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특강취재: 수유너머N, 토요인문학 <장소성의 정치철학>] 블랑쇼와 장소성, 나의 바깥에 선다는 것

수유너머N은 9월 3일부터 11월 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수유너머N 건물 대강당에서 <장소성의 정치철학> 강의를 진행한다. 총 열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특강은 ‘장소성’을 화두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랑시에르까지 여러 정치 철학자들의 사유를 우리 삶의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심아정(수유너머N 연구원) 강연자는 지난 9월 24일에 열린 세 번째 강의에서 ‘바깥/외부’를 주제로 ‘블랑쇼, 나의 바깥에 선다는 것’을 통해 블랑쇼의 사상과 철학을 조명했다. 40여 석의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높은 참여율을 보이며 시작된 강의는 예정된 강의 시간을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강의 내내 심아정 강연자와 수강자는 질의응답을 통해 블랑쇼의 생애와 ‘장소성’의 의미를 되짚으며 진정성 있는 담론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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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아정 강연자가 ‘장소성’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소와 장소성의 의미

‘장소(place)’는 누군가가 속해 있는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장소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기 때문에 ‘주체/타자’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권력의 작용을 보여주는 특권적인 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강연자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라는 속담을 인용하여 속담 속에 담겨 있는 ‘자리’의 의미가 물리적 공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주장과 자격의 획득이라는 문제와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즉 ‘장소’에 어떠한 경험이 녹아들면 장소의 정체성이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변하게 되고, 이때 ‘장소성’이 등장한다.

‘장소성’이란 어떤 장소를 둘러싸고 다양한 경험과 변화의 가능성이 어우러지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장소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이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타자들을 공동의 정치적 주제로 재구성하고 긍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강연자는 시간강사의 입장으로 오랜 시간을 지낸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입장은 있지만 소속을 갖지 않는 상태’를 설명하며 ‘소속-없음’이 ‘자격-없음’, 혹은 ‘권리-없음’으로 이어지는 사회 현상에 대한 사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블랑쇼, 극단에서의 모든 참여들로부터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평가였던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상가”라고 불린다. 그의 사유가 아카데미의 학문적 역사를 배경을 넘어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여러 삶의 양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크 데리다는 블랑쇼의 장례식 추도문에서 “블랑쇼는 자신의 전(全) 존재를 던져, 급진적으로 혁명이라 알려졌던 것들에 참여했었다”고 강조하며 “그는 극단에서의 자신의 모든 참여들로부터, 이 모든 정치적 경험들로부터 끝까지 교훈들을 이끌어 낼 줄 알았고,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 ‘전향’을 감당했다”고 말한 바 있다.

1930년대 초기, 20대 중반이었던 청년 블랑쇼는 현실에 밀착한 문제들에 관하여 극우파 신문들에 정치기사를 썼다. 이 시기 그의 활동은 반(反)유대주의적 기사를 쏟아냈던 매체들에 관계했다. 블랑쇼는 자유민주주의가 내세운 타협의 정치에 반대하며 “외세를 막아내려면 자유주의 체제를 폭력으로 뒤엎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극우 노선을 걸었던 블랑쇼가 당시의 나치주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블랑쇼는 반게르만주의, 반히틀러주의를 표명했고, 나치의 수탈을 고발하는 유태인 민족주의자 모임에 가담하여 일간지 《르랑파르(Le rempart)》에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낸 사건에 대해 항거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강연자는 특히 블랑쇼가 1984년「의문 속의 지식인들」이라는 글을 통해 “1930년대 당시의 자신은 경제문제를 내세우며 정치의 영역을 축소하려는 시도들에 반대하기 위해 민족주의적인 글들을 썼지만, 의도와는 달리 민족주의는 정치를 아예 없애 버리는 방식으로 귀결되었다”고 말한 부분을 예로 들며 그가 청년시절의 자신의 행동에 용서를 구한 것을 지적했다. 실제로 그는 1930년대의 정치적 상황에서 공공의 장(場)이 소극적 기능만을 수행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정치의 영역 자체가 없어지는 경향을 경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했고, 오히려 자유주의 안에서 전체주의의 숨겨진 형태를 읽어냈다. 이후 약 20년 동안은 정치에 대해 침묵하며 문학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다. 초기 극우 장소에서 후기 극좌의 장소에 안착하기까지 블랑쇼가 일관적으로 추구한 목표는 이러한 ‘전체성을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블랑쇼의 바깥(dehors)’

