그 자신이 핵실험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미국의 우주전쟁 계획에도 반대한다. 실제로 자신의 성찰을 실천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보편적 가치를 향하여

2014년 또 하나의 ‘코스모스’가 탄생했다. 2014년 3월 9일 다큐멘터리〈Cosmos: A Spacetime Odyssey〉가 방송되었다. 칼 세이건은 1996년 이미 숨을 거두었지만 칼 세이건의 미망인인 앤 드루얀이 2014년 판 ‘코스모스’제작에 앞장섰다. 앤 드루얀은 1980년에도 칼 세이건과 함께 ‘코스모스’를 만들었었다. 새로 나온 ‘코스모스’는 처음부터 1980년 판 ‘코스모스’의 유산임을 명확하게 내세우면서 등장했다. 칼 세이건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것이다. 1980년 ‘코스모스’와 같은 구성인 13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의 흐름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작지만 큰 변화가 보인다. 제작 책임은 앤 드루얀이 맡았고 칼 세이건 대신 그가 아끼던 천문학자 닐 타이슨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닐 타이슨은 흑인이다. 2014년 판 ‘코스모스’의 특징을 꼽으라면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여성성과 다양성이 강화되었다는 점을 들고 싶다. 영웅적인 과학자의 환상보다는 중요한 역사의 순간에 묻혀 있던 실질적인 역할을 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끌어왔다. 21세기의 가치인 페미니즘과 소수 인정을 통한 보편주의의 색채가 강하게 녹아 있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통해서 과학을 바탕으로 한 가치 체계의 구축의 길을 열어 놓았다면 앤 드루얀은 2014년 ‘코스모스’를 통해서 실제로 과학적 삶의 가치를 구축하고 있다. 2014년 ‘코스모스’는 과학과 삶의 가치가 화학적으로 융합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곧 앤 드루얀이 쓴『코스모스』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칼 세이건은 갔지만 ‘코스모스’는 계속된다.

이 명 현 / 과학저술가, 천문학자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