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책지성: 모옌, 『인생은 고달파(生死疲勞』] 죽어도, 다시 살아도 고달픈 여섯 번의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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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莫言, 1955~) ⓒwikipedia.org

1955년 중국 산둥성 까오미 현에서 태어난 관모예(管謨業)는 “말 대신 글로 표현 하겠다”는 의지로 ‘모옌(莫言)’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1978년 군 복무 도중에 첫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1981년 단편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를 통해 중국 문단에 등단했다. 1987년 발표한 장편 『홍까오량 가족 』은 장이모우(張藝謀) 감독의 각색을 통해 「붉은 수수밭」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어 1988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이는 모옌의 소설이 전 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계기가 된다. 중국어권 작가 중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모옌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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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默言)하고, 막언(幕言)하다

2006년 발표, 2008년 국내에 번역되어 상·하 권으로 나뉘어 출간된 장편 인생은 고달파는 2012년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서 “환상적인 리얼리즘을 민간의 구전문학과 역사, 그리고 동시대에 잘 융합했다”는 평을 받았다. 실제로도 말이 없는 편인 모옌은 수상소감을 통해 자신을 새로운 세계를 창작하는 ‘소설가’가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모옌의 문학 세계에서 ‘환상성’과 ‘구전’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생은 고달파』는 사회주의 중국이 수립된 이후 일어난 토지개혁과 인민공사 건립,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개혁 개방 등의 사건을 따라 진행되며, 기본적으로는 불교적 상상력인 육도윤회(六道輪廻) 정신을 기조로 전개된다. 이 장대한 서사의 주인공이 바로 ‘서문뇨’다. 1950년 1월 1일부터 2001년 1월 1일까지 그의 생(生)과 사(死)는 여섯 번의 죽음과 삶, 이른바 ‘환생’을 반복한다.

짐승의 육신을 빌어 말하다

그러나『인생은 고달파』를 역사소설로 볼 수는 없다. 모옌의 소설 속에서 역사적 사건은 사실을 바탕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서문뇨의 육생(六牲)을 말하기 위한 ‘배경으로 소모’될 뿐이다. 또 소설 속의 화자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짐승으로 있기 때문에 화자의 진술을 온전히 신뢰하기에는 미심쩍다.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는 있지만 나무껍질을 뜯어먹느라, 발정기 때문에, 진흙 밭에서 뒹구느라, 하루 종일 정신이 팔린 나귀, 소, 돼지, 개의 입을 빌려 표현되는 시대와 역사를 온전히 신뢰하기는 미심쩍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통해 역사를 읽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모옌의 입담, 그의 필담이다.

중국의 토지 개혁 때 악덕 지주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된 까오미현 서문촌의 서문뇨는 염라대왕에게 속아 나귀로 환생한다. 윤회 직전, 그는 저승사자에게 전생의 기억을 잃는 탕약을 권유받지만 그릇을 엎어버리며 말한다. “아니요, 난 모든 고통과 번뇌, 원한을 마음에 단단히 새길 것이오. 그러지 않으면 다시 세상에 돌아간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소”

육도윤회(六道輪廻)란 전생의 기억을 잊고 온전한 마음으로 인과응보에 따라 육도를 유전(流轉) 하는 일이다. 서문뇨는 기억을 잃는 탕약을 먹지 않았음에도 생전 지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며 인정하지도 않는다.

서문뇨가 총살된 직후 그의 두 번째 첩 영춘은 서문뇨가 거둬 키운 머슴 남검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시집을 갔고, 세 번째 첩 추향은 서문뇨를 사살한 마을 생산대대장 황동에게 시집을 갔다. 서문뇨는 나귀의 몸으로 자신의 가족들이 원수의 가족이 되는 것을 지켜보고, 서문촌의 평범한 농사꾼들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을 목도한다. 그러나 처음의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 짐승의 습성과 본능을 버릴 수 없어서 괴롭다. 결국 굶주린 백성들에게 몸을 뜯어 먹힌 ‘서문나귀’는 다시 ‘서문소’로 환생하여 제 몸을 공양하고, ‘서문돼지’로 환생하여 아이들을 구하며, ‘서문개’와 ‘서문원숭이’로 환생하여 축생의 삶을 마무리하고 인간으로 회귀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피곤해 피로해