강연자는 블랑쇼가 레비나스, 바타이유 같은 저명한 철학자와 평생 우정을 나눴지만, 누구와도 사제 관계를 맺거나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학파를 만들지 않은 점을 강조했다. 그의 영향력은 자신의 인간관계나 사회적 지위를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문학을 철학적 문제로 다루면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블랑쇼는 문학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을 의심하는 것에 있으며, 더 나아가 문학이 우리에게 진실을 의심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의 순수한 본질을 규정하고 그것을 문학과 비문학, 고급과 저급문학이라는 위계질서를 세워 마치 하나의 온전한 문학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 혹은 작품을 하나의 분석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완결된 해석이나 의미구조로 환원시키려는 비평과도 거리를 둔다. 그러한 질문의 연장선상인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불가능성을 지적한다.

블랑쇼의 저서는 타자와의 만남을 강조하는 ‘바깥의 사유’가 특히 도드라진다. 그는 글을 쓰고, 읽는 행위 모두 수많은 타자와의 만남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쓰기’와 ‘읽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가 속한 곳이 아닌, 바깥과의 연관 속에서만 문학이 가능하며, 타자를 만나는 순간 불태워진 나의 자리에서 작품이 읽히고 쓰이는 것이다. 문학은 자신의 내부에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자신을 무효화 할 수 있는 자기 부정(부재)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문학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강연자는 블랑쇼에게 문학 작품이란 세계의 시간이나 공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며, 이 ‘바깥’은 대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대상의 이면(대상의 전면이 볼 수 없는 곳)으로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학에서 정치로, 그가 이동한 장소

순수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지는 블랑쇼의 사유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사실 정치적인 것이다. 그의 행보뿐 아니라 그의 문학이 어떻게 정치적인 것에 기초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저서 『정치평론』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다. 반(反)드골 운동, 알제리 독립운동, 68혁명, 하이데거 사건 등에 개입하면서 쓴 선언문, 기사, 편지와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1958년 블랑쇼는 20년 동안의 정치적 침묵을 깨고, 드골의 권력 장악 방식에 반대하기 위해 창간된 잡지 《7월 14일》에 『거부』라는 글을 게재한다. 드골의 집권 과정에서 파시즘의 전조를 감지한 그는 정치적인 권리로서 ‘거부’를 강조한다. 거부의 권리가 행사될 때 발생하는 ‘비인칭적인 힘’은 ‘모든 것을 허무는 힘’이지만 권력화하지 않으며, 특정 주체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문학의 공간에서 글쓰기가 끝없는 반복과 무한한 재시작을 요구하며 도달하려는 ‘바깥’은, 정치의 공간에서는 오합지졸처럼 보이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던 시위 군중의 물결, 즉, ‘힘없는 힘’으로 가시화된다. 소속도 지휘체계도 출발점도 모른 채 모여들어 제어할 수 없는 힘으로 존재하다가 흩어져 버리는 사람들. 블랑쇼는 이들이야말로 모든 권력의 ‘익명적인’ 바탕으로 보았다. 이렇듯 블랑쇼는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 타자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인 나의 바깥에 서기 위한 장(場)을 선언문을 통해 지면(紙面)위에 만들어냈다.

강연자는 노년기의 블랑쇼가 은거하다시피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던 것이 그가 ‘익명성’이라고 불렀던 철학적 에토스를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블랑쇼의 ‘은둔’이 신비주의, 혹은 성격적 수줍음이나 겸손함이라는 덕목의 문제가 아니라 이름 없는 자들인 ‘그’들로 하여금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떠한 1인칭 권력도 소유하지 못한 ‘그’들, ‘힘없는 힘’으로만 권력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이다. 그가 생전에 원했던 대로 개인의 이름, 사회적 칭송을 받는 이름, 역사적 이름은 지워지게 하는 동시에, 어떤 공동의 ‘우리’에 참여하고 나아가 또 다른 공동의 언어를 열고 생성하게 하는 것은 블랑쇼를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지혜  | leehey@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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