서문뇨가 여섯 번의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동안 모옌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삶의 지혜’와 ‘업의 소멸’이다. 종교학에서 ‘업(業)’이란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하며, 혹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업은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의 삼업(三業)으로 나뉜다. 신업은 신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구업은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나며, 의업은 정신적 활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지옥의 고통이 따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듯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업은 실체가 없지만 일상을 통하여 선악의 업을 쌓으면 그것이 업인이 되어 업과를 받는다. 그러므로 업의 소멸은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다. 설령 신(神)이어도 대신해주는 것은 불과하다.

서문뇨가 생과 사를 오가는 과정도 온전히 이 ‘업’의 정신에 기반한다. 애초에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서문뇨의 윤회가 이뤄지는 과정, 막 시작한 죽음과 삶이 중할 뿐이다. 첫 번째로 서문뇨는 개혁의 폭풍에 휩쓸려 자신이 지주였을 때 거두어 먹인 식솔들의 총에 며리가 겨눠져 주검도 건지지 못할 만큼 천지사방에 흩뿌려진 채로 죽는다. 두 번째로 서문나귀가 되어 대약진운동 노동 활동에 참여하여 죽도록 일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몽둥이로 맞은 후 온몸이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나누어져 뜯어 먹혀 죽는다. 세 번째로 서문뇨는 제 노비였던 남검의 소로 태어나 무거운 쟁기를 이고, 문화대혁명 시절 인민공사 입사를 거부하며 개인농사를 고집하던 남검 대신 채찍에 맞아 죽는다. 네 번째로 서문돼지는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지고, 네 번째로 서문개는 다시 남검의 개로 태어나 남검의 곁에서 자연사한다. 역사가 새로 쓰이고 서문뇨가 환생을 반복하는 동안, 그 죽음의 무게나 크기, 성질 또한 달라지고 순해진다. 이는 바로 업의 소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윤회설을 “죽는다고 하더라도 또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공포의 대상으로 본다. 반면, 중국에서는 “한 번 죽더라도 또다시 삶을 얻는다”고 관점에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생을 반복하는 동안 ‘인간’ 서문뇨는 온전한 한 마리 ‘ 가축의 삶’을 모든 미련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자칫 모든 삶이 이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 이야기 속에서 윤회란 지난 생이 절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매우 정교한 작업이다. 한 인간이 이번 생에서 지은 죄를 소멸·정화하기 위해서 총 여섯 번의 삶과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끝과 시작

염라대왕은 개로서의 삶을 끝내고 명부(冥府)로 돌아온 서문뇨에게 “너에 관한 것은 내가 다 알고 있다”며 “네 마음속에 아직도 원한이 남아 있느냐”고 묻는다. 늘 염라대왕이나 저승사자에게 대들거나 악을 썼던 서문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염라대왕은 “이 세상에는 원한을 품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우리는 원한을 품은 영혼이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문뇨는 자신에게 남은 원한이 없다고 반문하지만 염라대왕은 서문뇨를 다시 한 번 축생도(畜生道)의 삶으로 환생시키며 전제 조건을 단다. 단 2년의 삶. 그동안 모든 원(怨)과 한(恨)을 깨끗이 씻어버릴 것. 염라대왕의 질문에 찰나 머뭇거린 죄로 서문뇨는 다시 한 번 원숭이로 태어나 원한을 씻는 정화작업을 거친다. 그리고 마침내 1950년대 격동의 중국이 아닌, 모든 것이 개혁 이전으로 회귀했다고 봐도 좋은 2000년대 밀레니엄 베이비로 환생한다. 50년 만에 인간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계속 반복되었던 ‘서 씨 가문’과의 길고 질겼던 인연을 끊어내고 ‘남 씨 가문’의 ‘남천세’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산다.

『인생은 고달파』 2권의 제5부 「끝과 시작」에서 모옌은 남해방의 입을 빌려 결정적 한 문장을 서술한다. 바로 “땅에서 온 모든 것은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끝과 시작이 한결같다는 것은 그만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뒤돌아보고 선을 행할 것’, 필자는 이것이 모옌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단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이지혜  |  leehey@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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